자연을 좋아하는 개의 뒤를 바짝 쫓아봤다.
강아지 산책에 필요한 준비물.
1. 배변 봉투.
강아지를 집에 가두고 기르는 사람은
너무 오랜만에 나가는 산책에
빠뜨리게 되는 준비물.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준비를 안 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수만큼 거리에 똥이 쌓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랜만에 나가는 개들일수록
푸지게 쌀 확률이 높다는 거.
우리는 투명한 걸 쓰는데
업체에서 파는 배변 봉투는 진한 녹색이다.
색이 입혀진 배변 봉투는 바로 손에 씌워 변을 담은 뒤
곧장 쓰레기통에 버리는 방식이다.
2. 변을 감쌀 휴지.
우리는 변을 감쌀 휴지를 따로 쓴다.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지 않고
휴지 부분만 따로 변기에 버리느라.
변이 든 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날 바로 비우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
(애견 관련 업체는 이 방식을 써도 괜찮은 게
하루에 한 번씩 쓰레기통을 비우기 때문이다)
휴지로 감싼 변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면
냄새 걱정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물 값이 나간다는 단점도 있다.
사용한 비닐봉지는 재활용 '비닐' 코너에 버린다.
3. 줄.
줄은 굉장히 중요한 도구다.
사람으로 치면 탯줄,
자동차로 치면 안전벨트처럼 중요한 장치다.
따라서 줄은 값이 좀 나가더라도
충분히 알아보고 좋은 걸 사는 게 좋다.
목줄과 가슴 줄 두 가지가 있는데
통제와 고통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 목에 줄이 감겨있고
당신이 어디론가 달려가는데
줄이 딱 걸리면 당신 목이 어떻게 될까?
목줄에 비해 가슴 줄은
같은 통제를 가하더라도
고통을 덜 준다.
그리고 길이에 따라 짧은 줄과 긴 줄이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본 사람들은
줄의 마술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다.
짧은 줄을 한 개한테 줄의 길이만 늘려줘도
상당히 좋아지는 신비로운 현상.
그러면 줄은 무조건 길수록 좋을까?
3미터가 적당하다는 정설이 있다.
간혹 줄을 안 하고 산책을 하는 견주가 있다.
특히 소형견 견주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가 많은데
자기 개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건 견주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거.
그 개를 처음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개'라는 정체성이 중요하지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다.
첨언하자면
소형견보다는 대형견 쪽이 훨씬 얌전하다.
4. 개.
경우에 따라선 산책을 싫어하는 개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산책이 단순히 집 밖으로 데려가는 행위가 아니라
꽃개한테 자연환경을 제공하는 일로 본다.
개의 본성은 아직 자연환경 쪽으로 열려있다는 것.
강형욱 씨는 길게 할 필요도 없이
짧게 자주 하는 산책이 좋다고 했지만
우리가 경험한 꽃개는 그렇지 않았다.
30분쯤 즐기면 집에 가기 싫다고 버틴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얼마든 즐길 자세가 되어있다.
(다만 많이 돌고 오면 집에서 뻗는다)
짧게 자주 나가는 아파트 단지의 경우엔
냄새를 완전히 마스터해서
꽃개가 예전만큼 즐기지 않는다.
옆 단지로 넘어가면 좋아라 한다.
도로 너머 유수지 공원에 가면 아주 좋아한다.
산에 가면, 개 난리 난다.
개들은 흔히 오줌 마킹을 하지만
코가 뻥 뚫려 항문까지 활짝 열리면
똥 마킹까지 하게 된다.
5. 의지.
강아지 산책에 관한 그 어떤 훌륭한 정보도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꽃개를 데리고 산책.
포장된 길과 잔디가 깔린 구역이 나란히 있을 땐
열에 아홉은 잔디가 깔린 데로 간다.
오늘은 산이다.
동네 뒷산.
코스도 짧게.
토끼처럼 뛰어오르는 꽃개.
냄새를 맡고
비빈다.
이것도 꽃개의 본성이 자연 쪽으로 열려있다는 증거.
모든 개가 이걸 하는 건 아니다.
나는 꽃개랑 같이 살게 된 뒤에야
개들한테 이런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개를 키우는 사람조차 꽃개의 이런 행동을
신기하게 쳐다볼 때가 있다.
화성시 반려견 축제 때도 그랬다.
어머, 저 개 미쳤나 봐.
대충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자기 몸에 특정 냄새 바르기.
왜?
그 냄새를 보호색으로 삼으려고.
사냥할 때는 들키지 않게 접근하고
사냥감이 되어 쫓길 때는
안 들키게 숨으려고.
등가죽을 비비지 않는 개들은
야생성을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다는 뜻?
나도 전문가는 아니어서
거기까진 모른다.
아무튼 비비는 개가 있고
비비지 않는 개가 있다.
잘 비비는 개가 있고
비비길 꺼리는 개가 있다.
꽃개는 얼마나 잘 비비냐면
토사물에 비빈 적도 있고
개똥에 비빈 적도 있다.
시골에 살면 퇴비 같은 거에
환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연히, 우리한텐 안 좋다!
목욕시켜야 한다!
꽃개한테 숲은,
놀이공원, 테마파크 같은 데다.
종합 선물세트.
코가, 뻥 뚫린다.
굳이 갖다대고 킁킁대지 않아도
냄새가, 사방에서 LTE급으로 몰려든다.
히엑.
틈만 나면 뒤집는다.
이럴 때 줄을 당겨 통제.
힘껏 당겨도 몸 자체가 들리기 때문에
다치는 일이 없다.
셰킹.
좋아, 죽는, 표정.
엄마, 내가 잘할게요. 내일도 올 거죠?
꽃개 바탕화면 1920x1080.
마른 가지에 매달린 풀도 뜯어먹고.
피로 회복을 위한 활동이라고 하는데
맛없는 거 알고 뱉는다.
개는 해가 뭔지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없다.
개 카페에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
개 공원에 가는 것과 비교해도
기대하는 효과가 다르다.
개 공원이 전력 질주를 하고,
개들과 어울려 노는 데라면
숲은, 노즈 워크다.
매머드급 노즈 워크.
슈퍼컴퓨터로 인터넷을 섭렵하는 기분?
꽃개 바탕화면 1920x928.
숲 산책이 정말 좋은 건
우리도 운동이 된다.
내가 따라온 건 등 샷을 찍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녀석은 셔터 소리를 싫어해
내가 쫓아가는 만큼 걸음을 빨리 해 앞서갔다.
알파독 이론이란 게 있다.
서열을 정하는 데 있어
앞에 서는 놈이 무리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산책을 할 때
사람보다 앞서게 하면 안 된다는...
우리는, 꽃개가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는 산책을
상상할 수 없다.
데크를 깔아놓은 건
유모차 미는 엄마들도 산책하라고.
등산 자체가 그런 경향이 있지만
개하고 산책을 할 때도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미끄럽고,
줄을 당기는 녀석이 있어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다람쥐 같은 동물에 반응해
갑자기 치고 나가는 수가 있다.
소형견은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대형견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는 잘 안 나오는 표정.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까치 사냥하려고.
여름엔 물을 준비해 가야 한다.
사람 마실 물도 필요하다.
참 좋은 가을인데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는 느낌이다.
우리의 사적이어야 할 시간이
공적인 사태에 흡혈된 자괴감.
내가 이러려고 그 뜨거운 여름을 버텼나.
하지만 꽃개는 오늘
행복하다.
개보다 인간이 우월할까?
그럴지도.
인간이 개보다 행복할까?
장담 못하겠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