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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Dec 23. 2016

보도블록 15 DSLR의 적정 노출

카페도기에서 니콘 D5500으로 가능한 적정 노출을 실험해봤다

볼링 영화 [스플릿]에 나오는 멋진 대사.



볼링이 왜 사람 미치게 하는 줄 알아? 이번엔 꼭 스트라이크 칠 것 같거든.


모처럼 둥이네랑 카페도기에 놀러 간 날, 나는 렌즈 테스트에 나섰다. 번들로 제공된 단렌즈는 불만이 없는데 줌렌즈가 별로였다. 좋은 줌렌즈를 사면 하와이에 가서 더 나은 사진을 찍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열망에.

메타 정보를 공개한 건 그 어떤 후보정도 없이 상태 그대로 출력했다는 의미다.

사진을 잘 찍는 법을 알려준다는 책들에 수록된 불편한 진실. 저자들은 조리개 값, 셔터스피드, 노출 모드, ISO 감도 따위의 메타 정보를 공개한 뒤 그렇게 설정하고 찍으면 당신도 나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암실에서 포토샵을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로 원본 파일을 주물럭거린 사실은 생략한 채.

렌즈 테스트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조리개 우선 모드로 찍었다. ISO 감도를 1600까지 올린 건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꽃개와 둥이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1/2500초의 셔터스피드라면 과격한 움직임도 정지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다만 사진을 확대해서 볼 경우 이미지가 지글거리는 단점이 있다. F4로 설정한 조리개 값은 큰 의미 없다. F2 이하로 하면 배경을 흐릿하게 날리는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고F8 이상으로 하면 전 구역이 또렷한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노출 보정을 1/3 뺀 것은 하이톤보다 로우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니콘 D5500이 "알아서" 노출을 잡은 것이다.

집에 돌아와 조리개 우선 모드로 찍은 60여 장의 사진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하나같이 너무 어두웠다.




니콘 D5500이 노출을 어둡게 잡은 이유는 열어놓은 문으로 쏟아진 빛 때문으로 보인다. 촬영 장소는 어둑한 실내인데 환기 차원으로 열어둔 프렌치도어? 밖은 환하다. 멀티 패턴 측광은 프레임을 여러 구역으로 쪼개 각 구역의 평균 광량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배경에 위치한 빛을 '강하게' 측정한 카메라가 과다노출을 우려해 셔터스피드를 1/3200초로 조여버린 결과. 






















배경이 실내 바닥으로 바뀌면서 역광이 사라졌다. 셔터스피드도 1/2000초까지 떨어졌지만 사진은 여전히 어두워 보인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개를 데리고 찍은 건데 사진이 확 밝아졌다. 멀티 패턴 측광에서 스팟 측광으로 측광 방식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확연한 차이가 난다. 셔터스피드가 1/800초까지 떨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게 적정 노출일까? 개슬링 중인 꽃개와 둥이는 적정 노출로 보인다. 하지만 배경의 프렌치도어와 거기서 쏟아진 빛이 반사된 바닥은 노출 과다다.




















멀티 패턴 측광 방식의 개슬링 장면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적정 노출이 아니다. 멀티 패턴 측광이 노출 부족이었다면 스팟 측광으로 찍은 이것은 노출 과다다. 화면 오른쪽에 위치한 프렌치도어가 하얗게 지워지는 화이트홀 현상이 나타났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어떤 정보도 남기지 못하고 날아갔다는 뜻이다. 저 부분은 디지털 암실에서도 '보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안팎의 명암차가 심한 카페도기에서 꽃개와 둥이가 노는 모습을 담은 환상적인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 수완 좋은 아마추어는 '은박지' 같이 생긴 반사판을 활용할 것이고, 반려견 잡지에 실을 사진이 필요한 프로들은 조명을 설치할 것이다.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DSLR 잘 다루는 법, DSLR 잘 찍는 법, 사진 잘 찍는 법에 관한 책을 빌려보고 내린 결론. 그들은 카메라를 다루는 법을 말하고 사진을 잘 찍는 법을 말하지만 현장에 설치될 조명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는다. 자기들 밥벌이, 노하우, 즉 영업 비밀에 관한 거라. 그래서 그런 책들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메타 정보를 똑같이 맞춰서 찍어도 책에 실린 것과 같은 멋진 사진은 좀처럼 찍을 수 없게 된다.

반사판 하나 챙기지 않고, 어두운 데서는 플래시를 터뜨리면 된다는 상식 하나만 갖고 사진을 대하는 우리는, 사실상 다양한 사진 장르 중 스냅사진만 찍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떠한 "조명의 연출" 없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있는 그대로 찍기.














물론 '사진'을 기술적으로 능숙하게 훈련받은 이들은 "스냅샷"으로 제한된 장르 안에서도 환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폰은 자사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아이폰으로만 촬영한 사진전을 열기도 한다. 당연히 입이 쩍 벌어지는 환상적인 사진이 걸려있다.

하지만 카메라가 좋으면 사진도 좋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DSLR를 지른 수많은 아빠들은, 그런 훈련을 즐길 시간이 없다. 고작 해보는 게 수동모드에 도전하는 것이다.

다른 날, 같은 장소인 카페도기에서 꽃개와 동수를 수동모드로 찍은 사진을 비교 대상으로 올린다. 수동모드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내가 조작해 노출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노출과다다.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에 비해 워낙 강해, 동수 어깨너머로 화이트홀이 발생했다. ISO 감도를 500밖에 안 올린 탓에 셔터스피드도 현저히 떨어졌다.











꽃개의 노출은 적당하지만 다른 구역은 화이트홀이 지배적이다. 하얗게 날아간 공간에 노출을 맞춰 그곳 디테일을 살리면 꽃개가 까맣게 지워질 가능성 100프로.

























 

프렌치도어를 등지고 찍은, 바닥이 배경인 사진의 노출이 안정적인 건 내가 잘 찍어서 그런 게 아니라 조명 환경이 안정적으로 세팅되었기 때문이다. 콧등에 힘준 친구는 무룩이.


























다른 날 같은 장소에서 셔터스피드 우선 모드로 찍은 사진. 노출 보정을 2/3 더한 것은 어둡게 나올 걸 우려해 취한 조치로 보인다. 그래도 사진은 여전히 어둡다.


























노출 부족이 여전하지만 역광 없이 고르게 어두운 데서 찍어 자연스럽게 어둡다.




























이 사진이 그나마 적정노출에 가까워 보이는데 볼품없는 사진이기는 마찬가지.




























그리고 이건 나도 깜짝 놀란 사진.

카페도기가 영업 전이라 차에서 잠깐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이다. AUTO모드로 플래시까지 터뜨려 찍은 사진인데 플래시 특유의 하얀빛이 닿은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협소한 장소의 특성상 한 팔을 쭉 뻗어 파인더도 안 보고 찍었는데, 초점이 기가 막히게 잡혔다. "이렇게 나올" 거라는 의도가 전혀 없었으므로, 완전히 얻어걸린 사진이다.





















이 사진에선 플래시를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카 시트와 푸른색 점퍼에 하얗게 부딪친 흔적이 남아있다.



























이건 장면(Scene) 모드로 들어가 '애완동물'로 설정해 찍은 사진. 플래시가 안 터져 노출 부족이지만 꽃개의 갈색 눈동자와 털의 질감이 실감 나게 표현됐다. ISO 감도가 3200까지 치솟았다! 내가 세팅한 게 아니라 D5500이 알아서 잡은 값이다. 이 맛에, DSLR 한다.
























첫 번째 사진을 디지털 암실에서 16대 9 비율로 크롭 한 사진.

원본과 비교.

두 번째 사진을 디지털 암실에서 보정한 사진.

화이트 밸런스 색온도를 5000도 이상으로 올려 따뜻한 느낌을 강화하고, 커브 곡선을 이용해 어두운 영역을 밝게, 밝은 영역을 어둡게 보정했다.

원본과 비교.

세 번째 사진은 푸르스름하게 보정해봤다.

니콘이 제공한 프로그램으로 아주 가볍게 건드린 것이다.

선수들이 포토샵을 갖고 얼마나 장난칠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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