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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언어교환하기  -Sprachtandem

돈 안 들이고 언어를 잘하는 방법

by 소류 Dec 17. 2023

아... 절망했다가 질투도 났다가 의욕도 생겼다가 혼란스럽다.




수 년 전, Meetup에서 독일어-한국어모임에 참가했다가 거기서 한 모로코인 여자애를 알게 되었다.


이름은 "야스리나"고, 부모님이 모로코인인데 야스리나는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슬림이다.

최소 5개 국어는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나이는 그 당시에 한 19세에서 21세 사이였고, 집에 빚이 많아서 대학에 합격하긴 했는데, 일을 할지 진학을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결혼해서 영국에서 살고 있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똑똑한 애는 굳이 대학에 안 가도 되지 않냐고 한다.


야스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가나다도 몰랐는데 두세 번 만나니 단어로 말하고, 그 다음에는 문장으로, 그 다음에는 일상적인 인사나 안부 같은 건 한국어로 곧잘 말하곤 했다.

내 독일어는 만날 때마다 변함없이 허접상태 그대로인데, 얘는 뭐지? 괜한 시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 후에 야스리나가 알려준 Sprachtande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몇 명을 더 알게 되었는데 이들은 놀랍게도 알려주는 족족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것이 아닌가!


태어날때부터 여러나라 언어를 접해서 그런지 하나를 알려주면 스폰지처럼 쑥쑥 흡수하고 이해력도 빨랐다.


심지어 일본인과는 다르게 발음도 아주 훌륭하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운 일본인중에는 "어"와 "오"를 몇 년을 해도 구분을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여"의 발음을 완벽하게 하는건 아예 바라지도 못 할 정도 였다.


"집"과 "에"를 알려주고 "지베" 라고 발음하면 "지베는 뭐에요?" 하고 되묻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기무치가 아니라 김치라고 입을 다물다가 뗀다고 수천번을 설명해도 기무치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어서 발음면에서는 포기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 스위스인들은 (내 남편부터 해서..) 발음에 문제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의 엉망인 독일어발음이 문제였지 말이다.


내 독일어도 같이 성장하면 몰라도 나는 발음 하나도 잘 안되어서 헤매는데, 이네들에게 한국어는 결코 어려운 발음도 어려운 언어도 아닌거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오늘, 언어교환사이트를 통해서 다시금 대화상대를 찾아보니, 집 근처에 사는  한 스위스인 여자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걸 발견해서 즉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독일어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데 글쎄, 너무 한국인스러운 발음과 억양으로 "한국어 할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없고 발음도 너무 정확하다.


비정상회담이나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어를 꽤 잘하는 외국인을 마주한 느낌이다.


내가 일본어로 일본인과 마주하면 이들도 이런마음일까?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10년 전에 1년 동안 연세어학당에 다녔고, 한국어 TOPIK6급을 땄다고 한다.


토픽6급에 합격하려면 말하기 작문하기 등은 기본이고,


"직원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저명한 지질학자들이 여러 가설을 제기했다." 같은 문장들을 간단히 이해해야 통과할 수 있는 레벨이다.

그리고 어플을 통해서 국적만 한국인인 남자와 만나 1년 반 전에 결혼해서 한국인 시어머니와 가끔 통화할 때 한국어를 쓴다고 한다. 국적만 일본인인 내 남편이랑 같네.

한마디로 남편이란 존재는 한국어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발음이나 어휘력이 완벽한 건 반칙 아냐? 싶을 정도다.


너의 문제가 뭐냐고 물으니 "~망정이지." 이런 말을 언제 쓰는지 잘 모르겠고, 쌍시옷 발음이 좀 힘들다고 한다.


휴~, 못하는게 있어서 다행이다. 혹 내가 아무런 도움이 안될까 잠깐 걱정했었다.


우리는 2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한 달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얘기하다가 나중에 독일어로도 바꿨는데 독일어로 말할 때 괜히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내 발음이나 문장이 나쁘지 않고, 5년 동안이나 안썼으니 지금부터 좀 더 연습하면 충분히 잘할 거라고 조언해줬지만, 너무 비교가 되는 나 자신이 내심 부끄러웠다.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 독일어로 된 책을 읽은 적 있어?

-. 아니.

-. 나는 한국어로 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히가시노 게이고를 진짜 많이 읽었고,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어.

-. 독일어로 된 책 중에 재미있는 책도 없고, 드라마 같은 것도 재미가 없고... 그래서... 나는... 읽다가 딴 생각하고 책을 덮길 반복해서 결국 읽지는 못했어. 유트브로 스토리를 틀어놓기는 하지만 내용이 너무 재미가 없고......,


말하다보니 "재미없다"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였다.


-. 한국어나 일본어책을 독일어로 번역된 것으로 읽으면 되지 않아? 성경도 독일어가 훨씬 쉬운데 그걸 읽으면 어때?

-. 유튜브에 발음을 잘하는 방법이 많이 나와 있어. 나는 한국어의 "어, 여" 이런 걸 잘하기 위해서 혀와 얼굴의 근육마비가 올 정도로 연습했어.


여러 가지 제안을 해줬다.


그렇다. 사실 하려고 하면 방법은 아주 많은데, 나는 좋아하지 않는 언어라는 이유로 계속 도망치고 변명하기에만 급급했다.


독일어로 된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잘하길 바라는 건 모순 아닌가?


생각해 봐라. 일본어 공부했을 때를...,


같은 드라마를 몇 번이나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다자이 오사무를 몇 권이나 읽고, 일본어 강의도 하고, 번역, 통역도 했으니 이 정도가 된 거 아닌가.


독일어는? 그 반에 반이라도 노력이랍시고 하고 있는게 있기나 한가?


어떤 노력도 없이 얄팍하게, 시간 날 때만 살짝 하면서 잘해지기를 기대하는 건  마치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게 그녀에게 추천받은 책이 "Die Physiker(물리학자)"이였다.


-. 쉽고 재미있고 책이 두껍지도 않아. 읽은 책 중에서 이게 쉬운 책 중에 하나였어. 이걸 추천해.


아... 이 수준이었어? 제목만 봐도....하하하...


그리고 나도 한국소설가인 김영하와 한강을 소개해줬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서 두시간씩 언어교환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휴가 때문에 다음에는 한 달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전까지 책 한 권은 읽고 가는 것이 지금 나의 목표가 되었다.


"Die Physiker"을 읽기에는 아직 어려울 것 같아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습격"을 독일어 번역서로 다운로드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 줄부터 해석이 안되고 심지어 틀리기까지 한다.


“Hunger hatten wir, so viel stand fest.”


이것을 "우리는 배가 고팠다, 많이 확정되었다."라고 해석하니,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남편이 다시 해석해 준다, "우리가 배가 고픈 건 기정사실이다."라고.


그 다음 문장은 "Allerdings keinen gewöhnlichen"이다. 전부 모르는 단어라 사전 찾아본다.


"mangelnder Nahrungsaufnahme natürlich"


라고 적힌 걸 소리 내서 읽으려니 발음도 제대로 안되고 혀도 꼬이고 안면근육통이 올 지경이다.


몇 줄 안 읽었는데 덮어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인내하며 한 바닥 다 읽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책은 단편이니 한달안에 여러 번 읽어서 발음도 익숙해지도록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언어교환(Tandem)하면서 좋은 건,

사라지려는 의욕이 다시금 쏟아 오르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고 흥미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것과

스위스 문화를 알게 되는 것과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긍정에너지를 받는 것 등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고 오늘은 좀 더 책을 읽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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