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 조용하고도 엄숙한 의식

양지오 개인전 _ STILL SCENES

by 정윤희
KakaoTalk_20250612_151434650.jpg ©양지오, 길게 드러눕기, 장지에 채색, 190x90cm, 2025



이것은 나를 위한 조용하고도 엄숙한 의식,

그리고 마른나무줄기에게도 꼭 주어져야만 하는 시간


밑동이 잘려 쓰러져 버린 나무에 작은 존중을 표하며,

이미 굳어지고 말라버린 다른 많은 것들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시간


세 개의 작은 촛불이 나눠주는 온기가 무의미하게 흩어지지 않게 하고,

가녀린 줄기를 살포시 덮은 천이 날아가지 않도록 잠시 고정시켜 놓는 시간


천막 안에 누운 마른 줄기가 눈부시게 빛난다.

이토록 얇은 천이 강렬한 빛과 온기를 머금을 수 있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위쪽으로는 파도가 밀려오고 아래쪽으로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모두 작은 촛불 세 개쯤은 금방 꺼트릴 수 있는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지만...


하지만 이것은 꼭 행해져야만 하는 의식,

파도도 어둠도 이 의식 앞에서 잠시 잠잠해진다.



543504137.jpg ©양지오, 단단하게 숨쉬기, 장지에 채색, 244x194cm, 2025 (사진출처 VODA GALLERY 홈페이지)



이것은 빛과 온기가 전해지는 머나먼 여정.

바람도, 물결도, 어둠도 작은 유리볼에 담긴 촛불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다.



KakaoTalk_20250612_151434650_05.jpg ©양지오, 미끄러지는 고요, 장지에 채색, 110x60cm, 2025



파도가 띄우는 작은 깃털, 파도로부터 존중받고 있는 작은 깃털.

무한한 존재들은 한 없이 보드랍고,

스스로 빛을 내어 작은 존재들을 비춘다.



KakaoTalk_20250612_151434650_09.jpg ©양지오, 터지는 빛, 흩어지는 물, 장지에 채색, 80.3x130.3cm, 2025



그리고 그 무한한 존재 위에서 다시금 열정을 지피는 것들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777852403.jpg ©양지오, 어둠 속으로 깊숙이 떨어져 나온 것, 장지에 채색, 20x20cm, 2025 (사진출처 VODA GALLERY 홈페이지)



KakaoTalk_20250612_151434650_12.jpg ©양지오, 상동








<전시 정보>


STILL SCENES _ 2025.5.31-6.28

VODA GALLERY _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80길 38, 1층




<작가 소개>

양지오 _ 어떤 장면들은 더 이상 이야기의 순서를 따라 흐르지 않는다. 이곳은 바로 그런 장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무대는 비워져 있고,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연극은 시작될 기미 없이 멈춰 있으며, 사건은 일어날 듯한 기척만을 남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무대는 낡지 않았고, 침묵 속에서도 온전히 구성된 형태로 존재한다. 정적이 감도는 장면, 말 없는 화면 속에서 비로소 다른 감각들이 조용히 깨어난다.

(작성 이유민 _ 독립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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