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의 마지막

순간 한 조각(24/30)

by Shysbook

2020.12.31

올해의 마지막은 군 생활을 제외하고 타지에서 보낸 하루이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을 면접으로 장식한 잊을 수 없는 하루이기도 했다.

면접을 마치고 연남동으로 가는 길, 어느 카페에 열린 전시장에 들어섰다. 입구 문을 열자마자 열 체크를 하고, QR코드 인증을 받고서야 구경할 수 있었다.

1층 한 쪽 벽면에 올 한 해의 일력이 벽지를 도배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질문이 적혀있었다.

‘우울할 때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오늘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자주 했던 게임은 무엇인가요’
등등

여러 질문들을 찬찬히 읽고선 테이블 위에 둔 몽당연필을 집어다 빈 칸을 조금씩 채워넣는다. 단답이건, 시시콜콜한 TMI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쓰고 본다.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생각가는대로 쓱쓱 써내려 간 질문지엔 왜라는 이유는 없었다. 모든 순간엔 ‘왜’ 라는 이유가 붙어야하고 나는 ‘왜’ 라 물어 본 상대방에게 납득할만한 대답-이라 읽고 ‘정답’ 에 수렴하는- 을 해야했다.

솔직하게는 그저 마음이 끌려서 그러했던 것 뿐인데, 마음의 눈으로 본 순간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한 찰나 들어가 버리는데, 왜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나는 스펀지에 빨아들인 물을 도로 뱉어내어 그럴 법한 이유를 찾아내야했다.

상대를 납득시켜야한다는 어떤 강박 때문일까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사실 약간의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하고도 자유로운 표현보다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해 줘야한다. 면접은 우리 회사와 결이 맞는지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내 경험이 당신네 회사의 결과 맞으니 날 좀 뽑아주소라고 간곡히 호소해야했다.

하지만 내가 당신 회사에 들어가야할 이유를 면접 막바지에 쏟아낼 수 없었다. 기억력이 빈곤해서 질문이 떠오르지도 딱히 궁금할 것도 없기도 했는데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은 회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름 준비하고 애정하면서 바라본 곳에 면접 답변도 준비를 하고 툭툭 던지곤 했는데 막판에 질문 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나는 간절함이 여기까진건가 싶기도 했다.

주어진 질문에 대답을 하고나서 마지막 질문에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다고 눈물의 호소를 해야할까, 준비했으나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짧게라도 던졌어야 했나.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 할 말이 똑 떨어져 나는 감사하다는 말로 면접장을 나서곤 했으니 나는 절실하지 않은 것일까.

이런 생각에 젖을 수록 잘못된 습관 하나를 지니게 되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알면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보다 정답을 들려줘야할 것만 같다는 강박이 생겼고, 질문을 계속 해 오면 나는 불안에 질식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이렇게도 편하게 자신있게 내 대답을 들려줄 수 있는데 왜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하려고 안절부절 못하는걸까. 상대방과 대화를 자연스레 주고받기보다 외려 질의응답 식의 주고받는 딱딱한 말에 그치는 것만 같달까.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붙은 벽 앞에서 나는 한 없이 바라보다 밖을 나선다. 세상엔 궁금한 것들 투성이에 자신만의 생각들로 가득한가보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정답을 달려는 나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올 한 해를 면접으로 마무리 짓는 경험은 내게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틀 전 출판사 면접 오늘은 서점 면접이었다. 이틀 간격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내 발걸음이 전과는 다름을 느낀다. 면접에 합격하면 곧바로 독립을 할 것이기에. 어떻게든 부모의 걱정을 덜어내고 혼자서 잘 살아내고 싶어서다.

아, 내년에도 면접으로 산뜻하게 새 해를 맞이한다. 그것도 두 곳이다. 합격해야한다는 심적 부담을 내려놓아야 편하게 말이 나올텐데 쉽지만은 않다..


꾸준히 쓰려했던 브런치도 정말 오랜만에 남기는군요.

사실 그 동안 심적으로 많이 아팠습니다. 자신에게 속상했고, 지쳤던 나날을 겨우 살아냈다가 간신히 회복 중에 있었거든요. 마음이 괜찮아지니 이제 무언가를 다시 할 여력이 생겼습니다.


올 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잘 다니던 직장을 떠난 후 책을 냈고, 잠깐이지만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여름부터 지금까지 나빴다 좋았다 악화되다 지금은 다시 회복중에 있네요. 무엇보다 취업이 어려워진 만큼 면접 하나하나가 너무 절실할 수 밖에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오늘 주어진 것들을 잘 준비하면서 내년을 맞이할 수 있길 바라야겠네요. :)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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