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같은 방,정리안된 책상이 문제일까?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딸아이 방이 보인다. 책상 위는 책을 쌓아 놓고 지우개 가루와 메모지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것들이 함께 뒹굴고 있다. 볼 때마다 또 욱하고 올라온다.
“은지야 책상 정리 정돈 좀 하면 안 될까? 너무 지저분한데 공부가 되니?” 조금 짜증이 났다.
“저는 괜찮은 되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을 땡그랗게 뜨고 말한다.
“뭐가 괜찮아 지우개 가루며, 쓰레기가 책상 위에 한 가득인데!! 얼른 치워라.” 아무 말이 없다.
방은 돼지우리에 핸드폰만 쳐다보고 뭔 얘기를 해도 대답은 안 하고 무슨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작년만 해도 말 잘 듣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듣는 시늉도 안 한다.
“또 대답이 없어!” 제발 대답이라도 해라 엄마가! 말을 하면” 아무 반응이 없으면 또 아이랑 한판 붙을 태세로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한다. 아이는 그제야 “ 알겠다고요!!” 거침없이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말에 또다시 '참을 인' 자를 새긴다. 참자 참자
“지금 당장 치워라!! 알았니”
맨날 잔소리한다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온다. 도전적인 눈빛은 나를, 더 도발하게 만든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를 깨우려고 들어간 방은 어제와 같은 상태 그대로였다. 책상을 치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대답만 해 놓고 치우지 않았다. 아이를 깨우기 싫어졌고, 그대로 방에서 나왔다.
“오늘 아침 7시 20분까지 책상 위 정리 정돈하지 않으면 버스 타고 학교 가라”
화를 억누르고 협박성 강한 말을 하며 ‘책상이 그 모양인데 어떻게 공부해 쓰레기통도 그것보다 낫겠다.’
아침을 준비하며 또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는데 책상 정리 안 하면 엄마 차 못 탈 줄 알아!”
아들은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기 무섭게 책상과 방을 정리 정돈한다.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딸아이 책상은 그대로였다.
“너 엄마 차 타고 등교 안 할 거야! 왜 아직도 그대로야! 그럼 너는 못 타고 간다! 10분 남았다”
“학교 다녀와서 하면 안 돼요 지금 하기 싫어요!” 짜증 난 말투로 한숨을 쉬며 투덜거린다.
“엄마가 어젯밤에 치우라고 했잖아.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정리하면 되잖아! 지우개 가루 치우고, 책은 책꽂이 꽂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니! 친구들이 너 책상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사진 찍어서 다른 사람 보여줘도 안 부끄럽니” 말에서 가시가 돋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엄마는 도대체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러는지 정리·정돈하면 좋잖아”
딸아이는 끝까지 책상을 정리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치우면 될 것을 또 고집을 부리고 있다.”
얼른 치워야 차를 함께 타고 갈 건데 고집을 세우고 있으니 내 속은 더 타들어갔다.
“똥고집도 저런 똥고집은 없을 거야”
차 열쇠를 들고 아들과 함께 현관을 나서는데 딸아이도 가방을 메고 함께 나선다.
“너는 왜 나오니 버스 타고 가야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엄마 차에 탈 수 없다고 했잖아!!”
매몰차게 아이를 밀어냈다. 딸아이는 그제야 부랴부랴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차 안에서 딸아이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딸은 내려왔다. 딸아이를 본 순간 또 화가 났다. 차를 타고 그냥 출발해 버렸다. 딸아이가 그 모습을 보면 차를 잡으려고 뛰어올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딸아이는 평소 때와 같은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차가 출발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버스 타고 가면 되지 뭐’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나오는데 굵은 빗줄기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쳤다. 순간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면서 ‘어디 한 번 버스 타고 가봐야 엄마 고마운 줄 알지!’ 엄마 말을 안 듣는 딸이 밉기도 했다. 마음은 딸아이를 태우고 가고 싶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고집을 한 번 꺾어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마음이 종일 편치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엄마한테 안기며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 주던 아이였다. 엄마가 부엌에서 뭘 만드는지 늘 궁금해서 요리하는 내내 옆에 서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참새처럼 조잘조잘 다 말해주던 아이였다. 중1이 되고부터 아이는 자기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졌고, 공부량도 많아졌다. 공부에 별 흥미가 없어 했지만, 중학생이 되니 엄마 마음이 급해져 아이를 죄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엄마가 안아주려고 하면 거부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에 화를 내기도 했다.
아이와 싸우지 않으려고 참았던 마음이 무너져내려 속상하다. 사춘기 아이를 이기려고 하는 것이 문제일까?
사춘기 아이와 화내지 않고 지내는 부모가 있을까? 루소가 말했듯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침묵으로부터 뭔가를 깨달았다”라고 하는데 과연 내가 침묵하는 게 맞는 걸까? 엄마도 사람인지라 자꾸 아이와 같이 더 유치해지고, 자존심을 더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