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의 죄와 벌
부헨발트의 새벽은 여전히 암훌한 동굴 같았습니다. 마치 다뉴브 강의 어둡고 음습한 기운과 닮아 있었습니다. 전쟁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은 아직 그 어떤 종결도 허락받지 못한 듯 감방마다 흘러넘치고 있었지요. 저는 르네의 옆에서 조용히 그녀의 분노가 식지 않은 채 검게 식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들 말합니다만, 그것은 반만 맞는 말입니다. 상처의 원인이 사라져야만 분노는 흐려지지요. 그러나 르네의 상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감방 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문틈 너머로 들어오는 희미한 그림자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레타였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했고, 지친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후회의 빛이 동시에 섞여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가 돌아올 때에야 비로소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지각된 위협을 기반으로 한 후회라고 부르지요. 참 거지같은 말입니다. 인간들은 후회도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놓는 버릇들은 세월이 길게 지나도 여전한 것이었습니다.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후회. 당신은 후회를 한 적이 살아가며 있습니까? 아마 수많은 이야기가 당신을 수놓고 있을 것은 말 안해도 자명한 일이겠지요. 르네를 다시 찾아온 그레타 역시 마찬가지 였답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그것은 지독한 후회의 향기였지요.
그레타는 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르네를 보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르네. 제발. 용서해줘. 난.... 그저 난 살고 싶었을 뿐이야. 그때는.... 그때는....”
목소리는 부서진 숨처럼 떨렸습니다.
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칼날보다 더 매서웠지요. 분노는 이제 겉으로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깊이 가라앉아 형태를 갖춘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레타는 손을 모아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습니다.
“너도 알잖아. 카를이 어떤 인간인지. 나는....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너라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 순간에는.... 정말로....”
그녀의 말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영혼의 잔향을 읽는 존재입니다. 그레타의 사과는 죄책감보다는 두려움의 농도가 더 짙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정당화, 인간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마지막 방패였지요.
르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침착함은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낮고, 칼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레타, 네가 나를 어떻게 버렸는지 기억해?”
“르네, 제발....난....”
“진심으로 우리를 돕던 하인리히가 당신 때문에죽었어. 그리고 이미 나도 당신 때문에 죽었어.”
그레타의 숨이 거칠게 끊겼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네 말을 믿고, 네 편지를 믿고, 자신을 희생했어. 그리고 넌 그 순간! 카를 뒤에 숨어 있었지.”
그레타의 얼굴에서 피가 빠진 듯 창백해졌습니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미안해...정말 미안해.... 르네. 내가 잘못했어. 제발.”
르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가 상처 때문에 떨렸습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 난 죽을 뻔했어. 하인리히는 당신 때문에 죽었어. 네가 살고 싶었던 대가로. 어차피 난 유대인고 당신은 독일인이라는 말이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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