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무게, 침묵의 무게
트럭은 울컥이며 멈추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르네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잠든 것 같으면서도 한쪽 눈가의 떨림은 마치 꿈속에서조차 깨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은 가끔, 살아남기 위해 잠드는 법을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그건 깊은 상처의 또 다른 형태였습니다.
바람이 엔진 열을 식히며 스쳐갔습니다. 미군 병사 둘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르네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몸이 너무 가볍다는 것을 깨달았겠지요. 마치 뼛속까지 들여다보일 것처럼 가벼운 무게. 전쟁 동안 수백만의 몸이 그 무게를 가졌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조차 유령처럼 공기를 통과하는 듯한 시대였으니까요.
저는 조용히 뒤따랐습니다.
그녀의 발끝이 트럭 난간을 스칠 때마다, 그 미세한 마찰음이 마치 살을 찢는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부헨발트에선 매일같이 정말로 그런 소리가 났기 때문입니다.병사들은 르네를 임시 야전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찢어진 천막 안에는 이미 여러 나라의 언어가 섞인 신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신음은 말이 아니라, 몸이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삶의 흔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르네는 희미한 숨을 몰아쉬었고, 저는 그녀의 곁에 앉았습니다. 투명한 제 몸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는 그녀의 어깨 가까이에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었습니다.
잠시 뒤, 의사가 다가왔습니다.
피로한 얼굴, 기록지에 얼룩이 번져 있었고, 그는 르네의 손등을 보며 잠시 멈추었습니다. 손등 위에 비스듬히 찍혀 있던 푸른 번호. 저는 그의 눈 속에서 잠깐 흔들리는 연민을 보았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끝나갈 때면, 인간에게서 비로소 다시 인간다운 표정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맥을 쟀습니다. 느리고, 얇고, 사라질 듯 흔들리는 맥.
“이 사람.... 꽤 오래 버텼군.”
그 말은 사실 칭찬이 아니라, 기적에 가까운 문장이었습니다.
죽음을 너무 오래 맞고 살아남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존엄 같은 것이 있었지요.
르네는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천막 위로 노을이 스며들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붉은 먼지처럼 공기를 채웠습니다. 그녀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을 찡그린 채, 뭔가를 찾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레타....”
그녀의 목소리가 입술과 함께 갈라졌습니다.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투명한 존재에게는 목소리도 그림자도 없으니까요. 그저 그녀의 곁에서, 말 대신 침묵으로만 머무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그날 밤, 르네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습니다.
잠들었다가 깨고, 숨을 고르고, 다시 잠에 떨어졌다가 머뭇거리며 되돌아오는 반복 속에 갇힌 듯했습니다. 악몽이 아니라, 너무 많은 현실이 그녀의 잠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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