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어떻게 의미가 되는가
수난은 언제나 이야기로 남는다.
고통 그 자체는 순간이지만, 그것을 견디고 통과한 이후에 인간은 반드시 서사를 만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통은 설명되지 않으면 무의미하고, 무의미한 고통은 인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겪은 뒤 반드시 말한다. 그때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라고.
수난의 서사는 종교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문학적 장치다.
신화 속 영웅은 반드시 시련을 겪고, 소설 속 주인공은 상처를 통과해 변형된다. 심지어 칼럼이나 철학 에세이에서도, 설득력은 언제나 ‘겪어본 자의 언어’에서 나온다. 수난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경험하고, 책을 읽고 생각이 깊어져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수난을 미화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고통을 겪어야만 깊어질 수 있다는 믿음, 상처가 있어야 진짜 인간이라는 관념은 은근히 폭력적이다. 그것은 개인에게 “더 아파도 된다”고 말하는 사회의 또 다른 명령이기 때문이다. 수난의 서사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고통이 질문이 아니라 의무가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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