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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아이 목소리

어른의 언어로 말하는 아이의 마음

by 구시안

나는 아직도 가끔 아이의 목소리로 생각한다.

다만 예전처럼 소리 내어 묻지는 않는다. 대신 속으로, 아주 조용하게 묻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말 단단해지는 일일까, 아니면 부서지지 않는 척을 배우는 일일까 하고.



어른이 된 아이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럽다.

말끝이 흐려지고, 질문은 늘 혼잣말로 끝난다. 누군가에게 “왜요?”라고 묻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것이 성장이라 배웠고,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질문들이 웅크리고 있다. 마치 방 한구석에 놓인 오래된 장난감처럼.



우리는 언제부터 감정을 설명하기 시작했을까.

슬프면 슬프다고 울기보다는, 왜 슬픈지 분석하고, 그 감정이 합리적인지 따져본다. 화가 나도 바로 분노하지 않는다. 이 분노가 과한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지, 나의 상처는 충분히 성숙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스스로 검열한다. 그렇게 감정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생각은 점점 복잡해진다. 아이는 울고, 어른은 참는다. 그 차이가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심리학은 말한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단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꿀 뿐이라고.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아이들은 종종 이유 없이 지친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어도 공허하고, 충분히 잘 살고 있음에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것은 아마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는 일이다.

세상은 더 이상 흑백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누군가의 잘못을 단정 짓기보다는, 그 배경을 상상하게 되고, 옳고 그름보다 상황과 맥락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분명 성숙이지만, 동시에 아이의 단순한 정의감이 희미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 속의 어른들은 늘 고독하다.

그들은 많은 것을 알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경험은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침묵도 길게 만든다. 어른이 된 아이의 목소리가 칼럼처럼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감정의 독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호소하기보다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조심스레 글자를 놓는 행위. 그것은 울음 대신 선택한 방식의 솔직함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세상을 믿고 싶다.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고, 진심은 언젠가 닿으며, 사람은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 믿음이 깨질 가능성까지 함께 품는다.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는 법을 배웠고, 너무 많이 바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래서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어른의 논리는 점점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아이로 산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우리는 아이의 감수성과 어른의 사유를 동시에 지닌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웃지 않지만, 웃음의 의미를 알고, 쉽게 울지 않지만, 눈물의 무게를 안다.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는 않지만, 그 복잡함 속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어쩌면 진짜 어른은 아이를 완전히 버린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속도를 늦출 줄 알고, 가끔은 이유 없이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 계산하지 않은 감정에 잠시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어른이 된 아이의 목소리는 그렇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작은 저울이 된다.



오늘도 나는 깊은 밤 조용히 묻는다. 잘 살고 있니, 괜찮니,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니니.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흔들리며. 그것이 어른이 된 아이로 살아간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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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6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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