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의 점안

시(詩)

by 구시안

새벽 두 시의 점안 - 구시안



새벽 두 시,
방은 잠들지 않은 눈 하나처럼 열려 있다.
나는 불을 켜지 않는다.
어둠이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약병을 연다.
작은 플라스틱의 숨결,
뚜껑이 돌아가는 소리는
오늘 하루를 마감하는 마지막 문장 같다.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문장.

고개를 젖힌다.


천장은 흰색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의 색을 하고 있다.
그 위로 내가 버리지 못한 말들,

지나치게 선명했던 장면들이
느리게 떠다닌다.


한 방울.
눈에 떨어지는 것은 약이 아니라
시간이다.
따갑다.
이 세계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확인처럼.


눈을 감으면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무너진다.
나는 다시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아무도 아닌 것이 된다.


이 모든 변화는
단 몇 초 사이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회복을
빛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회복은 대부분 이렇게
어둠 속에서,
혼자,
눈을 감은 채 이루어진다는 것을.


약은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눈 안쪽에 잠시 머문다.
나 역시 그렇다.
이 세상에 완전히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잠시 머무는 중이다.


깜빡이지 않으려 애쓴다.
버티는 일은 언제나
눈을 크게 뜨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삼키는 일이라는 걸
이 시간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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