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아는 꿈
잠시 꾸는 자각몽은 깊은 밤의 표면에 얇게 떠 있다. 꿈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세계는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진눈깨비가 내린다. 눈과 비의 경계에서 망설이는 입자들이 어둠을 통과하며, 소리 없이 바닥을 더듬는다. 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고요가 아니라, 고요를 닮은 밀도다. 나는 걷고 있지만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이 밤은 기억을 기록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희미한 입김이 공중에 잠깐 머문다. 숨이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의 존재는 흰색으로 번역된다가 곧 사라진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이렇게 짧다. 그러나 자각몽 속에서는 그 짧음마저 충분하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차가움이 피부에 닿아 있다는 감각, 진눈깨비가 코끝에서 녹아내리는 미세한 시간. 모든 것이 ‘알고 있음’이라는 빛에 비추어져 과장 없이 드러난다.
겨울 바다는 밤에도 움직인다. 검푸른 물결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삼킨다. 파도는 낮보다 낮은 목소리로 해안을 두드리며,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는 늘 거기 있지만, 겨울의 밤에는 더 멀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 이해하려 해도 끝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깊이. 자각몽 속의 나는 그 거리를 안다. 다가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허공 위에는 갈매기가 있다. 날갯짓은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는 분명하다. 갈매기는 바다와 하늘 사이의 문장처럼 떠 있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다만 움직임으로 의미를 완성한다. 이 밤에 갈매기를 본다는 것은, 현실의 규칙이 잠시 느슨해졌다는 증거다. 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각몽에서는 의심조차 불필요하다.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상태가 된다.
진눈깨비는 여전히 내리고, 입김은 계속해서 사라지며, 바다는 묵묵히 숨을 고른다. 갈매기는 허공을 가르지 않고, 허공에 머문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너무 명료한 것은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밤은 다시 하나의 밤이 되고, 바다는 지도 위의 바다가 되며, 갈매기는 기억 속의 점으로 남는다. 그러나 잠시 꾸는 자각몽은 흔적을 남긴다. 세계가 꼭 설명될 필요는 없다는 확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는 기억. 깊은 밤을 건너온 이 산문처럼, 조용히 다가와 조용히 떠난다.
고립된 빛은 언제나 홀로 도착한다. 그것은 소리보다 먼저, 의미보다 앞서, 세계의 가장 얇은 막을 통과해 새벽의 방 한가운데에 내려앉는다. 명료한 정적은 그 빛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아니라, 움직임이 필요 없어진 순간의 정적이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은 밤의 잔여물과 낮의 예고 사이에서 망설이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시간을 천천히 밝힌다.
그 빛은 군중을 싫어한다. 창밖의 가로등이 하나둘 꺼지고, 창틀에 걸린 먼지가 미세하게 드러날 때, 고립된 빛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그것은 벽을 장식하지 않고, 사물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윤곽을 허락한다. 사물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도록, 각자의 거리를 지키게 하는 배려처럼, 빛은 침묵으로 경계를 긋는다. 이때 방은 넓어지고, 마음은 좁아진다. 좁아진 마음은 오히려 정확해진다. 불필요한 생각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것만이 또렷해진다.
명료한 정적 속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새벽은 시계의 바늘을 잠시 놓아준다. 어제의 피로와 오늘의 의무가 서로를 부르지 않는 시간, 기억은 낮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잦아든다. 푸르스름한 빛은 그 파도의 끝에 서서, 감정의 가장자리를 차갑게 식힌다. 슬픔은 선명해지고, 기쁨은 절제된다. 어떤 감정도 소리치지 않는다. 모두가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이 빛 아래에서 사소한 것들이 중요해진다. 컵의 테두리에 맺힌 물기, 책장 사이의 그림자, 숨을 들이마실 때 가슴이 미세하게 확장되는 감각. 고립된 빛은 사물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찰자를 드러낸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선명해진다. 판단은 늦춰지고, 이해는 앞당겨진다. 정적은 공백이 아니라, 해석을 위한 여백이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은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떠날 때조차 소란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낮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우리에게 작은 규율 하나를 남긴다. 명료함은 소음의 반대가 아니라, 절제의 결과라는 것. 고립은 단절이 아니라, 집중의 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조용한 순간에야 비로소 세계는 우리에게 정확한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
유난히 혹독하게 추워지는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표정을 바꾼다. 기온이 떨어진다는 사실보다 먼저,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움은 계절의 통보처럼 분명하다.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지만, 도시는 서두르지 않는다. 추위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깊이 속에서, 도시는 자신이 가진 윤곽을 다시 드러낸다.
아름다움이 통과하는 순간은 대개 짧다. 그것은 머무르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얼어붙은 인도 위를 스치는 낮은 햇빛,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겹쳐지는 타인의 숨결. 그 모든 것은 소유될 수 없기에 더욱 선명하다. 아름다움은 사건이 아니라 통과이며, 우리는 그 통과를 알아차리는 쪽에 가까울 뿐이다.
혹독한 추위는 어둠을 밀어낸다기보다, 어둠의 위치를 바꾼다. 골목에 고여 있던 그림자들은 서서히 이동한다.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 빛은 어둠을 제거하지 않고 초대한다. 어둠에 있던 것들이 빛으로 이동하는 순간, 사물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벽의 균열, 오래된 간판의 흔적, 창가에 놓인 화분의 마른 잎까지도 자기 이야기를 드러낸다. 빛은 사물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순간, 도시는 가장 차갑지만 동시에 가장 투명하다. 숨겨졌던 것들은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기대가 함께 얹혀 있고, 창문 너머의 실내는 바깥의 추위 덕분에 더 따뜻해 보인다. 빛으로 이동한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꾼다. 밤은 여전히 밤이지만, 이해 가능한 밤이 된다.
도시는 그렇게 혹독함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정제한다. 아름다움은 그 과정 중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우리는 그것을 본 기억만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래간다. 가장 추운 날에, 가장 분명하게 본 것들은 쉽게 녹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던 순간의 감각은, 시간이 지나도 도시의 온도처럼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휴식의 보상처럼 도착하지 않고, 마치 모든 말이 제 역할을 다한 뒤 스스로 물러난 결과처럼 남는다. 명료한 정적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상태다. 낮 동안 겹겹이 쌓였던 설명과 변명, 불필요한 대화들이 천천히 가라앉고, 남아 있는 것은 정확한 무게의 피로뿐이다.
이 시간에 떠오르는 사람은 늘 해독할 수 없다.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얼굴인데, 하루의 끝에서는 낯설다. 말의 의미보다 침묵의 간격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던 사람, 가까웠으나 끝내 이해하지는 못했던 존재. 기억 속의 그는 문장이 아니라 암호처럼 남아 있다. 해독하려 할수록 의미는 멀어지고, 이해를 포기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윤곽이 보인다.
희끗한 빛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창은 밤과 실내 사이에 애매한 경계를 만든다. 가로등의 빛은 흰색에 가깝지만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다. 그 빛은 가구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고, 벽에 걸린 그림자를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이 방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깨어 있지도 않다.
그 사이에서 꿈의 기운이 퍼진다. 아직 잠들지 않았지만, 이미 현실은 느슨해졌다. 생각은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고, 감정은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다. 침묵은 더 깊어지고, 정적은 점점 선명해진다. 명료한 정적 속에서는 하루의 의미가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하루가 하나의 덩어리로 접혀, 조용히 옆에 놓인다.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은 이내 빛 속으로 섞이고, 희끗한 빛은 꿈의 기운과 뒤섞여 방 안을 채운다. 현실과 꿈의 경계는 이 시간에 가장 얇아진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흐릿한 상태. 침묵은 마침표가 아니라 여백이 된다. 내일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이 여백이라는 듯이.
이렇게 하루는 끝난다. 소란 없이, 설명 없이. 길었던 시간은 침묵으로 정리되고, 방 안에는 잠들기 직전의 공기만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공기 속에서, 아무것도 해독하지 않은 채로 잠에 가까워진다
이 밤은 수수께끼에 가깝다. 한밤중에 짖는 개의 울음이 이유를 묻는 질문처럼 공기를 가르고, 답은 오지 않는다. 강한 조명이 켜진 곳으로 별치 떼가 밀려든다.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빛에 이끌려 잠시 길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한산해진 도로 위에서는 공기가 느슨해져 차로가 미세하게 일렁이고, 자동차들은 서두르지 않은 채 천천히, 각자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는 듯 움직인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해진 시간이다.
이런 밤에는 문득 생각한다. 만약 새벽에 움직이는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나비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소리를 남기지 않고, 흔적을 강요하지 않으며, 빛과 어둠 사이를 가볍게 통과하는 존재. 이유 없이 나타났다가 이유 없이 사라지는 것. 이 밤의 모든 움직임은 그런 나비의 비행처럼 보인다.
입에 문 담배가 한 바퀴 휘돌아가며 연기를 남긴다. 연기는 형체를 만들었다가 곧 사라지고, 그 현상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가장 깊고 환한 곳을 생각한다. 깊다는 말과 환하다는 말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장소. 기억의 바닥이면서도 의식의 중심 같은 곳. 그러나 생각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나는 담배불을 꺼버린다. 빛은 스스로 사라질 때 가장 정확한 역할을 마친다.
하얀 화면 위에는 누군가가 쓴 하얀 시가 드리워져 있다. 읽히기 위해 쓰인 것인지, 사라지기 위해 남겨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 나는 그 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저 흰 위에 흰 것으로 남아 있는 흔적을 지켜본다. 이 시간은 자각몽과 닮아 있다. 깨어 있지만 꿈을 꾸고 있고, 꿈을 꾸고 있지만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
나를 바라보는 책상에 놓인 달마도에 보리달마가 튀어나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말보다 침묵, 설명보다 직관을 중시한 인물이라 명언 역시 단정하고 단호한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말한 진리는 어디 있냐고. 말과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라는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나는 이유에 대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이라 말해던 당신의 참을성에 대해. 설명되지 않는 여백. 당신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그러다 새벽녁이 된다. 자각몽에서 깨어난 순간처럼, 바람이 분다. 밤의 잔여를 정리하듯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개의 울음은 멀어지고, 별치 떼는 다시 흩어지며, 도로는 본래의 단단함을 되찾는다. 자동차들은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나비를 닮았으면 했던 영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부재조차 이 밤의 일부였다는 것을, 바람은 말없이 알려준다.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밤은 끝난다. 설명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남고, 나는 그것들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아침을 맞는다. 어쩌면 가장 깊고 환한 곳은, 끝내 도달하지 않는 편이 더 옳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