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시간
산문은 유리창 같은 것이라고 되내이고 있었다.
노동계급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의 입술 주변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성직자처럼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굳이 면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술은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하나의 정치적 태도에 불과할 테지만, 나는 그 변함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상을 마음 한편에 탑재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갓 나온 청년이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다양한 충동과 호기심이 서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하루 일과 속에서 사람들의 기분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지켜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집으로 돌아가 써 내려갈 수 있는 무언가가 이미 나에게는 기분 좋은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나의 인생 자체가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나는 제법 괜찮고 밝고 긍정적인 묘사로만 채워진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그 소재가 달라져 버린 것뿐이라고 되뇌는 밤들이 많았다. 오 년 동안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했고, 또 십 년 동안은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성과는 미흡했으며, 다시 십 년 동안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감정의 자리에 머문 채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일상을 마치고 밤이 내리는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그것을 ‘나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 여러 권의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공책을 펼친다. 마치 어린 시절 칸이 넓은 일기장처럼 생긴 이것에 낙서를 시작한다.
나는 이 일기장을 주기적으로 사기위해 동대문 문구도매 골목을 돌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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