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사라지지 않는 법

by 구시안


이끼는 급하지 않다.
자라야 할 이유도, 증명해야 할 속도도 없다.
비가 오면 젖고, 해가 들면 말라 가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늘어난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사라지지 않게.

이끼는 벽을 선택하지 않는다.
버려진 돌에도 붙고, 오래된 계단의 그늘에도 눌러앉는다.


사람이 손을 대지 않는 곳,
아니, 손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몸의 색을 완성한다.


한때는 깨끗했던 것들에 이끼는 가장 먼저 도착한다.
새로 지은 담장은 금방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습기가 스며들면 이끼는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기억한다.
시간이 먼저고, 이끼는 그다음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늘 이끼가 먼저 보인다.


이끼를 보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리되지 않음의 증거,
방치의 흔적,
지워야 할 얼룩처럼 여긴다.
그래서 솔로 문지르고, 물을 뿌리고, 다시 원래의 색으로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원래의 색이란
사실 잠시 빌려 쓴 표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끼는 묻지 않는다.


왜 여기인지,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 언제 떠나야 하는지.

그저 조건이 맞으면 남고,
조건이 사라지면 조용히 마른다.


죽었다고 부르기엔 너무 느리고,
살아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 담담하다.


나는 가끔 이끼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주목받지 않아도 되고,
날카롭지 않아도 되며,
금방 소비되지 않는 문장.


습기처럼 스며들어
어느 날 문득 발견되는 글.
읽은 사람조차 언제 읽었는지 잊어버리지만,
지워지지는 않는 문장.


이끼는 숲을 장식하지 않는다.
다만 숲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바닥을 덮고, 물을 머금고, 무너짐을 늦춘다.


그 역할을 설명하는 이름은 없지만, 없었다면 이미 사라졌을 것들이 많다.

이끼는 늘 아래에 있다.
발밑, 그늘, 벽의 이음새.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있을 때
시야 밖에서 조용히 자란다.
그래서 이끼를 본다는 건
잠시 고개를 숙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바쁜 얼굴들 사이를 지나며
문득 벽 아래를 본다.
거기에는 늘 이끼가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시간을 견뎌낸 방식 하나를
가만히 보여 주는 존재.




사라지지 않는 법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남겠다는 욕망보다 먼저 오는,

지워질 가능성을 이미 받아들인 마음에 가깝다.

대부분의 문장은 읽히지 않고,

대부분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만이 크게 남고 싶어 한다.

반대로, 사라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남는 방식을 바꾼다.


이 마음은 조급함의 반대편에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욕망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박수는 순간이고,
유행은 휘발되며,
주목은 언제든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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