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 바른 나라에서 살아남기
아첨꾼이나 멍청이들만 모여 절하는 곳에 서도
나는 절대 허리를 굽히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일과 사랑에 빠져 사는 날도
눈을 한 번 찡긋거리거나
최대한 몸을 한 번 뻗을 정도의 게으름뿐이었고
그 이상 수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 하니
고통으로 일그러진 입에서 뱀들이 기어 나와
혀를 날름거릴 것 같아
입을 곧게 하고 다시 여며 잠근다.
사방이 뱀이 휘감은 광경에 비명을 지를 바에야
내 입 하나는 뱀이 못 튀어나오게 하고 싶었다.
그들과 엉키고 싶지 않아서.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상당히 황폐하고 피곤할 것 같다.
옛날 극장에 걸린 손으로 그린 포스터 속 사람들이
튀어나와 뒤를 덮치지는 않을까.
자욱한 파편들 사이로
열 손가락이 삐죽 튀어나와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눈에 달린 커튼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이 궁금하여 써보게 된 소설은
몇 년째 쓰이고 벗겨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낮의 체조는 왕성한 창조의 에너지,
즐거운 공상과 상상의 어딘가에서 뛰어놀다가
욕실을 향해 몸을 닦았다.
과연 예의 바르고 적절한 타이밍에
욕실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가 두려울 정도로
입욕제의 향이 모든 세포와 근육을 이완시키고 있었다.
이런 매혹적이며 은혜로운 순간을
휘두를 생각 따위는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고
그저 녹아내렸다.
시간만 잡아먹고 귀찮기만 한 정보들을
머리에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순간.
항구적 가치를 지닌 책을 쓰는
모든 작가들을 존경한다는 마음으로
배에 힘을 주고 있을 즈음,
물속에 기포 방울이 여덟 개 생겼다가
터지는 것을 바라보니
작은 웃음이 났다.
청소부만큼 날렵하고 재빠르게
몸 구석구석 도시의 먼지를 제거하고
매혹적인 망각과 몽롱함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을
이제는 마음 놓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물들었다.
문학에도 야만성은 존재하기에
비밀스러운 희열을 꺼내 들고
열 손가락을 마음껏 제쳐볼까도 생각하다가
그 손의 열기를 누그러뜨린 것은
차갑게 달아오른 맥주 한 캔이었다.
빠르게 조리를 시작해
파스타 나부랭이 정도의 모양을 가진 것을
입안에 넣고 마시는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약간 산만할 뿐,
특별히 뛰어나게 실리적인 편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덜렁대도 상관없는 집구석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추진력이 근면할 정도로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들에게 들릴 평가는
지나가는 개나 줘버리지 하며
작업 중이던 회사 일거리는 잠시 멀리 치워두었다.
위대한 가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오직 본연의 특색에서만 유래된다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먼지 한 톨 없이 반짝거리는
도시의 거리를 그리는 일과 무엇이 다른지를 비교해 보았다.
누가 뭐라 하면
기만함을 발휘해 그 일을 피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까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가에
목말라하는 사슴도 아니고,
한 마리 웅크린 뱀이나 되어
똬리를 트는 게 현명하겠다 싶었다.
지나가는 새나 잡아 먹으면서.
자유사상가들이 선호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시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구였더라.
누구였더라.
수염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다 만다.
낯선 단어에 대해 보충 설명이 필요한 날에는
에너지가 떨어진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말을 아끼려는 편인데
유난히 오늘따라 질문이 많은 사람이 따라붙었다.
사회 구성원은 됐고, 개인 몸뚱이쯤으로 생활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였다.
노동이 어느 정도의 진보를 이루었는지
내게 듣고 싶지 않다면 멀리 꺼져 줬으면 좋겠는데,
예의 바른 어법을 바란다면, '성 차장' 에게 슬슬 기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근데 왜 하필 나인가.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을 뿐인 나에게 다가와
왜 그 지독한 향수의 내음을 내고 있는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자꾸 따라붙는 대표의 몸에 뿌려진
향수 냄새가 그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한 뼘만,
이왕이면 열 뼘만 떨어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먹고 살 걱정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등신’이라는 말을 혼자 삼키다가
예절로 명성이 높은 나라에 살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그의 눈을 마주하며
질문을 받아내는 데 익숙해져 가야 했다.
눈부신 걸음걸이로
한 시간가량을 괴롭히다 돌아가는
대표의 구두 굽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즈음
담배가 당겼다.
상상 가능한 우둔함이
총체적으로 뭉뚱그려진 상태에서 피우는
담배 맛이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나는 여전히 교양도 없고
예의도 없지만 무작정 천진난만하게 삶을 기쁘게만 받아들이는 무리들을
천하의 등신이라 부를 것이고, 보충 설명을 줄줄이 덧붙이겠지만
그것은 열등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할 것이다.
항상 고요하고 잔잔하지 않은
‘사회’라는 동네에서 살아가며 늘어난 것은 담배와 상상과 공상과 망상,
혹은 ‘등신’이라는 단어의 추상적 개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생명의 존귀함에
도박 따위는 걸지 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책상을 지키고 있다.
경멸당한 모든 요소들이
살아 숨 쉬는 회사에서,
더 풍요로운
더 순수한
무언가가 솟아나기를 바라며.
일을 하다가 글을 쓰는 것이.
이것도 하나의 땡땡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