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조용히 만들기 위한 말들
사람들은 위로가 선하다고 믿는다.
말을 건네는 쪽도, 말을 받는 쪽도 대체로 그렇게 합의한다.
위로는 상처를 덮는 손길이고, 고통을 나누는 언어이며, 인간다움의 증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위로를 받을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숨이 막힌다.
마치 말해도 되는 선을 넘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를 받은 것처럼.
위로는 종종 고통보다 빠르게 도착한다.
아직 아프다고 말하기도 전에,
아직 무엇이 문제인지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서둘러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한다.
그 말은 미래형이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위로는 고통을 현재에서 밀어낸다.
지금의 상태를 견디는 대신,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약속으로 상황을 봉인한다.
그리고 그 봉인은 대부분 풀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위로를 건네는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고통을 오래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불편하고, 설명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위로는 필요하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안정을 위해.
“네 잘못은 아니야.”
이 문장은 얼핏 따뜻하다.
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끝내는 문장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왜 이 구조가 유지되는지,
왜 늘 같은 사람이 같은 고통을 겪는지.
그 모든 질문은
‘잘못이 아니니까’라는 말 아래 잠긴다.
위로는 책임을 지워주지만,
문제도 함께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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