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 대한 혐오

다정함이 사람을 낮추는 방식

by 구시안

연민은 언제나 좋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부드러운 목소리, 낮춘 시선, 조심스러운 어조.
그래서 사람들은 연민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연민은 선의의 감정이고, 인간다움의 증거이며,
도덕 교과서 속에서 늘 정답으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연민 앞에서 자주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연민이라는 감정 자체를 향해 있다.

연민은 대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같은 높이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연민을 느끼는 순간,
느끼는 쪽은 이미 마음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연민은 이해가 아니라 거리다.
그리고 그 거리는
생각보다 쉽게 권력의 형태를 띤다.

사람들은 말한다.
“불쌍해서 도와주는 거야.”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상대가 스스로를 설명할 기회를 빼앗는 폭력이 섞여 있다.


불쌍한 사람은 말이 길어지면 안 된다.
불쌍한 사람은 이유를 설명하면 안 된다.

불쌍한 사람은 감사해야 한다.
연민은 이렇게 조건을 단다.

연민은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다.

연민은 고통을 단순화한다.
맥락을 지우고,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남긴다.


“저 사람은 저 상태다.”
그 문장 하나로
한 사람의 삶은 요약된다.


나는 연민이
사람을 가장 빠르게 평면화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보다 빠르고, 혐오보다 조용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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