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압력에서 아주 잠시
겨울이라는 계절에 존재하지도 않는 풀밭을 다니며
먹을 거리를 찾던 까마귀와 까치들만 감시했는지도 모른다.
겨울에는 잡초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봄이면 잡초를 뽑고,
땅을 갈고,
가지를 다듬을 것이다.
이른 귀가길 후
잠시 나른한 잠을 자고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속옷을 손빨래하고
담배를 한 대 물고
새로 사온
낱말 퍼즐을 했다.
이제 더이상 답이 티나는
오래된 낱말퍼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보상자를 보다가 음악을 들으니,
이 모든 일이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불편한 것처럼,
어쩌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살이와 상관없이
나는 이미 마음이 놓여 있다.
공기에 미동도 없다.
시드니는 지금 여름이겠지.
바다에서 수영하는 상상을 하지만
집의 소파는
나의 육체를 담기에는 글러먹었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표시하는 선을 긋는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 속에
쌓인 것이 얼마인데
그것을 새로 시작한단 말인가.
억울하다.
새로울수록 더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빛바래져 가게 내버려 둔다.
밤은 가끔 나에게
납으로 된 망토를 선사한다.
너무 무거워
움직일 수 없는 망토.
그 망토를 입는 날이면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아
시계를 보게 되지만
고작 오 분이 흘러가 있을 뿐이다.
늘 힘들고
잔인한 것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끄러움의 옷이 되었다가
형벌이 되어 돌아오는 망토는
그렇게 밤마다 입혀진다.
무의미한 방송.
웃음소리로 장식된
바보 같은 방송.
보고 즉시 잊히는
쓸데없는 것들.
그렇게 또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윌트 휘트먼의 시집을 집어 든다.
차분하게 읽기만 해진다면
좋은 밤이 될 것이다.
풀잎.
그 제목에 손이 간다.
푸른 정맥이
스탠드 불빛을 따라 흐르고
하얀 책장을 넘기는 순간
휘트먼의 언어에 잠긴다.
풀잎은
완성된 시집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신화로 만들려다
남긴 거대한 흔적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
지금 여기의 육체와 욕망.
나르시시즘 같으면서도
그렇지만은 않은 문장들.
운율도, 정형도 없다.
종교적이면서도 반종교적이다.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장대한 자기소개서처럼 느껴져
책을 덮는다.
휘트먼의 심오한 세계를 탐험하기엔,
더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몽롱하고 나른한 밤으로 물들어가는
지금, 이 시간이 더 좋아서다.
반차의 즐거움을
끝내 찾지 못한 하루.
생각은 머릿속에서
뛰어오르는 벼룩들이다.
젊었던 육체는
시트 아래로 썩어가고
첫사랑이 열여덟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늙어버렸다.
앨범 하나를 밤새 듣던 일,
홍대에서 술을 마시며
음악에 맞춰 춤추고
소리를 지르며 웃던 밤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자가 울린다.
“너희 집 근처인데 한 잔 할래?”
한 발짝도 나가기 싫어 거절한다.
몇 안되는 지인 중 한 명이지만
예상되는 뻔한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여유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소중하니까.
정중한 핑계는
수천 가지다.
적당히 둘러대고
휴대폰을 꺼버린다.
나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몽롱한 휴식에 빠져들기로 한다.
나는 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쉬는 상태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이 느려지고, 의지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 순간에 나는 나를 내려놓는다기보다, 나에게서 조금 벗어난다.
몽롱한 휴식은 잠과 깨어 있음의 중간쯤에 있다. 몸은 의자에 앉아 있지만, 의식은 이미 다른 방으로 옮겨 간 상태. 창밖의 소음이 의미를 잃고, 시간은 분 단위가 아니라 밝기와 온도로 흘러간다. 이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떠오른다. 결론을 향하지 않고, 질문조차 되지 못한 생각들. 나는 그것들을 붙잡지 않는다. 붙잡지 않기에 피로하지 않고, 피로하지 않기에 죄책감도 없다. 몽롱함은 나에게 허락된 가장 온건한 무책임이다.
이 휴식에는 성취도 회복도 없다. 다만 잠시, 나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목적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드물게 찾아온다.
몽롱한 휴식은 끝나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끝난 뒤에야 알게 된다. 아, 잠깐 숨을 돌렸구나. 삶이 아니라 삶의 압력에서, 아주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