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깨어 있는 겨울의 기록

깨어 있지 않기로 한 시간

by 구시안

하루 종일 반쯤 잠든 상태로 일했고

꿈속인 양 숫자들을 계산했고

공허감 속에 글자를 적었다.

책상 위에 낙서처럼 휘갈겨진

잠시의 집중과 산만의 흔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과거의 감정은 그립지도 않은데,

문득 찾아든 감정의 파편은

그 순간을 잠시 살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해질녘 공원의 나무 그늘은 검푸르고,

서글픈 연못으로 흐르던 물소리는 얼어붙어

가느다란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늘 잘 손질된 잔디밭에는

그것을 감추듯 하얀 눈이 서려 있고,

거리의 우울함이 공원을 울타리처럼 둘러싸며,

위로는 높은 나뭇가지 너머

오래된 하늘에 녹슨 별이

다시 하나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가 어떤 날인지

궁금해지지 않아 졌다.


나의 관심을 돌릴 만한 무엇이

그 안에 있는지도,

내가 쓰는 글에 기록되어 가는 모든 것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 이 공허함의 그릇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이 있는지

굳이 보려 들지 않는다.


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내적인 졸음이 밀려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은 밤.

날은 겨울의 이불을

더욱 두텁게 드리웠으나,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늘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만물에 긍정적인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잠시 스며드는 긍정적인 평온함이

내가 숨 쉬는 공기 속에

쓴맛으로 어울려

하늘을 향해 뿜어지는

하얀 연기가 느리게 피어오르고 있다.


감각의 내면에

우리 삶의 현실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겹도록 반복된 말을 찢어버리고 나서

결국

깨어나 버리고 마는 내면과 마주치는 시간이 찾아와

그것을 무시하지 않기로 한 시간.

그것이 말하는 무엇이든

적어 줄 생각으로

펜을 들었다.


보일러의 열기가 달아올라

집 안은 봄처럼 따뜻해졌고,

나는 그 화원 안에서

이상한 혐오만을 키우는

정원사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열 손가락이 자유로워진 것에

나는 만족하고,

한편으로는 기묘한 자랑스러움이 감도는 중,


나의 어깨 위에

계절을 잊은 모기 한 마리의 몸통을

박살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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