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 믿었던 기억들의 끝에서
나는 현실의 풍경처럼 꿈속의 풍경을 선명하게 바라보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마치 무언가를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나의 꿈을 굽어 보는 것이다. 나에게 흘러가는 삶을 보는 일은 무언가를 꿈꾸는 일과 마찬가지기에.
한적한 해변처럼 고요한 밤이 좋은 이유가 낮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떠돌다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그저 좋은 이유에, 나의 밤 바닷가 산책길에 모든 것의 모든 바다가 크게 울부짖다가, 비웃다가, 화를 냈다가, 조용해졌다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사그라졌다가 그렇게 고요하게 가라앉는 시간이 편해진 것뿐이다.
길게 누워있는 평화가 오래 못 가는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것에 연민을 느낀다면 얼마나 자주 이런 반복을 해야 하는지 지쳐서 일 수도 있다. 인생은 시간보다 빠르고 슬픈데 밤바다의 파도소리는 이미 밤의 소리라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나의 나이는 숫자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밤 바닷가 산책에서 밤과 심연이 내게 털어놓은 비밀이었다. 내 안에서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잃어버린 것들과 찾았어야 했던 것들이 후회라는 단어로 물드는 밤이 길었던 만큼, 잃어버린 후에야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했을 뿐, 사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음을 깨닫게 될 때까지 감정이라고 착각했던 모든 기억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밤의 거대한 밑바닥에서부터
잔물결로 부서지는
시끄럽고 차가운 바다를
경험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느 누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까. 음악에 묻혀 권유하는 것이 많아지는 밤이기도 할 때면, 밤이 상기시키는 많은 일들 때문에 괴로워할 때도 있지만, 절대 밀려드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았다. 해변처럼 고요한 심장으로 육체 없이 인간적으로 떠돌기만 한다면, 얼마나 사람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지를,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은 이야기가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그동안 품고 있었는지를, 꿈속의 삶과
이 세상의 삶은 모두 저마다의 현실성을 갖지만, 얼마나 그 차이가 다른지를, 마치 가까운 것일수록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이 길게 지속되는 시간에 물들 때면, 그렇게 혼자만의 밤이 어떠한 이유에 길고 길어졌다.
꿈속의 모습을 원하지만
그것이
내 모습과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이 물들면
갑작스러운 혼란에 빠지기도 하며
설명할 수 없는 권태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아
일찍 침대에서 벗어나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허다하다.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힘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고, 정체 모를 충격에 온몸을 떠는 날도 있다. 문제가 무엇이든 답이 없으리라는 싸늘한 예감은 이미 나의 육체와 정신을 잠식한 채로 그렇게 사소한 동작을 할 때조차
극도로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 낸 몸은 고함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까지, 내 심장 쉬는 소리가 마치 사람처럼 말하는 소리같이 들리는 밤도 있다.
담배를 피우다가 재를 떨어뜨리고서야 창가에 기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밤이면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지평선이 가까이 오면, 희부연 푸른빛을 던지며 희미하게 밝아오는 달빛에 의지하며 몇 개 떠 있지도 않은 도시의 잿빛하늘에 가려진 밤에 떠 있는 녹슨 별들을 세어보는 날도 허다하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내 흘러넘치는 감수성이 간절히 바라던 휴식을 찾도록 도와준 것이다. 잠을 못 자고, 몇 시간 뜬 눈이 전부인 밤을 보내더라도 하루라는 이름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을 스스로 볼 때면 피곤보다는 그 밤의 이야기가 나에게 남겨준 것들을 생각하며 버텨내는 나를 내 노쇠함이 기댈 팔을 스스로 내주며, 그저 버텨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에. 잠에서 깨는 순간 삶의 어리석음과 삶의 커다란 위로를 위해 창밖으로 오래된 좁은 골목이 보이는 시야에 들어오는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밤에 적응을 한 것이다.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고 어떤 비밀들이 나타나 한 참을 이야기하다가, 어둠을 밝히는 성냥팔이 소녀가 잠시 켜보는 성냥불 같은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리면, 처음 지나가는 행의 단호한 발걸음을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모든 것에 지칠 때가 있다.
심지어
휴식마저
피곤하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모든 걱정과 아픔 아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을
낮의 풍경에서 마주하지만
그들은 강하지 않다.
그들의 갑옷은 강하게 빛나지만
얇고 무디며
가만히 바라보면
투명한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전도되는 걱정과 잃어버린 아픔이 싫어 사람을 멀리하는 다짐을 하면서도, 나는 살아 있기는 한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처럼 글을 쓴다. 인생이 이 밤의 창가에 기대어 영원히 서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럴 것이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멈춰 선 것처럼 똑같은 순간을 항상 지켜보는 것이라면, 창백한 입술로 말하는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계속 볼 것이고, 한줄기 담배 연기가 느리게 피어올라 멀리 흘러가는 것을 볼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경작지가 전부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자신이 소유한 그 땅이 메마른 땅이든 기름진 땅이든 상관없다. 차라리 재앙을 무서워하기보다는 그 땅에 일어날 모든 것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감각이 포착한 대상은 어김없이 그 땅을 밟을 것이기에. 나 말고도 발코니 없는 창문 난간을 디디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기에. 뭔가를 의미하는 듯 선명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 때문에, 그 땅은 시끄럽거나 황량해질 것이기에. 그들을 막지 않는다. 허락과 거절이 필요 없이 그들은 늘 함께 짧은 순간을 혹은 긴 순간을 그렇게 같은 땅을 밟았기 때문에.
그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현실 속에서
쉽게 바스러지고 마는
모든 것들을 인정할 뿐이다.
그것은
온통 혼란스럽지만
끝내
메아리처럼
들리게 하는
소리를 남기곤 한다.
많은 꿈을 꾸느라 지쳤지만,
그래도
꿈꾸는 일에는 지치지 않는
그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바다 위의 피아노.
살아가며
음악가를 한 명 만났다면
저는
앙드레가뇽을 가리킵니다.
피아노의 선율에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밤.
이런 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열 손가락은
이렇게 움직였습니다.
또 하나의 산책자를
만나는
책 한 권이 주는
소중한 기운을
그 사람이 써 내려간
모든 것을 느껴보는 밤.
두 눈이 담아 놓은
고전의 어느 작가의 한 페이지가
맴도는 밤.
그렇게 읽어가고
써 내려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앉아
저 또한 봅니다.
하루가
낮과
밤이
그렇게 지나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