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등 이후
완벽한 소등은 없다.
모든 존재와 사람들로부터의 완전한 격리도.
나에게는 언제든지 열 수 있는
창문이라는 것이 있고
언제든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기억도 환상도 없는 밤을 위해
과거와 미래의 사라짐을 위해
가볍고
미지근한 구름이 깔린 황량한 달빛이 물드는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 밤을 맞이한다.
밤의 경계선을 훨씬 넘은 시간.
이제야 느껴지는
하루의 바보 같은 행실.
생각 없는 행동.
혹은 선행을 하려다 생긴 실수.
모든 불쾌한 일은
이미 끝났음을
영향을 주지 않는 사건에 불과했다고
간주해 버린다.
읽을 줄 모르고
말상대가 없더라도,
자신의 감각과 결코 슬퍼할 줄 모르는
영혼만 갖고 의자에 앉아
온 세상의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일상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하루를 영상을 통해 볼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대신해 탈출의 환상을 느낄 수도 있고, 머나먼 섬에 대한 꿈의 자취를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꿈을 실현한 사람의 생활을 얼마든지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을 살며, 다른 시대의 공원에서 열리는 축제가 아닌,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같은 지구라는 행성에 살아가며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풍경이 스쳐가다 보면,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집에서 티브이라는 존재를 치웠다.
몇 달이 지나가 버렸다.
상상 속 공원의 웅장한 산책로
아름다운 공간들은 세상에 즐비하게 보이지만,
시간을 죽이는 일이
비현실적인 일의 연속인 영상을 보기에는
나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티브이가 사라지니
더 현실적인 것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독을 탄 음료를 무심코 마시듯이
습관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지를 알게 된다.
티브이가 있던 자리에서부터 방안까지 친숙한 정원이 생겼다. 얼마든지 절반의 밤을 마음껏 즐기며 걸어 다닐 수 있는 생각의 정원이라는 것이다. 방해하는 소음이나 시간을 일부러 뺏길 필요가 없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얼마든지 지랄 맞은 생각에 잠겨 있어도 좋은, 홀로 틀어박혀 있는 듯 하지만, 수줍어 도망 다니는 법이 없고,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고요와 적막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알게 된다.
밤과 밤 사이에서 잉여의 삶을 살 엄두를 못 내는 사람처럼, 멈춰 있다가 꿈이 끝날 때처럼 잠시 멍을 잡고 깨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방에 자리하고 있고 더 이상 그들의 방에 자리하지 않는다.
뻑뻑한 눈꺼풀 속의 두 눈으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오히려 바보상자 하나가 사라진 이후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지금의 세상,
그리고 지금의 세대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세상은 이미
두뇌와 심장을 함께 지닌 이들을
점점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더 쉽고, 더 파괴적인 방식이 우선되는 시대 속에서
고민과 도덕적 불안 속에 자라온 나에게
이 시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남은 시간만큼은
기계에 기대지 않는 삶을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이미 로봇이 노동에 참여하고,
인공지능이 그려놓은 방식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 삶을 내가 편안한 대로 살겠다는데
누가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스스로 만족하며
고요하게 흘러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고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이성과 과학에 경도된 방법론에 도취된 세상에서,
복음조차 신화나 전설, 혹은 문학으로 치부된다.
이제 막 태어나는 생명들이 살아갈 미래는
마치 SF 영화처럼 낯설고 과장된 세계일 것이다.
그 속에 나까지 들어가 살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티브이부터 치우는 것으로 삶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는,
과학의 순진한 출발이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과정을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지켜볼 것이다.
실증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개념에 도취된
그들의 도덕성을 비판하고
인생의 모든 규칙을 샅샅이 탐구하며
갖가지 강령들과 부딪힐게 뻔한 미래도
나에게는 딱히 보잘것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아버지 세대의 견고한 과거의 반향이 아직 남아 있는 시대를 살았기에, 나는 그것을 함부로 파괴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무너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파괴해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지난 세대와 개인이 열정으로 이루어낸 것들이 무의미한 가치로 전락하는 세상에서, 나는 그 파괴의 흐름과 함께그 결과물까지 물려받고 싶지는 않다.
어리석은 자와
무감각한 자,
끝없이 동요하는 자는
언제나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삶의 방향과 승리마저
로봇에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의 끝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고 느낀다.
사고력의 높낮이를 논하게 되는 세상이
결여되고
부도덕함이 만개(滿開)하고
지나친 민감함이 가득 찰 것이 뻔한 미래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자연 속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어딘가 가식적이고
거짓처럼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게 만드는
그 순간의 환상조차 거부하고,
나는 결국
그 바보상자를 치워버렸다.
누군가가 문제를 풀어준다면
그것이 과연 나의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의식이라도,
기쁨을 주지 못하고
고통만을 상기시킨다 해도,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표현하고,
요약하고 비유하며 살아가고 싶다.
막을 수 없는 법칙이 세상을 지배하고,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미래가 온다 해도,
그것이 신의 변덕에 묶인 삶일지라도,
신이 인간보다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신들조차
이미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기에.
정의와 박애보다
우위에 있던
선과 악에 대한 무심하고도
추상적인 운명이라는 걸
손바닥에 그려진 운명이라는 것에
복종하며 산다는 것도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촌스러운 복종처럼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이 드는 그 흔한 밤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비유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그러한
지금에 집중하기로 하다.
과거고
미래고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도 않은 것이
인생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고백을 빼고 나면
이렇게 글을 쓰는 밤에 편안함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은 현실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달래주는 환상과
어루만져주는 착각 속을
건너 다니고 있는
밤의 시간만 존재하는 것인지
창밖으로
낯선 이들이 밤에
암흑을 쌓아 올리듯
잿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저 멀리 있는 산이
선명하게 덩그러니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무쇠 같은 푸름 아래
누군가가 검은 먹을 갈아 그려놓은 듯한
모습으로
밤의 뒤흔듦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하자 말한다.
사람이라면
스스로
표현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잊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오늘 밤도 듣게 되는
앙드레가뇽의 곡입니다.
좀 묵은 사람이
애써
시대에 발맞추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하던 일 그대로
살아가는
삶에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억지로
불가피한 것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물들어가는
시간에 맞이하는
또 한 번의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