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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5. 2022

천도교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천도교이야기 202203

* 아래 저의 글은 다음 인용하는 한 교인의 견해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이 내용들은 천도교인들의 토론방인 <안심정기>에 올려진 것입니다. 


<1>천도교는 간단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종교입니다. 대신사께서 항상 이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도는 많은 말이 필요없고 성경신 석자만 잘 실천해서 한울님 마음만 회복하면 그 다음은 무위이화로 만사지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절차는 주문 21자에 나와 있는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2>유교처럼 유식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도가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도 주문 21자만 열심히 외우면서 그 뜻을 깨닫고자 하면 3년 안에도 도안이 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3>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알고싶은 걸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만권시서를 공부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가르치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는 천도교식 공부법이 딱 맞습니다. 간단하고 쉽고 깊이있는 지혜 습득법. 시천주 조화정 만사지 법입니다. 그래서 긴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다들 외면하고 떠나버립니다. 우리만의 지혜습득법을 잘 활용해야만 포덕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천도교의 핵심은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되면 만사지는 무위이화로 이루어집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따로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저절로 알아서 잘 하게 되어있습니다. 천도교를 오래 했는데도 좀 거만해 보인다면 그 분은 아직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아래는 저의 글입니다.


1.  

(위 인용문 내용은) 저로서는 "천도교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로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입니다.  "성경신석자" "열세자(삼칠자)주문" "천심회복" 등에 관한 화암장님의 견해에 깊이 공감-동의하면서도(저의 관점으로 볼 때는 화암장님의 견해를 포함하면서도), "공부"라는 말에 유의하면, 좀 다른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좀 장황해졌지만, 아래에 제 생각을 말씀드려 봅니다.


2. 

천도교 주변에는 천도교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을 출판인(계), 학자(학계), 종교계(이웃종교인, 종교학), 동학인(비천도교-동학공부)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걱정의 요지는 “오늘의 천도교인들이 공부를 너무 안(못)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천도교인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고, ‘교단에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없음’과 관련한 구조 문제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넓은 의미의 천도교 공부에는 ‘동학(혁명)연구-공부’가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여기서 천도교-공부는 주로 교리-신앙과 관련된 부문을 말합니다. 


좀 더 내밀한 의미에서 이 말(‘공부를 안(못) 한다’)은 천도교인 중에 “내공 있는 분, 존경할 만한 분, 배움(말씀)을 청할 만한 분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첫째, ‘열세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둘째, 주문공부(마음공부)만으로 ‘내공 있는 천도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2.


첫째와 관련해서, 결론(제 생각)부터 말하자면 “천도교 공부는 주문공부와 더불어 이치공부를 겸전해야 하며, 이때 이치공부는 ‘경전’이나 ‘21자 주문’에 대한 공부만이 아니라 ‘만권시서’로 상징되는 폭넓은 지적(정서적) 공부를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학 창도 당시는 문맹률이 높고 문해력이 낮았으며, 여유롭게(?)  책을 보며 공부할 수 없던 ‘민중들’에게, 만권시서의 세계를 섭렵하지 않아도 ‘군자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열세자론”이었다면, 오늘날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 내지 공부 분위기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때에 여전히 ‘주문공부’(를 통한 마음공부)만으로 천도교 공부를 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과 평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족(궁금)한 내용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편이 더 빠르고 깊고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오히려 지적인 담론으로 천도교를 설명(포덕)하려 할 ‘필요가 없다/실효성이 없다’는 견해는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이는 ‘정보의 (쓰레기) 바다’ 문제 등 제반 여건과 앞서 말한 “천도교인들이 공부를 너무 안(못)하는 것 같다”는 세평이 있음을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는 오불관언(吾不關焉)하거나 ‘무지한 세상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세상사람이나 신입교인에게 천도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심어 주기 위해 ‘많은 말, 많은 지식 정보를 동원한 설명’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하는 상대방(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한 천도교의 교리나 사상을 충분히 (공부해서) 안다면, 짧으면서도 감응을 자아내는 도담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둘째, 주문공부(마음공부)만으로 최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천도교 공부 방법으로 (만권시서에 대한 집착보다) 주문공부(마음공부)에 집중하여, 영성(靈性=天性)을 계발하고, 시정지(侍定知)의 단계 내지 경지를 완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이치공부와 더불어 외적 환경이 겸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 해명해야 할 관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문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으며, 그 성패를 누가 어떻게 가늠(평가,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주문수련과 관련해서 교단 내에서는 “(1) 주문수련으로 최상의 경지(만사지, 인내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2) 이는 수도(수련)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3) 아니다. 천도교인들의 정성/수련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세 가지 쟁점/관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않으면, 주문공부 중심주의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화, 대중화(포덕) 문제입니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의 종교 기능의 축소(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통종교는 종교가 전반적인 사회문화 교육 기능과 종교 교육 기능을 아울러 수행하였다면, 오늘날 종교는 본래의 교육 부문 중 지극히 축소된 기능, 즉 주로 영성교육과 심리적 치유 등의 영역 이외에는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그러므로 종교가 (여전히)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영성-마음공부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마음공부-마음챙김-명상’ 열풍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탈종교’ 영역에서 ‘종교 영역’의 공부법을 전유(轉有: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듦)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점을 오히려 종교가 타산지석으로삼아야 하는 실정인 것입니다. 


4. 


그런데 주문공부든 마음챙김-명상이든, 문제는 이것이 ‘전수(傳授)’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각지불이(各知不移)’의 의미가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이 말은 가르쳐 주기 어렵다는 뜻과 함께 ‘일반화, 보편화’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시 말해 주문공부(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여 어떤 ‘종교체험’ 내지 ‘지혜열림’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불립문자’나 ‘이신전심’ ‘직지인심’ 등을 말하고 천도교에서 ‘사사상수’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주문공부만으로) 충분히 공부가 완성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알아보게 된다”는 말은 일종의 ‘희망고문’에 가깝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단계) 제 생각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하게 되는 것이 “일용행사가 도 아님이 없다(日用行事莫非道)”의 말씀입니다. 이 말을 “山山水水 -> 山非山水非水 -> 山山水水”의 계기성 속에서 이해되는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을 참고하면서, “도는 일용행사 아님이 없다”라는 말로 뒤집어 보고, 그 일용행사의 범주에 ‘만권시서’라는 말로 표현되는 “(넓은 의미의) 이치공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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