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Apr 28. 2022

빛과 어둠, 삶과 휴식

[모시는칼럼-001]

*이 글은 모시는사람들 주간칼럼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주간칼럼은 당분간 격주로 발행됩니다. 

중암 라명재 / 안중산부인과 의사, 천도교송탄교구장 


아침저녁에는 아직 선선해서, 코로나 후유증으로 약해진 기관지를 자극하는지 기침이 나오곤 하지만, 낮에는 20도 가까이 기온이 올라 실내에 있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4월은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와 온갖 꽃들이 만발했다. 화려하게 피어 자랑하던 벚꽃은 하룻밤 비바람에 모두 떨어져 길바닥을 어지럽히지만, 목련, 연산홍, 민들레, 망초 같은 꽃들은 비로소 한껏 봄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세상 한편에선 영화에서나, 역사 속에서나 본 듯한 무기와 폭탄과 죽음이 뒤섞인 아비규환 속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보는 사람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한다. 대규모 민간인 살상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런 모습이, 인간의식이 개명되었다는 21세기의 모습이 맞는가? 아무리 개개인의 욕심과 갈등과 다툼이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그걸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국가 간에 조정하고 타협하여 피해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나? 


결국 그런 기본적인 욕심-탐진치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게 사람인가? 그런 탐진치로 가득 찬 사람들이 혼자 걷는 게 아니라, 수십 톤의 차에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거나 하늘을 날거나 하는 세상은 누구 말마따나 어린아이들에게 칼과 총을 쥐어준 것 같은, 규모가 커진 위험이 일상화된, ‘위험사회’인 것인가? 도대체 어떤 욕심이 남의 것, 남의 나라를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빼앗으려 하는가? 어떤 감각이 그런 마음을 부르고 억제되지 않고 폭주하게 하는가? 그렇게 해서 좋은 것, 재산, 땅을 가지면 행복할까? 


우주의식은 전체의식의 총합이다. 세상의 부조리나 모순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도 아직 좋은 걸 갖고 싶은 욕망이 그만큼 남아 있어 그런 세상의 총 욕망에 일조한 것이 아닌가. 멀리 있는 사람들을 돕는 마음도 필요하지만, 내 주변과 나 자신에게 수시로 올라오는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가라앉혀 내 삶의 변화뿐 아니라 모든 우주의식의 욕망 총량을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지 만물의 개벽은 공기로써 하고 인생 만사의 개벽은 정신으로써 하나니, 그대의 정신이 곧 천지의 공기입니다. 지금 그대들은 가히 하지 못할 일을 생각지 말고 먼저 각자가 본래 있는 정신을 개벽하면, 만사의 개벽은 그다음 차례의 일입니다.” (의암성사법설, 인여물개벽설)


눈앞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야 내가 소유한 것도 아니고 한철을 나지 못하고 질 테니, 그 어여쁨을 마음껏 칭찬하고, 즐기련다. 즐기되 그걸 소유하거나 빼앗으려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고 물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향기 나는 라일락을 꺾어 집에 가져가고픈 마음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켜 놓은 텔레비전과 수시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에는 온갖 화려한 물건들이 색상과 기능을 뽐내며 자기를 사가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면, 꼭 사야 하고,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곤 한다. 하물며 마음이 백지같이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저런 유혹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스마트폰 등 스크린에 노출되는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아이들은 30분 이하인 아이들에 비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증상을 보일 위험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ADHD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주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도 5배 이상 높았다. 전체적으로 3~5세 사이에 스크린 노출이 많을 경우, 주의력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천천히 변하는 자연의 색과 움직임에 수 만년 동안 적응되어 온 우리 몸의 감각이, 스마트폰의 화려한 색과 빠른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성인도 불면증 등에 시달리기 쉬운데, 세상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의 경우, 그러한 빠른 변화가 세상의 본래 모습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거기에 맞는 과잉행동이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욕망에 자동 반응하도록 길러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또한 성인들도 야간에 밝은 빛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혈압과 당뇨,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 116명의 건강한 18-30세 연령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황혼 시간과 잠자는 시간 사이 빛에 노출되는 것이 멜라토닌을 억제해 졸림, 체열 조절, 혈압, 당 조절 같은 멜라토닌 신호 전달에 의해 조절되는 체내 생리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멜라토닌은 뇌 속 송과체에 의해 밤중에 생성되는 호르몬으로 수면-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혈압과 체온을 낮추며 불면증과 고혈압 및 암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왔다. 그런데 늦은 저녁 시간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생성이 억제된다고 한다. 만성적으로 빛에 노출되어 멜라토닌이 억제되는 것이 일부 암을 유발할 수 있고 멜라토닌 수용체 유전자가 2형 당뇨병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그동안 잘 알려져 온 바다.


어릴 때 시골 할머니 집에서, 어둑어둑해지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 위에서 저녁밥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러면 곧 어두워지고,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라디오 연속극 좀 듣다가 잠들곤 했다. 지금은 그런 초저녁이 아니라 자정이 가까운 한밤중이 되어도 도시의 야경은 눈이 부시게 환하다. 달빛을 길잡이 삼아 비행하는 곤충들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벌을 비롯한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고 야단들이지만, 곤충들뿐 아니라 사람들도 생체리듬이 깨지며 건강을 잃고 있다. 생명은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고 이어진 생태 고리들이다. 어느 한쪽이 손상되고 끊어지면, 전체 생태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 신호들을 범상히 넘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며 일하다가, 밖에 나와 길을 걸을 때도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 폰 속의 꽃을 보며 걷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이 되어 있다. 이를 처리하는 뇌도 과부하가 걸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그런 자극에 갖고 싶은 욕망을 키우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경제에 활력이 된다며 권장되기 까지 하는 세상이다. 탐욕이 커지면, 그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실망과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도 커진다. 세상의 갈등이 커지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물질이 유한하고, 그 근원은 결국 무에서 시작해 무로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기 전에는 이런 분노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로 인한 갈등도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일체가 무로 돌아가는 이런 이치를 알아야 탐진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틈틈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눈을 감고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갖자. 뇌를 쉬게 하자. 일어나 천천히 걸으며 자연의 싱그러운 녹색과 형형색색의 꽃도 감상하자. 거기엔 소유와 욕망이 꿈틀대지 않는다. 간간히 이렇게 몸도 마음도 초기화해서 쉬어야 한다. 생명의 기본은 반복이다. 활동과 휴식, 삶과 죽음, 낮과 밤…. 낮과 활동과 화려한 빛의 자극만 계속되고 밤의 어둠과 휴식이 없으면 생명과 삶 자체가 고장 날 수밖에 없다.


하루를 마무리 할 때도,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다가 자기보다, 불을 끄고 조용히 앉아 나를 비우는 가져 보면 어떨까? 조용히 묵상하면 하루 중 과한 마음과 말과 행동과 넘쳐흐르던 욕망이 자연히 돌아보아지고, 그조차 놓아 보내면 내 마음과 행동을 조절하는 한층 깊은 곳의 내 생명의 근원을 느낄 것이고, 그 생명 너머 생명이 있기 전, 그리고 생명 이후의 영원한 근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곳이 삶 이후의 휴식이고 죽음이다. 그렇게 조용히, 편안하게 내려놓고 잠이 든다. 그만큼 우주 전체의식의 총합도 조금은, 고요해지고 맑아졌기를 바라면서.(2022.4.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