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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26. 2018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처럼

『마음』 1, 2

김 혜 경 | 광주문화원 편집기자

[개벽신문 72호, 2018년 3월호] 작은 책장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씨가 빽빽하거나 조금 두꺼운 책도 좋으니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다시 읽기로 한다. 일본 근대문학의 토대를 확립하는데 기여했고 일본의 국민 작가라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 그의「 마음」은 등장인물의 사소한 표정 변화나 미묘한 말투가 내포하는 심상의 변화를 끈질기게 추적하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표출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내면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다. 그 섬세함이 어찌나 예리한지 지독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치밀한 세밀화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음』나쓰메소세키 지음 / 서석연 옮김 / 범우사

「마음」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되던 1914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다. 우리는 근대문명과 신학문에 대한 동경, 자유연애 등을 다룬 이광수의「 무정」(1917)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장편소설로 간주하는데, 계몽주의 문학의 한계를 넘지는 못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한 인간의 절망적인 고독감을 이렇듯 심오하게 다룬 소설이 발표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문학 역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없었던 당시 우리의 현실에 몹시 마음이 아프다.


선생과 친구 K 그리고 선생의 하숙집 딸 간의 삼각관계. K의 자살. K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의식으로 자괴감과 자기혐오로 외롭게 살다가 자살하고 마는 선생. 줄거리만 보면「 마음」은 흔한 연애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화자인 ‘나’와 선생의 만남, 양친과 ‘나’의 관계, 선생과 유서라는 3부로 나누어 꼼꼼하게 풀어 나간다. 천천히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이 가진 다중적인 심리들을 아주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대학생인 내 눈에 비친 선생은 세상사를 달관하고 초야에 묻혀 자신을 연마하는 지식인처럼 보인다. 적막할 정도로 고요히 사는 은자 말이다. 하지만 선생은 학생시절, 부모가 남긴 유산의 대부분을 숙부에게 빼앗긴 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세상의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도 없다. 그만큼 우울하고 고독한 사람이다.


이렇게 외로운 선생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 하숙집 딸이었다. 그런데 친구K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야비하게도 K 몰래 주인아주머니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 고백한다. 불우한 환경에다 선생의 도움을 받고 있던 K는 아주 강직하고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K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본 선생은 과거 자기를 기만했던 숙부와 자신이 다를 게 없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K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신경병적일 만큼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었던 거다.


여러 가족과 친지들 속에서 왁자하게 죽음을 맞는 ‘나’의 아버지에 비해 선생은 아내(하숙집 딸)에게 조차 자신이 죽는 이유를 알리지 못했다. 철저하게 고독했던 선생의 삶과 죽음이 너무 쓸쓸했다. 선생의 마음 안에 연이어 일어났다 흩어지는 자잘한 심상에서 끊임없이 겹치고 겹쳐져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도 모호한 상념들까지. 나쓰메 소세키는 걷잡을 수 없이 일렁이는 인간의 마음속 상태를 낱낱이 펼쳐 보인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와서는 제멋대로 덮쳐대는 마음속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며 끈질기게 파고든다. 대수롭지않아 보이는 내면의 변화까지 질리도록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신없이 그걸 좇다보면 한 인간의 마음에 한없이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아득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의 마음에 너무 깊숙이 들어간 탓이었을까. 함박눈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책읽기를 멈추곤 해야 했다.


나쓰메 소세키


어렵사리 책장을 덮으며 가늘게 한숨을 쉬고 있던 참이었다. 거실에 앉았던 아들 녀석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엄마, 엄마는 부모야, 학부모야?” 묻는다. 방금 SNS에서 짤방 하나를 봤는데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합니다” 하더란다. 

잠깐 머뭇대다 “부모였다 학부모였다 그런다….” 정말 그런 마음이다. 이랬다저랬다 한다. 아니 그 두마음을 다 갖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자고로 삶이란 멀리 보면서 인생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천해야 함을 아는 부모의 마음과 코앞에 있는 시험 성적에 마음이 쓰여 당장 밤샘 공부라도 해주길 바라는 학부모의 마음이 같이 섞여있다. 뒤죽박죽인 셈이다. 어찌 이리 상치되는 마음들이 아무렇지 않게 버젓이 동거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이런저런 마음들이 한꺼번에 다 내 안에 있을 수 있을까. 아들 녀석에겐 부모였다 학부모였다 그런다는 내 말이 조금 어처구니없게 들린 모양이다. 뚱한 표정이다.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마음이 동시다발로 함께 있다. 선함과 악함까지도 말이다. 그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제 마음대로 나아갔다 멈췄다한다. 내가 나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도 못한다. 조절은커녕 움직이는 대로 쫓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소릴 하고 있군… 진짜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 의견을 내고 있는 자리에서조차 ‘내가 지금 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지?’, ‘완전히 옆길로 새고 있군’하고 느끼기도 한다. 속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떠들기도 하는 거다. 게다가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으면서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꾸미기까지 한다.


또 어떤 마음에 한 번 빠지면 이런저런 마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저절로 떠올라 대는 통에 전혀 생뚱한 결론에 닿아 허둥대기도 한다. 완전히 삼천포에 빠져 한참을 제멋대로 요변을 떨던 마음 때문에 왜 그런 마음이 시작된 건지, 언제어디부터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 했던 건지 아리송할 때마저 있다. 그뿐인가 선생이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지 못하고 전전긍긍 했던 것처럼 나 역시 해야할 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 일쑤다. 내가 처한 상황은 어떠어떠하며, 심정은 이러저러하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밝혀야 함에도 말이다.


함수의 일대일대응처럼 상황A에는 마음①, 상황B에는 마음②.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간단명료하랴. 그렇지만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상황들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다양한 변수와 여건들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게 마련이어서 경우의 수가 수없이 많다. 그러니 이런저런 마음들이 한꺼번에 우후죽순 솟아댈 밖에. 거기에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도 되지 못해서 나의 마음을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한다.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다.


이참에 아들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좀 읽어 보라고. 읽고 나서 ‘마음’에 대해 나와 얘기를 좀 나눠보자고. 그러면서 책을 내밀면 읽어는 보려는가. 아들 녀석은 책이라면 만화책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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