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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25. 2018

평양의 봄

<별건곤> 제6호(1927.4.1) 

 
주요한


모란봉(牧丹峰)에 올라 남향하면 바른편은 기자묘(箕子墓)의 소나무가 울창하였고 왼편은 기름 같은 대동강(大同江) 물과 버들 피는 능라도(綾羅島), 멀리는 문수(文秀), 용악(龍岳)의 봉우리들이요 (九月山 봉우리가 봄 놀에 쌓여 잘 보이지를 않는다) 가까이는 대동(大同), 보통(普通) 두 평야, 이것은 푸르고 저것은 자주빛으로 하늘과 땅에 가득한 것이 화창한 봄바람이니, 수건 쓴 새악시들이 공연히 심란한 때가 온 것이다.

모란봉 - 통일신문 인용 


새벽에는 능라도 기슭 검푸른 물을 솔배가 한가로히 저어 내려갈 제 뱃사람의 노랫가락이 물 속에 상기된 새벽놀과 어리워 철석이는 놋소리가 부벽루(浮碧樓)에 완연히 들리어 온다.


또 보통강(普通江) 언덕에 질 고운 매흙이 풀리어서 보드러울 제, 종달새는 뵈지 않는 하늘에서 비비거리고 원시적인 가래에 소를 메워 밭이랑을 곡선 지워갈 제, 자루 길고 날 적은 호미로 메 캐러가는 계집애들은 바구미를 들었는데, 자세히 보면 붕어 새끼들도 봄이 왓다고 강물에 성큼 펄떡 뛰어오른다. 수수밭 갈던 옛 터에도 인제는 물이 넘께 되어 논을 풀었다.


진달래꽃은 솔메에 올라야 꺾을 수 있지마는 요새는 공장에 연기가 많이 나니 꽃 꺾으러 오는 '에미나이, 체니(처녀)'도 차차 줄어가겠지.


대동강 언덕(大同江岸) 낮은 기와집에서 동기(童妓)들은 춤이나 배우고 성밖(城外) '감자'(馬鈴薯)밭에 거름을 돋우게 되고, 관 앞 큰 거리에 먼지나 펄펄 일면, 근래에 신수입(新輸入)된 '왜벛꽃' 구경이 한창이나, 그까짓 구경이 단옷(端午ㅅ)날 동산에 오르는 것만 하랴. 

대동강 부벽루 

대동강(大同江) 물에 날아가 떨어질 뜻이 쌍그네가 공중으로 올라갈 때, 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가슴이 아찔 한다. 엿장수나 꽹꽝 떠드는 요술쟁이야말로 다른 때 같으면 보기 싫겠지. 그러나 수건 쓴 색시, 머리딴 '체니' 렁지 튼 기생들의 오색 치마저고리에 눈 홀리지 않을 사람이 없는가 보다. 

봄은 평양에서 서울로 흐른다 

작은 '멩질' 큰 '멩질'은 동산에 오르고 셋째 날은 기자림(箕子林)으로 내려가는 것이 풍속이다. 소나무 그늘에 송충 잡던 회칠이 남았을망정 돗자리 하나에 날개가 돋쳐 팔리도록 사람이 난다.


봄은 사람이 가장 자연의 품에 안기기 적당한 때다. 풍물의 미로서 자랑하는 평양의 봄은 그 송림과 양류(楊柳)와 풀밭으로 자연미를 맛볼 줄 아는 평양인의 애토심(愛土心)을 환기케 한다. 그래서 공장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경제 공황이 가뭄보다 심하더라도, 칠성문(七星門) 외에 빈민굴이 나날이 늘어가면서도, 봄이라면 사람 많이 나기로 둘째갈 데 없는 곳이다.


평양의 봄 - .

그것은 또 나의 어린 시절의 희미하고 다정한 추억이 더음이(?) 돌아가는 곳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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