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철학 2 : 철학교육의 가치실현을 위한 교과 통합 방안 제시
[편집실 주] ‘청년철학’ 마당을 개설한다. 이 마당은 ‘청년농부’나 ‘청년포럼’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소리를 “모시고 살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과 언어가 필요하다. 이 마당을 통해 장차 한국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의 참신한 생각과 발랄한 언어가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자유롭게 발신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8년 2학기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개설된 <한국철학사> 수업시간에 제출한 기말레포트를 수정
한 것이다.
** 이 글은 <개벽신문> 81호(2019.1)에 게재된 것이다.
철학은 대부분 쓸데없이 복잡하며 우리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되곤 한다. 철학이 아닌 과목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내신이나 수능 시험에서 중요한 비중한 과목이니까”, “그 정도는 상식이니까.” 이렇게 말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철학과 같은 복잡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많은 철학자의 이름과 사상을 기억하지 않아도, 머리를 싸매며 글을 쓰는 고통이나 자유를 굳이 느끼지 않아도, 삶은 문제없이 흐른다. 그러나 “문제없이 사는 것”과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철학은 결코 무용하지 않다. 바로 이 점이 더 많은 이들이 철학을 소재로 사유하면서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보는 이유이다.
‘교과 통합’이란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과 간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최근의 시도이다. 주제를 제시하고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개개인의 깊이 있는 사유를 자극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때 학생들은 인식주체자로서 교육적 체험을 하는 당사자이다. 따라서 학문적인 가치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학습자 개인에게 주체적이고 통합적인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교육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교과 통합은 학생들이 보다 질 높은 사유와 교육적 활동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1
물론 다수의 교과나 주제를 통합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더 유의미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교과 통합을 하는 이유와 목표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교과 통합의 원리로 생각할 것은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이다.2
첫째, 교과 통합을 할 때 각각의 교과에서 중핵적인 개념이나 주제가 다뤄져야 한다. 교과 통합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개별 교과 내에서도 중요한 내용이어야 한다. 과목을 통합해 교육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지만, 각 교과에서 다루지 않을 목표와 내용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교과 통합을 할 때는 각 교과를 따로따로 가르칠 때보다 더 효과적이어야 한다. 각 교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논리적인 사유 능력을 키울 수 있거나 연관될 수 있는 개념들이 다수의 교과에 포함되어 있을 때, 교과 통합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과학 교과로 생태계를 가르치고, 도덕 교과로 환경 보호의 의미와 정당성을 말하고, 국어 교과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글쓰기를 해본다면 학생들은 환경오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변화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각 교과에서 따로따로 환경 문제를 언급할 때보다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개별 교과를 따로따로 교육할 때에는 얻을 수 없는 ‘잉여적’ 가치를 얻게 된다는 기대가 있을 때 교과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 ‘잉여적 가치’ 개념은 ‘시너지’ 또는 ‘상승효과’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다수의 교과를 통합했을 때 시너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학습자 스스로가 주도적인 사유와 활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과 통합을 했더라도 그것이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으로 그치게 되면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통합의 가치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생들이 글쓰기, 토론, 캠페인 등을 스스로 실천해볼 수 있도록 학습자 중심, 탐구 중심의 활동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교과 통합의 주체는 교사가 아닌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교과 통합의 필요성과 원리를 바탕으로 봤을 때, 철학 및 철학교과는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넓으며 교과 통합의 잉여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교과든 학습자가 파악해야 할 논리와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이 철학의 즐거움과 가치를 따라가다 보면, 깊이 사유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철학의 독특한 강점이 다른 과목들과 통합되어 그 힘을 발휘한다면 새로이 발견되는 즐거움, 상승효과로 덧붙여지는 교육적 재미 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철학교과와 통합될 수 있는 타 과목과 주제를 살펴 교과 통합 프로그램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역사, 국어, 사회 교과와 함께 교육적인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철학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다만, 그 범위를 좁혀서 이번 학기에 <한국철학사>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이야기들 중에서 소재를 찾아보았다. 이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철학을 위한 고민이다.
(1) 역사와 철학 : 주체성
역사에는 철학이 담겨 있고 철학에는 역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철학사> 수업에서 3·1운동 같은 민중운동에 관한 해석을 배우면서 그 안에 존재했던 사상과 관점으로서의 철학을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철학을 하면서 자기인식을 고민하고 과거에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을 다투던 이전의 시도들에 근거해서 학문적 성과와 발전 등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철학은 함께 다뤄질 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소재를 찾자면 ‘주체성’을 제안하고 싶다.
근대 한국의 민중운동에 대해서, 그 배경과 사상적인 힘이 되었던 철학적 의미를 바로보지 못하고 무심하게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첫째 이유는 평가의 준거를 유럽이나 일본 같은 이른바 ‘발전된’ 국가의 모형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기준이 늘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옳고 우리는 틀렸으며 그들이 우월하고 우리가 열등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곤 했다. 한국적인 사상이 독자적인 가치를 평가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저 따분하고 뒤처지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둘째 이유는 이 시기의 자생적인 움직임들이 단지 역사적 사건, 사실들로서만 분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안에 담겼던 사상적이고 주체적인 사유와 노력은 괄호 안으로 들어가고 역사로서의 사건만이 설명된다. 탐관오리와 일본이 폭압적 지배를 행했기 때문에 민중운동이 일어나긴 했겠지만, 그것이 단지 폭력에 밟혀 꿈틀했던 차원의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이유와 둘째 이유가 서로 순환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공고하게 한다면 자기비하와 정신의 지배가 영속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3
자생적 개벽사상과 도덕민주주의 등에 근거한 관점으로 과거의 움직임들을 새로이 해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보다 생생하고 주체적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서양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서양과 ‘달랐던’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자기인식, 한국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깨어나기 어려운 정신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서 열리는 것이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왜곡된 역사관으로서의 ‘민족주의’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에 존재했던 사상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이 땅에 있던 사람들을 보게 되겠지만, 이 관심이 지나치면 감정에 호소하거나 특정한 역사 해석만을 중요하게 제시하는 민족주의로 빠질 가능성도 존재하게 된다. 한국적 사유 방식이나 한국인 그리고 그에 속해 있는 ‘나’를 이해하는 것과 ‘우리’라는 이름으로 민족정체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깊이 인식해야 할 사유와 경계해야 할 생각을 동시에 검토하고 탐구하는 것은 세심한 관찰력과 관심 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 역사에 있었던 사상들의 가치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일은 철학만으로도 역사만으로도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즉, 역사와 철학 교과의 통합을 통해서 주체성과 자기인식 문제를 고민할 때 더 깊이 있는 성찰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수업에서 역사교과서를 재구성한 사학과 학우들과 토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 공유되었던 강조점이 ‘맥락’과 ‘개별성’이라는 말이었다.4 역사관 또는 해석에 대한 기준을 특정하게 제시하거나 일반화하는 시도는 옳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에 따라 저마다의 맥락이 있는 개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덧붙여서 학생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 사료를 신중히 검토해야 하며 설명글에도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의도가 지나치게 담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역사교과의 이 같은 목표 혹은 요구가 철학교육과 만난다면 역사와 철학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시너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과 통합의 원리에 입각해서 보았을 때, 역사와 철학의 교육적 통합은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첫째, 민중운동을 비롯한 과거의 이야기들에서 사상적인 가치와 배경을 보려는 것은 역사와 철학 각각의 교과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다. 둘째, 역사에 대한 배움과 철학적인 고민을 함께할 때 민중운동과 같은 이야기들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다. 셋째, 역사를 과거의 지나간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철학을 우리의 삶과 무관한 이야기로만 여기지 않을 수 있을 때, 학생들의 성찰과 참여는 활발해질 것이다. 이를 통해 학습 주체 개개인의 삶에 ‘잉여적’ 가치를 남길 확률이 높아진다.
덧붙이자면, 비단 우리 역사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역사, 세계의 역사 등으로도 범위를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한국의 민중운동이 단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므로 다른 나라들의 맥락, 사상, 지향을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찰적 의미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더 다양한 역사와 맥락에 존재했던 사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면, 지금껏 우리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었던 관점들을 깨닫고 재구조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역사와 철학을 통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의미다.
(2) 국어와 철학 : 하늘사상
국어과 교육의 성격에 대해서 ‘소통·사고·가치관’이란 키워드로 설명하는연구가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5 첫째, 소통 교과로서의 국어는 개인적 소통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소통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 둘째, 사고 교과로서의 국어는 지식의 구성과 문제해결 과정의 언어를 정교하게 만들며 개인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가치관 교과로서의 국어는 언어의 심미적, 문화적,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다각도로 경험하고 인간 세계의 갈등 양상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도록 한다.
이 같은 설명에 근거했을 때 국어 교과는 “자신을 표현하고, 언어를 통해 정교하게 사유하며, 인간의 삶과 관련된 가치를 경험하고 판단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규정은 ‘철학이 지향하는 목표’에 대한 설명이라고 제시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즉, 국어와 철학이 그만큼 긴밀하게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어교육과 철학교육이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낸다면 더욱 의미 있는 경험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그 지점으로 제안하려는 것이 바로 <한국철학사> 수업에서 다루었던 한국인의 ‘하늘사상’이다.
‘하늘’은 문학 작품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이다. 단지 ‘하늘’이라는 단어 하나를 읽어도 그것을 해석하는 의미는 무수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그 뜻은 독자의 경험이나 감정 등에 따라 다르게 와 닿는다. 또한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맥락 등에 근거한 차이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확히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고3 때 배웠던 두 개의 시에 똑같이 ‘태양’이라는 소재가 등장한 적이 있다. 시 하나에서는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태양이 ‘희망, 미래’ 등으로 해석되었고, 다른 시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이 ‘고난, 형극’으로 이해되었다. 태양이라는 단어 하나의 의미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하게 비추는’, ‘작열하는’ 등의 맥락에 따라 ‘해석되는’ 것이었다. 작품 해석을 위해서는 이처럼 자신과 타인의 감정 그리고 의도를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나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시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내신이나 수능 등의 시험이 전제된 상황에서는 즐거움보다는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교사나 참고서가 수많은 해석들 중 하나를 ‘선택해’ 학생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윤동주의 <서시>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는 시행이 있다. 이때 ‘하늘’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선악 구분의 기준, 윤리 판단의 주재자, 화자의 지향점 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늘은 분명 하나인데 내가 어떤 시를 배우는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
시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 해석을 누군가 정해주고 내가 그것을 외워야 한다는 사고의 제한이 문제다. 하늘과 관련된 사상이나 가치 등을 스스로 고민해볼 기회가 없으니 하늘의 의미가 단순하고 파편적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하늘에 대한 생각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문학의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모든 수업에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일부의 수업만이라도 하늘이 나오는 시들을 다룰 때 ‘하늘사상’을 논했으면 좋겠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한국철학사> 수업 때처럼 시 작품 속에서 하늘사상의 관점으로 읽어낼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고, 하늘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뒤에 관련 시를 직접 찾아보고 서로 소개해보는 시간을 제안할 수도 있다. 혹은 국어교과에서 강조하는 ‘소통·사고·가치관’ 등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이 이해한 하늘사상을 시나 그 밖의 글로 표현해보라는 활동 기획도 가능할
것이다.
이 같은 계획이 교과 통합의 원리를 충족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국어와 철학이 이루게 될 교육적 통합은 세 가지 기준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첫째,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 담긴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소통, 사고, 가치관을 강조하는 국어 교과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철학교육에서도 하늘사상, 개벽사상, 동학사상 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유의미하다. 그러므로 교과의 중핵적인 개념과 주제를 다루는 교과 통합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하늘사상을 철학과 국어에서 함께 다룰 때 더 효과적으로 교육적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늘의 의미를외우는 방식의 국어수업에 비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을 볼 수 있고, 철학에선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글과 주장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셋째, 학생들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하늘을 돌아보거나 하늘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 ‘잉여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 사회와 철학 : 화쟁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기준으로 봤을 때 사회탐구 과목은 총 9개이다.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지리,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세계사,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이다. 시험에서 응시하는 영역에 근거해서 나눠놓고 보면 각 과목이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내용과 학습 목표에 서로 차이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탐구하려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사회에는 수많은 개인이 존재하고 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들이 일어나는데, 그 속에서 어떤 행위와 선택을 할지는 나의 몫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으로 ‘화쟁(和諍)’을 논하고 실천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때때로 존재할 수 있으나, 완전하게 똑같은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개인의 개별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로는 남과 내가 비슷한 점을 발견됐을 때 “우리 좀 잘 맞는 것 같다”고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다. 때문에 “쟁(諍)을 화(和)할 수 있다,” “조화로운 ‘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도덕적 관계를 꾸려나가는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화쟁은 쉽지 않다. 감정적 선호나 자신의 이익 등에 의해서 자기 위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싫어하는’ 주장을 하는 타인을 향해서 당신이 ‘틀린’ 이야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설명을 듣는 것을 피곤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참 모습을 이성적으로 검토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고통을 감수하고 자신의 선호와 편협을 뛰어넘지 않는 이상 화쟁이 이야기하는 조화는 이뤄지지않을 것이다.
조화는 다수를 전제로 했을 때 성립하는 말이므로 화쟁에 앞서 다양한 관점들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혹은 ‘다 맞다 그래!’ 하고 적당히 자신의 위치를 선택해 버린 채 고민을 포기하는 결정은 화쟁의 가치가 설 수 있는 자리를 점점 더 좁게 만든다. 사회와 철학의 통합을 제안하며 화쟁의 의미를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회야말로 그 무엇보다 복잡하고 견고한 ‘ 화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선 화쟁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화쟁을 이룬다고 나의 ‘주장질’이 패배하거나 열등한 문장이 되는 게 아니다. 나의 주장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화쟁은 이뤄질 수 있다. 코끼리의 일부를 만지는 여러 명의 장님들이 있다는 비유에서, 그들의 화쟁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며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 모아봄으로써 코끼리의 실제 모습에 보다 가까운 그림을 떠올리는 것이다. 내가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길고 주름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그런 주장이 옳다고 믿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화쟁할 수 있다. 이 같은 화쟁을 위해서는 물론 “내가 보는 것이 코끼리의 전부가 아님”을 미리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
철학교육을 통해서 화쟁의 가치를 공유한 뒤 사회교과에서 가능한 주제들을 논의한다면, 정해진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고민하고 타인과 논쟁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주제가 될 수 있는 사안들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많다. 교실에서 선뜻 다루기에는 다소 민감한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 흉악범죄자 사형에 대한 찬반 의견, 다문화 및 난민 이슈 등의 이야기들은 분명 고민이 필요한 주제들이다. 범위를 너무 넓히지 않고 일상과 학교생활에 한정해도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조화할 논쟁거리들은 충분히 많다. 모의법정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조율하며 학교의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학교도 있고, 학급의 환경미화 활동이나 체육대회 계획을 짤 때에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화쟁의 소재는 이렇게도 다양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생각해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대화하는 것은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나의 견해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배척하고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합의를 이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라는 교과목에서 ‘화쟁’을 다루는 것은 학생들을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하게 도울 것이며 개인으로서 사회 및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판단력을 갖추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사회와 철학교과를 함께 공부할 때 교과 통합의 세 기준도 간과하지 말고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사회라는 개별 교과에서도 중요하게 다룰 만한, 사회 교과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주제를 논의의 소재로 선정해야 한다. 철학에서 배운 화쟁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지나치게 지엽적이거나 쉬운 내용을 일부러 다룰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논의 및 활동을 선정해야 한다. 둘째, 화쟁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서 화쟁을 가르친 이후에 얻어지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장과 논쟁을 실천하는 주체가 지녀야 할 자세”로서의 화쟁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셋째, 교과 통합의 시너지를 얻으려면 화쟁이 학생들의 논의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학생들이 가져야 하는 혹은 경계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지 스스로 체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사회나 철학교과를 따로따로 배울 때는 경험하기 어려운 가치라는 점에서 교과 통합이 주는 ‘잉여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우리도 모르게, 당해왔던 정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기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익숙해진 사유의 경향성을 깨닫기도 어렵고 그것을 재구성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틀이 무엇이고 어떠한 내용인지 스스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하며 나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스며들어온 생각들은 일부 덜어내거나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철학 그 자체가 하나의 과목이나 수업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철학은 입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대입논술시험’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수행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철학교육이 자신만의 목표와 가치를 추구해보기도, 정체성을 가져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도 철학이 강조되거나 진지하게 이야기 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이 어렵다는 이유로 철학교육을 포기하거나 논술교육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위에 안주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공부는 없고, 학습하는 ‘주체’ 없이 성립할 수 있는 배움도 없다. 그렇기에 철학은 생각을 깊이 있게 하고 주체로서의 자신을 성찰하고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들의 기저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철학이 다른 과목에 대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철학의 재미를 통해 다른 과목의 가치도 함께 경험해보자는 의도이다. 철학과 타 교과의 상승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교과의 현실 및 교과 통합의 개념을 짚어보고, ‘역사와 철학’, ‘국어와 철학’, ‘사회와 철학’이라는 세 가지 교과통합방안을 제안해 보았다. 만약 내가 실제 교사였다면, 학생들과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경험해보았다면, 보다 더 현실적이고 뜻 깊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아쉬움도 다소남긴 한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누군가와, 배우고 가르치는 경험을 함께 해야 할 때 오늘의 고민들을 잊지 않고 실천해볼 계획이다. 철학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나 자신으로서 살기 위한 자기인식과 성찰을 끊임없이 해나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의 고민들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
1 양미경, <<교육과정 및 교수방법>>(제3판), 제6장 <교과 통합지도의 의의와 방법> 107-128쪽.
2 앞의 글, 116-120쪽.
3 서지원, <스스로의 역사조차 바로보기 어렵다면>, 2018년 2학기 서강대학교 <한국철학사> 수업 8차 과제물.
4 2018년 2학기, 서강대학교 ‘교육과정’ 수업
5 최미숙 외, <<국어 교육의 이해>>,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 2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