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농부가 보는 세상(4)
최근 미투 운동으로 대중매체가 떠들썩하다. 대권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국회의원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유명한 연예인들이 피의자로 지목되었다. 한 공동체의 리더와 지식인으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을 그들이, 탄로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될 행동을 도대체 왜 한 것인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귀양지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농업에 대해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은『 수오재기』의 내용이다.
다산은 어느 날 큰 형님이 자신의 서재에 수오재(守吾齋), 즉 ‘나를 지키는 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나와 단단히 맺어져 떠날 수 없기로는 ‘나’보다 더한 게 없고, 지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디로 가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귀양을 가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는다.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은 없고 옷이나 곡식, 책을 훔쳐가더라도 몇 개뿐일 것이 모두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나’라는 것은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거나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거나 음악 소리를 듣고 미인의 얼굴만 보더라도 떠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떠나가면 붙잡을 수조차 없으니 ‘나’야말로 천하 만물 중에 굳게 지켜야 할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이 생겨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는 와중에 항상 ‘나’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화가 나서, 누군가 시키거나 유혹에 휩싸여서 또는 겁이 나서 등 한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법에 어긋나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화를 내거나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식을 하고 나서 후회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얼마 전부터 한 가지 수행을 하고 있다. 해서 듣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성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궂은일을 하더라도 생색내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가 결국은 나를 지키지 못하고 후회한 적이 많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남과 부딪힐 일이 많아져서 순간순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내 신을 보며 난 왜 이리 작은가 자책하다 내린 특단의 조치이다. 말을 참는 순간에는 입을 꽉 다물며 억눌러야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말을 하지 않은 내자신이 기특하다. 그릇이 조금은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주말에 집에 와서 참았던 감정들을 괜히 죄 없는 엄마에게 풀었다. 쭈뼛거리며 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성인이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은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농대는 과마다 들어야 하는 수업이 대부분 정해져 있지만 수요일은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대학』과『 중용』을 다루는 한문 강의를 선택했다.『 대학』의 8조목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이야기하던 도중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자네들이 성실했다면 서울농대에 갔겠지?”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졌고 교수님은 곧바로 바로 잡으시며 물론 농수산 분야에서는 여기가 서울대라고 하시며 웃어 넘기셨다. 아마 밤늦게까지 새내기 생활을 즐기느라 수업시간에는 졸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하셨던 것 같다. 악의를 가지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학벌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회의 분위기는 개인에게도 투영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오랫동안 열등감에 시달린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연고대에 갔던 친구들은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한 것을 슬퍼했고, 그 밖의 많은 동기들이 SKY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공공연히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재수를 하고 반수(半修)를 했다.
물론 명문대학에 갔다는 것이 인내심이 있고 성실하다는 것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단지 학생의 능력만이 성적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지역에서 자랐는지, 가정형편이나 부모님의 교육관이 어떠했는지 등이 학생의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 말고 다른 분야에서 성실하며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내 결심을 굳히기 위함이다. 다른 누군가의 욕망이 아니라 오직 내가 꿈꾸는 삶을 살자고 결심해서 청년 농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인정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했던 관성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교수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던 것이다. 이제는 보여주기 위한 행동의 결과가 내 자유를 옥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일본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도시라면 아주 좁은 골목 속의 가게들이나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가 본 일본의 모든 마을은 아름답고 깨끗하며 고유의 색채가 있었다. 특히 아주 작은 족욕탕의 할머니나 길모퉁이에 있는 어두컴컴한 카레 식당의 아저씨를 만난 것이 인상 깊다. 그분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얼굴이지만 입가에는 자부심과 당당함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성인이 되고서 매년 일본에 갔는데 갈 때마다 이런 분들을 만났으니 일본에 이런 분들이 많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가 아닐 것이다. 일본에 대를 잇는 장인들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굳이 유명한 장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 있는 것 아닐까?
살아서는 빛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유명한 화가인 빈센트 반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 어떤 사회적 지위도 갖지 못할 최하급의 최하급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래 좋아.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내가 가진 야망이다.
그리고 이 모든 멸시에도 불구하고 내 야망은 원한이 아닌 사랑에서 나왔다.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 유명한 화가들은 모두 상류층을 상대로 그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고흐는 늘 자신의 주변, 하늘이나 풍경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그렸다. 그의 눈에는 그것들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하거나 어리석다고 했지만 고흐는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내가 선택한 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전문가와 장인을 만든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를 추구한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 모교의 선생님은 항상 “너희들 하나하나가 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내가 마치 유능한 박사라도 된 것처럼 안경을 추켜올리며 책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내가 늦깎이 대학생으로서 동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겠다.
[청년농부 이야기는 이번 호 이후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