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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06. 2019

책두레 밭두레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이야기(7)

[이 글은 <개벽신문> 제84호(2019.5) '한울소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최경미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대표


"고구마 순을 심고 나서 매일매이 물을 주러 텃밭으로 모입니다. 별거 아닌 일 같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깨닫게 해줍니다. 자연 앞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무더운 날씨에 생각지도 않았던 바람 한 점이 스쳐 지나가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쌀 한 톨에도 천지만물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19. 5.14. 방정환한울학교 카페 ‘책두레 밭두레’에서 옮김)

방정환텃밭책놀이터가 개관한 지 만 2년이 아직 안 됐다. 햇수로는 3년차이다. 2017년 첫 해에는 터전을 만드느라 경황이 없었다. 텃밭이 있는 그림책도서관을 머리에 그리면서 공간 구석구석을 되살림(재활용) 물건으로 구성하고, 생태적인 환경구성을 하느라 냉난방도 중고 선풍기와 화목난로를 설치했다. 그러다 보니 손이 많이 가고 품이 아쉬웠다. 가뭄을 대비한다고 커다란 물통(5톤)을 사다 놓고 물을 채우느라 새벽1시까지 마을에서 물을 실어다 채우기도 했다. 터전을 잡은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다 보니 곱지만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고 보니 물을 올리는 모터가 진흙구덩이에 팽개쳐져 있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시내에 이사를 하는 집에 가서 터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느라 새벽바람을 맞았고, 비가 오는 날도 개의치 않고 때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먼 곳에서 아끼던 책을 운송 트럭에 실어 보내주시던 분, 간판을 하라고 선뜻 후원해 주시던 분, 책 한 권 한권에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여주었던 손들, 여러 지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석 달에 걸쳐 만든 생태화장실, 관심과 정성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500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는 일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 남짓을 보내고 2년차에는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일에 매진했다. 방정환한울어린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에서는 ‘탐험하는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2~3번씩 모여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 산들놀이, 예술놀이, 텃밭가꾸기, 요리와 바느질, 글놀이 말놀이 등 방정환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아이들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돕는 터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오전에 텃밭을 가꾸는 ‘작은농부’가 되어 찾아왔다. 겨울 들판도 마다않고 뿌리를 야무지게 내리는 채소들을 만났고,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며, 물을 주고, 거름을 날랐다. 그러는 사이 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채소를 키우는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열심히 노래 부르고 토닥여 준 덕에 겨우 내내 군고구마를 새참으로 꿀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텃밭체험놀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이 함께 텃밭을 가꾸고 주변 자연환경을 체험하고 생태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지만 차츰 아빠들이 동행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가족들도 있다. 엄마들 동아리 활동도 풍물, 책 읽는 모임 등 진행되다가 잠시 쉬기도 하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3년차, 올 해는 방정환텃밭책놀이터 운영 주체를 ‘여럿이 함께’하는 형태로 만들어 가기 위한 활동들에 주력하고 있다. 어떤 특정인의 열정과 희생으로 가꿔내는 터전보다 여럿이 함께 만들어 가는, 그래서 서로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 해의 목표이다.


그 작업으로 3월 신학기에 ‘책두레 밭두레’라는 이름으로 회원모집을 했다. 다행히 8명이나 모이게 되어 함께 책을 읽고 텃밭에서 실험 재배도 해보고 있는 중이다. 서두에 옮겨놓은 글이 회원 중 한 분이 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감글이다.


‘책두레 밭두레’를 처음 기획할 때에는 책두레와 밭두레로 구분해서 구성을 했다. 그림책을 읽고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로 책놀이를 만들어서 책 읽어주는 활동가로 변화 발전해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매주 책을 읽고 토의하는 모임 ‘책두레’와 텃밭 작물을 가꾸며 자연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작게라도 스스로 농작물을 키워서 먹으면서 관심이 더 깊어진다면 아이들의 배움 활동을 도울 수 있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 밭두레’였다.


그런데 모이고 보니 아이들에게 두 가지 다 필요한 환경이라는 것에 공감하면서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 두 가지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고구마 순을 심는 것으로 첫 농작물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하루는 모임을 하고 난 뒤 한 분이 “여기에 오면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말을 했다. 매번 모임을 하고 나면 돌아가면서 후기도 남긴다.


“… 저는 요즘 자기 전에 책읽기 대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덕분에 옛이야기를 검색해 보고 있구요, 아이한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서 들려 주기도 하고, 아이가 요즘 이야기에 푹 빠졌어요. 엄마로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시간 같아 넘 좋아요....”


“… 오직 책만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고 생각해서 붙잡고 읽혔는데 너무 하나만 고집했었나(?) 또 나만 재밌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후기를 읽고 답글로 올려 준 회원들의 글이다.


책을 읽고 스스로를 발견하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변화하려는 노력은 그 과정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노출될 것이다. 아이들은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의 변화는 아이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책 읽기 모임을 하느라 자주 만나는 동안, 날마다 고구마 밭에 물을 주러 오가는 동안,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날이 잦아지고 있단다.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함께 하다보면 자잘한 갈등도 생길 것이다. 특히나 아이들 간에 일어난 싸움이 어른들의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두렵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구는 어리석음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갈등은 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 그것도 풀어 내는 방법을 배워 가면 될 것이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텃밭에서 ‘작은농부님’들을 맞이하는 일도 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2년간의 ‘작은농부’ 활동일지가 있으니 참고하면서 조금씩 그들만의 색깔로 다듬어 가는 ‘밭두레’가 되었으면 하고 미리 김치국을 마셔 본다.


‘책두레’ 또한 그림책 공부를 꾸준히 해가다 보면 육아에 대한 가치관과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부모로서의 부족한 자신을 마주하는 아픔이 있을 터이다. 그런 경험들이 혼자서는 벅차지만 함께 해서 용기와 지혜로 축적될 것을 믿는다.


그런 희망으로 상반기에는 이론 공부를 위주로 하고 하반기에는 실습과 참관, 인턴과정을 거쳐 활동가로 나설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자 한다. 방정환한울어린이집이 민간어린이집이라는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동체를 지향해 온 것들을 방정환텃밭책놀이터와 더불어 실현해 나가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야무진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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