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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07. 2019

말꽃으로 피어나는 아이들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이야기(6)

[이 글은 <개벽신문> 제83호(2019.4) '한울소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최 경 미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대표


#1

“친구끼리 손잡고 있는 거예요.”


오월 어느 날 완두콩 꼬투리가 자라나면서 덩굴손이 뻗어나가 얽히고설킨 모습을 보고 손이 길어져서 서로 엉켰다는 설명을 했더니 5살 아이가 한 말이다.


어른인 나는 엉킨 덩굴손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본 것인데, 있는 그대로 보는 눈, 그 눈에 비친 세상을 말꽃으로 피워낸다.


#2


별 :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싶어요.

달 : 그럼 안 좋은데 빨리 할아버지 되는데~

샘 : 아빠처럼 되고 싶구나....

콩 : 살다보면 할아버지 돼.

별 : 어른 되면 쪼끔 안 좋은 점도 있어.

바로 연구소 가서 일을 해야 된다구~ 너무 힘들어~

달 : 일 안해도 돼, 돈 없어도 돼.

강 : 돈 없으면 아무 것도 못 사.

달 : 집에 있는 음식 먹으면 되지.

샘 : 텃밭에 씨 뿌려 수확해서 먹으면 되겠네.

들 : 그럼 씨앗은 어디서 사노?

콩 : 씨앗은 땅에서 찾으면 되지.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아이들이 아침열기 시간에 ‘맑은물’에 마음담기를 하면서 나눈 대화이다. 평소의 아이들 가정의 분위기가 엿보이는 듯도 하고, 아이다운 생각들이 훨훨 막힘없이 흘러나온 듯도 하고. 이런 말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낯이 가려 울 때가 많다. 민낯을 들킨 기분이랄까?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어른들이 가리고 싶은 것들을 말이다. 가리고 싶은 것들을 담박에 벗겨놓은 힘, 아이들 말꽃은 그렇게 피어난다.

#3


며칠 전 바람이(7세)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께 전해 준 말이다. 바람이(7세)가 하원하고 집에 가서 하는 말이 오늘 나들이 갔다가 돌에 부딪혀서 아팠다고, 그래서 울었다고 했단다. 선생님이 안아주었는데,


바람 : 근데 싫었어.

엄마 : 왜?

바람 : 아기처럼 안아주니까 싫어.

엄마 : 응???

바람 : 형님인데~ 아기처럼 안아줬어. 아기가 아니라 형님이란 말야. 엉덩이를 받쳐서 안아주었단 말이야~


7세는 물어보고 안아주어야 한다. 이쁘다고 함부로 얼굴을 만지거나 뽀뽀를 하거나 덥썩 안으면 안 된다. 기분이 나쁘단다. 그건 애기들한테나 하는 행동이란다. 형님이 되었으니 형님 대우를 받고 싶단다. 씩씩거리며 자기는 형님이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는 모습이다. 한 살 나이를 더 먹고 자라난 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말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얼마나 귀한 나이를 가졌는지 말이다.

#4


바우(5세) : 선생님 애들이 놀려요. 저보고 콧구멍이 크고 귀가 작대요.

샘 : 바우가 속상하겠구나. 그런데 바우는 콧구멍이 크고 귀가 작아?

바우 : 아니오! 저는 콧구멍은 작고 귀가 커요~

샘 : 푸하하, 크크크...


잠시 뒤 바우와 함께 친구들이 놀고 있던 마당의 흙 산 위로 올라가 큰소리로 함께 외쳤어요.

“바우는 콧구멍은 작고 귀는 커~”

그러자 바우는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주인공 두더지처럼 기분 좋게 흙산에서 내려왔습니다.


하하 호호호. 한참을 웃는다. 아이들 말은 웃음꽃으로 피어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의 말을 더욱 피어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냥 무심코 넘어가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 아이의 세계로 눈높이를 맞춰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이어질 때 아이들의 말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그 말은 시원하다.

귀를 씻어주고 마음을 열어준다. 그래서 웃게 된다.


여름날이었다. 방정환텃밭책놀이터에 오는 탐바아이들 중에 형제 두 쌍이 있었다. 집에서는 형과 아우가 늘 투닥거리겠지만 바깥에 나오면 그럴 수 없는 형제가 된다. 다른 형이나 동생한테 행여 자기 동생이 피해를 볼까 예민하게 굴던 두 형, 그 여름 날 제대로 한판 붙었다. 


몇 달 전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한참을 옥신각신 하는가 싶더니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 한 형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던지며 벌떡 일어나서 한쪽으로 가서 펑펑 운다. 억울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허우적거리며 운다. 그러자 나머지 형도 욕 한마디를 내뱉고는 더 크게 우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말았다. 이 갑작스럽고 난감한 상황을 어째야 되나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뒤에 운 형이 먼저 울던 형한테로 가서 손을 내민다. 그리고 한 마디를 했다. “미안해” 울음이 섞인 그 말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미안하다는 말이 참 귀하게 여겨지던 순간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지, 서로 어색한 몸짓으로 손을 잡았다. 나머지 형도 답을 했다.


“미안해”


아이들이 피워낸 말꽃을 키 낮은 들꽃을 볼 때처럼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는 봄날이다.


(#2,3,4는 방정환한울어린이집 교사의 기록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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