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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1. 2019

급변하는 신구 사상의 충돌

-  <개벽> 창간호(1920.6.15 / 7월호), 80-84쪽

역자 주 - <개벽>지가 창간(1920.6.15)되던 1920년대 당시는 1900년 이래 한 세대 이상, 전통 사회에 서구의 새로운 문물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와, 신구 교체가 이루어지던 급변기였다. 일부 상류층에 국한되었던 서구(일본) 개화문물은 일본에 유학한 학생들이 귀국하고, 선교사 등이 설립한 학교가 자리를 잡아가며, 또 한양과 개항장 등을 중심으로 서구의 상품과 문물이 내륙으로 침투해 들어오며, 조선인의 인식구조나 생활상식과 양식을 바꾸어 나갔다. 이는 오늘날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전개에 즈음하여, 인구 고령화, 급격한 출산율 저하, 세대간 갈등의 심화 등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과 비교가 된다. 그리고 그 흡사함/100년 전 글의 유효성에 소름이 돋기까지 ㅇ한다. 100년 전에 시작되었던 신구 교체의 흐름이 지금도 세대를 교체해 가며 계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면 100년 만에 다시금 대전환의 시대 흐름이 재연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일부 대목을 제외하고, 이 글에서 언급하는 시대상황, 새로운 윤리 등은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시의성'을 나타낸다. 이 또한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체했었다[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겪는 바람에]'는 이야기로서, 100년 전의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100년 만에 다시 '시대교체'의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개벽파/개벽하는사람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명교체'의 징후를 재발견하고, 그 불씨를 되살려 내며, 그 묘목을 길러 숲을 이루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오태환(吳台煥) / 현대어역 박길수 / 개벽라키비움 

- 출전 <개벽> 창간호(1920.6.15 / 7월호), 80-84쪽. 


1. 


현대세계의 사조는 흙탕물을 이루어 거칠게 파도치는 물결[淊淊 亂波]이 되어 큰줄기 작은줄기, 위아래가 뒤섞이며 혼돈을 이루며 흘러가는 중이다. 반발하는 흐름[反流]에 역류를 더하고 역류에 다시 반류가 더해져서 노도(怒濤) 광란(狂瀾)의 물보라가 어지러이 흩날리는[飛沫亂泡] 등등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그 현상은 세계의 한 끝과 한 끝을 표준하고 어지러운 파도와 같이 침입하여 온다.


봉래산(중국 전설상 ‘삼신산’ 가운데 동해상에 있다는 상상의 섬)을 상상하고 무릉도원을 꿈꾸던 우리 조선도 어느덧 이 어지러운 파도 속에 들어 헤매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동서고금의 사조가 우리 정원을 침입하여 출렁거리기를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우리 현실 생활에도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 변동은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이 되어 부득이하게 생활 개조의 현상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에서 오래된 현상을 그대로 고수하는 노인파(老人派)와 새로운 현상을 음미하는 청년파(靑年派)의 사상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노인과 청년은 서로 다른 정신 작용을 가지고 서로 반대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즉 노인의 요구와 청년의 희망이 서로 반대 방면으로 배치하는 사이에 서로 고뇌하고 번민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노년의 흉중에는 아직도 중국식의 문학 경전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나, 청년의 사상은 이와 반대로 전적으로 신문명(新文明)이라 하는 서구식 과학과 철학을 음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인이 청년에게 하는 요구와 청년이 자기에게 거는 희망은 스스로 하늘과 땅[雲泥] 만큼의 차이가 있게 되었나니 이것이 곧 신구(新舊) 사상이 충돌하게 된 원인이다. 

 

2. 


예로부터 조선은 엄격한 가족제도의 생활로 그 사회를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그 가족제도로부터 유래한 어버이[親]와 자식의 관계는 엄밀한 어버이는 자애하고 자녀는 효도하는[親慈子孝] 것이었다. 즉 어버이 되는 사람이 자녀<80>에게 요구하는 바는 단지 자녀 되는 사람에게 그 효양을 받고자 함이 그 목적이었으며, 늙은 이후의 여생을 자녀 되는 사람의 효양(孝養)에 의존하여 인생 최종의 즐거움을 구하고자 함이 가족제도 최후 목적이었다. 어버이와 자녀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실로 과거 도덕의 미풍으로 과거사회 유지에 둘도 없는 이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천하는 것이며 변천에 따라 도덕관념도 또한 바뀌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 변천에 따른 오늘날 청년의 사회적 감화는 그 늙은 부모세대의 인습적 예상과는 크게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물론 학교와 사회의 윤리교육이야말로 충효를 근본으로 함은 고금이 다를 것이 없으나, 그러나 현대 세계를 통한 사회 일반의 풍조가 실제로 청년 자녀를 교화하는 바는 가족 본위를 초월하여 개인의 자질[性能]을 십분 개발하며 각자의 행복을 십이분 원만케 함을 그 본무라고 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가족도덕상, 어버이는 자녀가 성장하기까지 친권으로써 자녀를 간섭하였다. 따라서 자녀는 또 어버이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고 또 어버이의 업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을 생활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현대의 어버이는 시대 흐름[時勢]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이상을 조금의 수정이 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음과 반대로 청년의 사상은 점차 시대 흐름의 요구에 따라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한 세대 개인으로 큰 성공을 기약하는 것이 필연의 흐름[事勢]이다. 즉 청년의 사상은<81> 복종 또는 자제에 의하여 그 활동을 좌우하기보다도 차라리 독립 발전을 이상으로 하며, 선조를 위하여 보수(保守)하기보다도 자손을 위하여 노력코자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기보다도 자기를 위하여 행복을 도모함이 새 시대의 새 추세이다. 그것은 세계 일반의 풍조이지, 한 개인의 풍습이 아니다.

 

3. 

 

더욱이 그것은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요,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 친구 관계에도 또한 이 풍습이 유행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스승과 제자, 친구 사이의 정은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의 대의(大義)에 비해 못지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제 관계, 친구 사이의 친분[親綠]을 보건대 사제의 은혜, 혹은 친구 사이의 의리는 재학 중에 한하여 다소 그 의리와 정의[義誼]를 느끼는 모양이다. 졸업 후까지 그 친분과 친의를 존속하는 사람은 매우 희소한 듯하다.

이와 같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은혜, 친구 사이의 인연도 날로 경박해지는데 하물며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질서야 오죽하겠는가. 이에서 교사(敎師)가 제자(弟子)에게 하는 요구와 제자가 교사에 바라는 바는 크게 차이가 나며 또 친구가 서로에게 거는 기대도 또한 간격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부 사이의 이상도 또한 옛날과는 크게 달라져 가는 중이다. 옛날부터 남녀의 구별은 군신의 구별과 같이, 또는 하늘과 땅에 비유하여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천리의 자연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대 사조로 보는 남녀의 구별은 단지 생리상 분업의 구별에 불과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남자만 홀로 귀한 것이 아니요 여자 또한 천한 자가 아니다. 귀천은 사람의 천성 혹은 직업의 구별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인격 여하에 달려 있다 하였다.


오늘 이후의 남녀문제는 평등자유로 그 원칙을 세운 위에서 남자가 만일 여자에 대하여 절의(節義)를 기대한다면 남자도 또한 여자에게 정조를 무겁게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일 남자만 홀로로 성욕의 만족을 방자히 추구하고 여자에게는 종전의 정조를 지키라 강요함은 어느덧 불공평한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4.

 

이와 같이 개인주의 사상이 일세를 풍미한 결과는 청년의 사조가 점차 극단의 개인 발전을 귀하게 보며 또 물질적 행복을 중시하기에 이른, 오늘날과 같이 큰 미증유의<82> 현상은 일찍이 없었다. 물론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앙모함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지만, 금일과 같이 가난을 싫어하고 부자를 숭배함이 심한 예는 없었나니 이것은 실로 세계의 대세이며 동시에 시대 변화의 징조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와 지금, 오래된 것과 새것 사이에 점차 간극이 생기게 되는 이때에 우리의 가족과 사회제도의 변천도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개 과거 사회의 도덕은 사회의 질서와 통일을 지키는 것을 최대의 목적을 삼았다. 즉 각 개인이 선조의 습관, 인습에 무조건으로 복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요의(要義)라 하였다. 그러므로 과거 사회의 도덕은 현재보다도 과거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부부와 친구의 관계는 반드시 임금, 아버지, 남편, 형, 어른은 귀하다 하고 신하와 아들, 부인과 동생, 어린아이는 전자에 비하여 천하다 하였다. 그리하여 이전의 습관을 고수하고 과거의 인습을 견지하여 사회를 유지할 일에 고심하였다.


원래 과거에는 그 시대 형편상 부득이하게 습관에 복종함을 유일한 도덕으로 인정치 않을 수 없었으므로 상하가 각각 ‘요순의 법도를 따른다[祖述堯舜]’는 심법에 따라서 오직 앞사람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 따라 자식은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며,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르며, 동생은 형의 행동을 모방하며, 어린아이는 어른과 같이, 제자는 오직 스승을 드높이는 것과 같은 일을 이상으로 여기는 것이 사회 유지상 적절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폐단은 무엇이든지 세습적으로 계승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으며 혹은 한 집안, 한 가문의 의 특권으로 각종의 도와 예술과 학문과 기술을 보존하여 이로써 각 개인의 자유경쟁의 길을 막았으므로 자연의 제재상 임금과 아버지, 남편과 형, 어른을 위하여 복종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신하와 자식, 부인과 동생, 어린아이의 본분임과 동시에 저들의 종신 행복 또는 사회 일반의 이익이었으며, 그리하여 선조의 은혜를 생각하여 그것을 지켜 나감이 자연히 자손이 행복에 이르는 이유가 되었다.

 

5. 

 

그런데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천하가 한 집안, 사해가 한나라가 되어 가며 세계는 국제적 경쟁시대로 변하여 서양의 문화가 동양에 감화를 주게 되며, 동양의 사실이 서양의 문제로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 같이 각 개인의 자유발전을 도모하는 기운(機運)을 주게 되었다. 이 점에서 사회는 각기 내부로부터<83> 각자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을 개발하여 그 능력을 양성하여 선조가 이상으로 삼던 사업을 위하지 아니할 수 없는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오늘날은 어느덧 옛것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요, 진취적인 시대가 되었다. 헛되이 선조를 숭배하며 관례에 얽매여 지난날의 관습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은 이것 사회를 위하여 해악이 있을 뿐이요, 이익은 없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덧 속박의 시대가 아니고 자유의 시대이다. 각자가 각기 좋아하는 바를 추구하며 욕구에 의하여 자유로이 그 능력을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각자의 고유 재능[天才]을 발휘하는 것이 사회의 진보를 촉진하는 것이 되었다. 지난날은 선조를 숭배하는 것이 스스로 자손의 이익이 되었으나 오늘날은 자손을 위하는 것이 스스로 선조의 광영이 되게 되었다. 고로 과거 시대에는 선조에 대한 의무가 자손에 대한 의무보다 중요하였으나 지금은 자손에 대한 의무가 오히려 선조에 대한 의무보다 중요하여졌다. 이것이 진보를 필요로 하며 발전을 위주로 하는 현대사회의 당연한 일이 아닐 것이냐. 


6. 

 

그러면 금후로부터는 사람의 선조 되는 자가 그 유업을 자손에 전코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고금이 다르지 않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늘그막에 그 자손으로부터 부양을 받고자 하여 스스로 노후의 설계를 하지 않음은 선조의 본분이 아니며, 또 자손 된 자가 선조를 위하여 그 뜻을 받들고자 함은 자연의 인정이며, 또 사람이 지켜야 할 하늘의 법[天則]이며 윤리의 큰 법도[大經]라 할 것이다. 그러나 금일 이후에는 선조 섬기는 방법은 먼저 자기의 능력을 양성하며 독립의 생계를 세워서 자손의 교육을 완전하게 함에 있다 할 것이다. 자녀를 낳고도 이를 기르지 못하며 또 가르치지 못함은 모두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우니, 이와 같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볼 때 자녀를 낳을 권리가 없다고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중진 남녀가 반성할 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논어>에는 “증자가 말하기를 (상을 당해) 마침을 삼가고, 먼데(조상)를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에 돌아가리라[愼終追遠民德歸厚矣]”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는 대개 선인의 뜻을 고치지 말라는 경전 말씀으로만 해석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이후의 해석은 그것으로 완전무결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오히려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함[有始無終]을 깊이 경계하여 영원히 이어나갈[長久永遠]의 계책으로써 과거보다도 장래, 선조보다도 자손을 고려하는 의무를 실천 준행치 않을 수 없다는 의미로 이를 전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거의 성인이 말씀하신바, “군자는 때에 맞춰서 한다”라는 말의 본지를 어기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의에서 현대생활의 의미가 더더욱 개인의 자유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 하면 만약 경솔한 부랑 남녀가 있어서 그의 자유를 이용하여 방탕한 행위를 감행한다면, 그 폐해가 또한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세계의 대세가 되는 개인의 발전 사조를 방해코자 하면 그는 비유컨대 한 방울의 물로써 도도한 강물을 막고자 하다가 모든 촌락이 범람하는 피해를 입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그 폐해를 조성하게 할 우려가 없지 않은즉, 앞서 나아가는 사람은 이를 먼저 잘 이용하며, 잘 인도하여 현대의 영원한 계책을 수립치 않을 수 없다.<84>




오태환 (吳台煥  

본관 海州    

현주소(1935년) 漢城 西署 龍山坊 東門外契 第23統 第9戶 /  漢城 南署 會洞 琥珀洞 第8號 /  京城府 通義洞 83-1 

학력 1879년 3월 受學于家庭 / 1897년 1월 3일 留學于日本東京印刷株式會社乃內閣印刷局修業 


천도교회 경력 및 활동

1873.04.16. 江原道 華川郡 看尺面(원적) 普文館 총무(1906.5), 龍山方교구 교구장(1910.12-1911.4), 1등신포덕 포장(1910.12), 교훈(1911.2), ※<<이상과 실행>><교회월보/제138호>1922.2.15 <황성신문>1906.5.21


일반 경력 및 활동       

(1) 1903년 1월 8일 歸國漢城印刷株式會社博文社 摠務

----1905년 1월 1일 國民新報社 摠務
----1905년 4월일 普文館 摠務 (보문관은 천도교에서 경영한 인쇄소임) 
----1906년 12월 13일 任度支部技手 判任七級
----1907년 3월 5일 陞敍度支部技師 奏任四等
----1907년 현재 九品度支部技師
(2) 1906년 12월13일 任度支部技手 判任七級
----1907년 3월15일 任度支部技師 奏任七級 / 현재 九品度支部技師
(3) 1906년 12월 천거되어 度支部 技師로 나아갔다. 

----1911년 總督府 郡守에 임명되어 江原道 襄陽, 平康, 鐵原의 각 郡을 거쳐 

----京畿道 高陽郡으로 전근하였다가 1924년 퇴직했다. 

----1927년 朝鮮總督府 中樞院 參議가 되어 1935년에 이른다.


急變하야 가는 新舊思想의 衝突

吳台煥



現代世界의 思潮는 淊淊한 亂波가 되어 大流小流 混上沌下하면서 잇는 中이엇다. 反流에 逆流를 더하고 逆流에 反流가 加하야 怒濤狂瀾, 飛沫亂泡, 到底히 것잡을 수 업는 現象이엇다. 그리하야 其 現象은 世界의 한 끗과 한 끗을 標準하고 亂潮와 가티 侵入하야 온다.

蓬萊를 幻像하고 武陵을 꿈꾸던 우리의 朝鮮도 어느덧 이 亂潮의 中에 들어 헤매기를 始作하엿다. 어느덧 東西古今의 思潮가 우리의 庭園을 侵入하야 출렁거리기를 始作하엿다. 우리도 이에서 現實生活의 變動이 나기를 始作하엿다. 그리하야 其 變動은 날로 우리의 直接事實이 되어 우리로 하야곰 不得已 生活改造의 現象을 부르짓지 안이치 못하게 되엇다. 이에서 舊한 現象을 그대로 가지고 잇는 老人派와 新한 現象을 吟味하는 靑年派의 思想 衝突이 되어가려 始作한다. 다시 말하면 老年과 靑年의 間에는 相異한 精神의 作用을 가지고 서로 反對의 方面으로 거름을 옴기게 되엇다. 卽 老人의 要求와 靑年의 希望이 서로 反對의 方面으로 背馳하는 間에 互相間 懊惱煩悶을 품고 잇게 되엇다. 老年의 胷中에는 아즉도 支那式의 文學經典을 그대로 가지고 잇스나 靑年의 思想은 是와 反하야 全히 新文明이라 하는 歐米式의 科學과 哲學을 吟味하게 되엇다. 그럼으로 老人이 靑年에 對한 要求와 靑年이 自己에 대한 希望은 스스로 雲泥의 差가 잇게 되엇나니 이곳 新舊思想이 衝突케 된 原因이다.



由來ㅣ 朝鮮은 嚴格한 家族制度의 生活로 그 社會를 維持하엿섯다. 그리하야 그 家族制度로부터 生한 親子의 關係는 嚴密한 親慈子孝이엇섯다. 卽 親되는 者ㅣ 子에<80> 對한 要求는 單히 子되는 者에게 그 孝養을 受코저 함이 그 目的이엇스며 老來의 餘生을 子되는 者의 孝養에 依賴하야 人生 最終의 樂을 求코저 함이 家族制度의 最後 目的이엇다. 親子에 對한 如何한 關係는 實로 過去 道德의 美風으로 過去社會 維持上ㅣ 無二의 理想이라 할 것이다. 然이나 時代는 變遷하는 것이며 變遷에 딸아 道德의 觀念도 또한 改造케 됨은 事實이엇다. 時代變遷에 隨한 今日 靑年의 社會的 感化는 그 老親의 因襲的 豫想과는 大히 逕庭을 生케 하엿다. 勿論 學校 及 社會的 倫理敎育이야말로 忠孝를 本으로 함은 古今이 달을 것이 업스나 然이나 現代 世界를 통한 社會 一般의 風潮가 實際로 靑年 子女를 敎化하는 바는 家族本位를 超越하야써 個人의 性能을 十分 開發하며 各自의 幸福을 十二分 圓滿케 함으로써 그의 本務라 함에 至케 되엇다.

由來 家族道德上, 親은 子의 成長하기까지도 親權으로써 子를 干涉하엿섯다. 딸아서 子는 又 親에게 絶對的 服從하여야 하고 又 親의 業를 그대로 繼承함으로써 生活의 理想을 삼앗섯다. 然한데 現時의 親되는 者는 時勢의 變遷됨에 不拘하고 아즉도 此 理想을 一部의 修正이 업시 그대로 가지고 잇슴과 反히 靑年의 思想은 漸次 時勢의 要求에 從하야 各自의 能力을 發揮하야 一世一代의 個人으로 大成功을 期코저 함은 必然의 事勢이엇다. 卽 靑年의 思想은<81> 服從 又는 自制에 依하야 그 活動을 左右하나니 보다도 寧히 獨立發展을 理想으로 하며 祖先을 爲하야 保守하나니 보다도 子孫을 爲하야 努力코저 하며 人을 爲하야 犧牲하나니 보다도 自己를 爲하야 幸福을 圖함이 新時代의 新趨向이엇섯다. 그리하야 그는 世界 一般의 風潮로 一人一個의 風習이 안이엇다.



加之而 그는 親子의 關係에 뿐만 그러한 者ㅣ 안이오 君臣 師弟 朋友의 關係에도 또한 此 風習이 流行케 되엇다. 例하면 昔은 師弟 及 朋友의 情誼는 엇던 意味에서 父子君臣의 大義에서 못지 안이하엿섯다. 그러나 現今의 師弟 及 朋友 親綠을 보건대 師弟의 恩, 或은 朋友의 義는 在學中에 뿐 限하야만 多少 그 義誼를 感하는 모양이엇다. 卒業後까지 其親綠親誼를 存續하는 者는 殆히 稀少한 듯하다.

如斯히 師弟의 恩, 朋友의 綠도 날로 輕薄하야지거던 하물며 長幼의 序이리오. 이에서 敎師가 弟子에 對한 要求와 弟子가 敎師에 對한 希望은 大히 齟齬하며 又 朋友 互相에 對한 期待도 또한 扞格이 生하게 되엇다.

그리하야 夫婦의 理想도 또한 昔日과 大變하야 가는 中이엇다. 古來ㅣ男女의 別은 君臣과 如히 又는 天地에 比하야 男尊女卑로써 天理의 自然이라 하엿다. 然이나 現代 思潮로 觀한 男女의 別은 單히 生理上 分業의 別에 不外者로 보게 되엇다. 男子ㅣ 獨히 貴한 者ㅣ안이오 女子ㅣ 또한 賤한 者ㅣ 안이엇다. 貴賤은 人의 天性 或은, 職業의 別에 잇지 안이하고 다만 人格如何에 在하다 하엿다.

今日 以後의 男女問題는 平等自由로 그 原則을 立케 한 上에서 男子가 만일 女子에 對하야 節義를 望코저 하면 男子도 또한 女子에게 對하야 貞操를 重守치 안이치 못하게 되엇다. 만일 男子뿐 호을로 性慾의 滿足을 放恣히 하고 獨히 女子로써 從前의 貞操를 守하라 强要함은 어느덧 不公不平의 事實로 認定케 되엇다.



如斯히 個人主義의 思想이 一世를 風靡한 結果는 靑年의 思潮가 漸次 極端한 個人發展을 貴히 보며 又 物質的 幸福을 重히 함에 至함은 今日과 如히 大한 未曾有의<82> 現象은 업도다. 勿論 苦를 厭하고 樂을 慕함은 古今의 人情이 相異치 안이하나 然이나 今日과 如히 貧을 厭하고 富를 崇拜함이 甚한 例는 업섯나니 이 實로 世界의 大勢이며 同時에 時代變復의 預兆라 할 것이다. 如斯히 古와 今 舊와 新이 漸次 遠隔이 生케 되는 此際에 吾人의 家族 及 社會制度의 變遷도 또한 時代에 딸아 應變치 안이함이 不可하다.

大槪ㅣ 過去 社會의 道德은 社會의 秩序 及 統一을 保守함으로써 最大의 目的을 삼앗나니 卽 各個人이 祖先의 習慣 因襲에 無條件으로 服從함으로써 吾人 第一의 要義라 하엿섯다. 故로 過去 社會의 道德은 現在보다도 過去를 더 重히 보앗다. 君臣 父子 夫婦 朋友의 關係는 반듯이 君父 夫兄 長者로써 貴라 하고 臣子 婦弟 幼者로써 前者에 比하야 賤타 하엿다. 그리하야 前의 習慣을 保守하고 過去의 因襲을 堅持하야써 社會를 維持할 事에 苦心하엿다.

元來ㅣ 過去時代에서는 그 時代 形便上 不得已 習慣에 服從함을 唯一의 道德으로 認定치 안이치 못하게 되엇슴으로 上下ㅣ各各 「祖述堯舜」의 心法에 服膺하야 오즉 先人의 羈絆에 從하야 子는 父의 志를 繼하며 婦는 夫의 意에 從하며 弟는 兄의 行을 倣하며 少者는 長者와 如히 弟子는 오즉 師尙과 如할 事를 理想케 함이 社會維持上ㅣ 適宜한 方便이엇스나 然이나 그 末流의 弊는 何事이던지 世襲的으로 繼承하는 習慣을 養케 되엇스며 或은 一家一門의 特權으로써 各種의 道藝學術을 保存하야 此로써 各 個人의 自由競爭의 途를 防塞하엿슴으로 自然의 制裁上 君父 夫兄 長者를 爲하야 服從 盲隨하는 것은 臣子 婦弟 幼者의 本分됨과 同時에 彼等의 終身幸福 又는 社會 一般의 利益이엇스며 그리하야 祖先의 恩義를 思하야 그를 保守함이 自然히 子孫의 幸福을 致하는 所以가 되엇섯다.



然한데 今日은 不然하다. 天下一家 四海一國이 되어 가며 世界는 國際的 競爭時代로 變하야 西洋의 文化가 東洋의 感化를 주게 되며 東洋의 事實이 西洋의 問題로 되게 되엇다. 그리하야 그는 다 가티 各 個人의 自由發展을 圖하는 機運을 與케 되엇다. 이 點에서 社會는 各其 內部로부터<83> 各人의 天才를 開發하야 그 能力을 養成하야써 祖先 理想의 事業을 爲치 안이하면 不可한 必要를 感케 되엇다. 今日은 어느덧 保守的 時代가 안이오 進取的 時代가 되엇다. 徒히 祖先를 崇拜하며 慣例에 抱泥하야 往時의 慣習的 羈絆을 脫치 못함은 是 社會를 爲하야 害-잇슬 뿐으로 益은 無케 되엇다. 今은 어느덧 束縳의 時代가 안이오 自由의 時代엇다. 各人이 各其ㅣ 所好에 從하며 所欲에 依하야 自由로 그 能力을 用케 되엇다. 그리하야 是等 各人의 天才를 發揮하는 所以는 社會의 進步를 促하는 所以가 되엇다. 昔은 祖先崇拜가 스스로 子孫의 利益이 되엇스나 今은 子孫을 爲함이 스스로 祖先의 光榮이 되게 되엇다. 故로 過去 時代에는 祖先에 對한 義務는 子孫에 對한 義務보다 勝하얏스나 今은 子孫에 對한 義務가 寧히 祖先에 對한 義務보다 重하야젓다. 是ㅣ 進步를 要하며 發展을 主하는 現代社會의 當然의 事가 안일 것이냐.



然하면 今後로부터는 人의 祖先되는 者ㅣ 그 遺業을 子孫에 傳코자 하는 心이야말로 古今이 無異하다 할지나 然이나 晩年에 그 子孫의 老養을 受키로 目的하고 스스로 老後의 計를 抛棄함은 祖先의 本分이 안이며 又 子孫된 者ㅣ 祖先을 爲하야 志養을 奉코저 함은 自然의 人情이며 又 人道의 天則이며 倫理의 大經이라 할지라. 然이나 今日 以後의 祖先을 事하는 所以는 먼저 그 自己의 能力을 養成하며 獨立의 生計를 立하야써 子孫의 敎育을 完全함에 잇다 할 지로다. 子를 生하고 此를 養치 못하며 又 敎치 못함은 共히 父母의 道라 云키 不能하니 如斯한 자는 社會에 在하야 子女를 生할 權利가 업다. 覺悟치 안이함이 不可함은 現代 丁年 男女의 反省할 一 訓箴되리라.

論語에 曰 「愼終追遠民德歸厚矣」리라 하엿나니. 是를 過去에 在하야는 大槪ㅣ 先人의 志를 不改하라는 經訓으로 뿐 解하야 왓다. 然이나 今後의 解釋은 此로 完全無缺타 謂치 못할지니 寧히 有始無終을 深戒하야 長久永遠의 計로써 過去보다도 將來, 祖先보다도 子孫을 慮할 만한 義務를 踐行치 안이함이 不可하다는 義로 此를 轉用치 안이함이 不可하니 是에서 庶幾ㅣ 聖人의 君子時中이라는 本旨에 不悖하엿다 하리라.

以上과 如한 意義에서 現代生活 意味가 益益 個人의 自由發展을 圖하는 자라 하면 萬若-輕佻한 浮浪男女가 有하야 그의 自由를 利用하야 放逸의 行爲를 敢爲함에 至하야는 그의 弊害가 또한 大하다 할지라 然이나 此로써 世界의 大勢되는 個人의 發展思潮를 防遏코자 하면 그는 比컨대 一滴의 漏泄로써 大流를 防코저 하다가 全 村落의 汎濫의 害를 被함과 如하야 寧히 그 弊害를 助成케 할 憂慮가 不無한 즉 先進된 者ㅣ 此를 先히 善히 利用하며 善히 引導하야 現代 永遠의 計를 樹치 안이함이 不可하도다.<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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