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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08. 2019

한국인의 하늘철학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9)

[이 글은 <개벽신문>제85호(2019.6.15),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9)에 게재된 글입니다.]


조성환 /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탁사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


구한말에 한국 신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받는 탁사 최병헌(1858~1927)은 1903년에 쓴 <기서(奇書)>라는 글에서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는 유명한 ‘종교론’을 피력하였다.


서양의 기계만을 취하고 ‘종교’는 높일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하는데 이는 (종교를) 이단으로 여겨서 참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라의 형세를 개탄하는 자들이 매양 서양의 기계의 이로움을 말하면서 교도(종교)가 미풍이 아니라고 배척하며, 외국이 강하다고만 하고 부유하고 풍요롭게 된 ‘근원’은 살피지 않는 것이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대개 ‘대도(大道) ’는 방국[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진리는 중외에 통용 가능한 것이다.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고, 천하(세계)로 보면 모두가 일가(一家)이며, 사해가 형제라 할 수 있다. 상제를 공경하고 인민을 아낀 점에 이른다면 어느 누가 마땅한 ‘윤리’라고 하지 않겠는가! [<<황성신문>>, 1903.12.22.] 1


최병헌은 서양의 부국강병의 ‘근원’을 과학이 아닌 ‘종교’에서 찾고, 그것을 ‘참 진리’라고 하였으며, 그 내용은 결국 “세계가 일가이고 사해가 형제”인 일종의 ‘세계윤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최병헌보다 한 세대 위인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양의 힘은 과학에 있고, 그 근원은 물리학이다”라며,2 이른바 ‘실학론’을 내놓은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최병헌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과학(물리학)이 아닌 종교(기독교)야말로 실학이다. 


최병헌이 ‘하늘’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만약에 후쿠자와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면 ‘하늘’이 아닌

‘리’를 언급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物理)야말로 진리(眞理)이다”와 같은 식으로. 반면에 최병헌에게 ‘하늘’은, ‘물리’와 같은 과학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히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지평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후쿠자와가 말하는 실학(實學)의 바탕에 있는 천학(天學)의 영역이다. 그것을 최병헌은 ‘종교’이자 ‘윤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최병헌에게는 과학보다는 종교와 윤리가, 달리 말하면 종교와 윤리를 탐구하는 ‘천학’이 상위에 놓인다. 후쿠자와가 천학에 대한 과학의 우위를 말했다면, 동시대의 최병헌은 천학에 대한 과학의 우위를 말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러한 서양 인식의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나타난 궁극적 관심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후쿠자와가 서양 과학의 우위를 기준으로 동서의 우열을 짓는다면, 최병헌은 하늘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동서의 같음을 말한다. 이 ‘하늘’ 아래에는 문명과 야만의 화이관도, 혈연 간의 구별도, 인종 간의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한 존재이다. 이러한 대도론, 세계주의, 사해동포사상은 최병헌 뿐만 아니라 개벽종교의 공통적인 세계관이자 인간관이었다.


예를 들어 동학의 해월 최시형은 “만물은 하늘과 땅의 자식이다”는 천지부모론을 제창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평등, 인물(人物)평등, 만물공경 사상의 존재론적 원리가 되고 있다. 이후의 원불교에서도 “세계의 모든 종교의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3라는 진리론, 종교론과 더불어, “세계는 곧 온 인류를 한 단위로 한 큰 집”4이라는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천도교에서도 “이에 따른 세계주의의 필요가 생기게 된다. 세계를 한 집안(一家)으로 하고, 각 민족이 공통으로 공존공영의 생활을 도모한다”5고 말하고 있다.


최병헌과 같은 하늘론, 즉 “동서의 하늘이 같다”는 인식의 원형은 1860년에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학과 서학은 모두 같은 천도이다”『( 동경대전』)는 말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당시의 서학, 즉 천주교를 ‘서양의 개벽’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동방(한국)의 개벽으로 동학을 제창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일독립운동 때 천도교와 기독교가 합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제우의 천도론은, 최병헌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중심으로 동학과 서학을 회통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회통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제우의 천도회통론은 이후에 이능화로 가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백교회통론(1912)으로 이어진다.


한밝 변찬린의 ‘다른 하늘’론


한편 최병헌이 세상을 뜨고 얼마 안 있어 세상에 나온 한밝 변찬린(1934~1985)은 흥미롭게도 ‘다른 하늘’론을 말하고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열림’과 ‘자각의 차원’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이 개명(開明)되는 정도에 따라 그 개천(開天)하는 하늘도 각각 다르다. (…) 모든 종교는 마음의 개명에 비례하여 하늘을 개천하였다. 인간의 마음을 닦는 정도에 따라 개천되는 하늘이 다르며, 하늘의 열림에 따라 응감되는 신들도 다른 것이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와 기독교가 개천한 하늘이 같은 하늘인 듯하면서 그 차원이 차이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다신(多神)이 존재하는 하늘과 유일신이 존재하는 하늘이 같은 차원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날까지 하늘이라면 다 같은 하늘로 동일시하는 하늘관에서 탈피하여 하늘의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 6


여기에서 변찬린은 모든 종교는 (새로운) 하늘을 여는 개천(開天)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마음이 열리는 정도에 따라 열리는 하늘[자각]의 차원도 다르다”는 점에서는 각각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同天論)에 대해서 ‘다른 하늘론’(異天論)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변찬린은 종래의 한국인의 하늘관이 ‘같은 하늘’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개벽종교에서도 ‘같은 하늘’을 강조하였는데, ‘한울’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그러나 개벽종교에서 말하는 하늘과 변찬린이 말하는 하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개벽종교에서는, 가령 동학이나 원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한울’은 우주론이나 존재론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통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天地)에 해당한다. 천지 아래에서는 만물이 하나라는 것이 ‘한울’ 개념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한울’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만물일체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변찬린이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자각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세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인식한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찬린의 하늘은 다분히 인식론적이고 철학적이다.


마치 “이 세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장자적인 입장을 연상시킨다.7 이처럼 변찬린의 ‘하늘’ 개념은 종교 간의 같음보다는 다름을 지적하면서, 그 다름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변찬린의 하늘은, 종교 간의 같음을 강조하는 개벽종교의 ‘한울’ 개념이나 최병헌의 ‘하늘’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헌과 변찬린의 하늘론은 오늘날과 같이 한편으로는 원자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최병헌의 하늘론은 원자화된 파편들을 묶어주는 힘이 있고, 변찬린의 하늘론은 획일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벽의 하늘’은 이 두 하늘을 아우르는 양행(兩行)의 하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물이 존재론적으로 하나라는 ‘한울’의 우주론과 각자가 보는 세계가 다르다는 차이의 인식론을 동시에 겸하는 현명(玄明)의 하늘이 곧 개벽의 하늘이다.


 <주석> 

1 이혜경, <천하에서 국가로>에서 재인용, <<근대 전환 공간의 인문학, 문화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발표문, 2019년 6월 13일, 숭실대학교.

2 사사키 슌스케, 가타오카 류, <일본과 한국에서의 ‘실학’의 근대화>>,  <<한국종교>> 43, 2018 참조.

3 <<정전>>, 제1 총서편, 제2장 교법의 총설.

4 <<정산종사법어>> 제1부 세전(世典), 제7장 세계(世界), 1. 세계에 대하여.

5 김병제, 이돈화,  <<천도교의 정치이념>>, 제2부 <당지>, 모시는사람들, 2015, 107쪽.

6 변찬린, <성경의 원리>, 332쪽; 이호재,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 문사철, 2017, 246쪽에서 재인용.

7 Brook Ziporyn, Zhuangzi: The Essential Writings: With Selections from Traditional Commentaries, Hackett , 2009 서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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