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개벽신문> 제85호 (2019.6.15) '詩세상'에 게재된 시입니다.]
손목을 더듬는 손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는 손
등을 쓰다듬는 손
담뱃불을 붙이는 손
빨갛게 담뱃불을 돋우는 손
담뱃불을 갖다 대는 손
쑥 향이 번진다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드는 손
자신을 몹시 그리워해주는지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살아 있도록 허락받은 죽은 사람이*
사실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사라지듯
전화벨은 침묵한다 불운한 예후
잿빛 먼지를 남기는 쑥뜸
손은 고개를 돌린다 지금은
황혼 빛 심연의 모퉁이를 돌아 나의 나히드**가 나타날 시간
머뭇거리다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오늘은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해치우리라 두려우면서도 경건한 마음으로
손은 조급해진다
카드를 건넨다
화장실 손잡이를 돌리고 오줌을 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계단을 올라간다
거치대를 세우고 총구를 겨눈다
공이를 당긴다
세상의 모든 은총이 범람하는 스카이라인 아래
오직 하나의 결핍
손은 방아쇠를 당긴다
한 발의 비극이 순결하게 밤하늘을 흘러간다
* 로버트 프로스트「 교양 있는 농부와 행성 금성」
**‘아나히타’, ‘사라스바티’라고도 한다. 물과 번영의 여신.
<작가의 말>
언어 이전에 손이 있었다. 만물의 시원은 손에서 시작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면 태초의 사람 아담은 신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한 개의 세포가 세포분열을 일으켜 두 개로 나눠지듯이 신의 손끝이 아담의 손끝에 닿았고 그래서 신과 아담은 한통속이다. 이전엔 신과 아담은 별개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둘의 손이 닿는 순간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고착되었을 수도 있다.
외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와일드 펜필드가 제작한 뇌지도(Homunculus)에 의하면 손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영역이 다른 장기에 비해 월등히 크고 넓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원시 호미니드가 현생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poiesis). 인류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다름 아닌 손 때문이었다(문화culture는 라틴어 colore에서 비롯되었다. 재배하다, 경작하다). 시나 음악도 결국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에서 비롯된 것인바(poiesis -> poem), 그런 일련의 행위가 손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세상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인간만이 손을 자유자재로 쓴다. 만들고 때려 부수고 파괴한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말랑말랑하게 지분거리고 차갑게 내친다. 기도하고 보살피고 저주한다. 비오는 날 고기를 굽다가 스커트 속으로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그건 분명 엉큼한 손의 오작동인데 그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수갑을 찰 수도 있겠지. 손의 미래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원폭 단추를 눌러 인류의 종말을 앞당길 수도 있고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녹슨 철조망을 뜯어 삽을, 호미를 만들 수도 있다.
심종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쾌락의 분신 자살자들』 등의 시집과 전자시집『빛을 향해 간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