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석의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을 읽고
[이 글은 <개벽신문> 제85호(2019.6.15) '서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송지용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대학원생
개벽은 두 날개를 열어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르는 것
나는 10년 동안 대학교 언저리를 머물고 있다. 2017년 초에 졸업장을 받고 2017년 후반기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학교가 고맙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하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20세기 서구적 근대의 훈련기관인 학교 조직과 교육 방식은 21세기 개벽적 근대1와 변화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문과 삶의 괴리도 크게 느껴졌다. 나는 학부에서 사회복지를 했는데 사회복지학과 교수님들은 현장 사회복지를 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현장을 몰랐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은 더 더욱 무감각해 보였다. 타 학과 교수님들 역시 본인이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가르치는 것과 ‘삶’은 별개라는 태도가 보였다.
오늘날 대학의 근간인 서구적 학문 개념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도’가 삶과의 일치를 추구한다면, 서구의 학문은 삶과 학문이 꼭 일치될 필요가 없다. 원불교도 삼학(三學)을 통해 학문과 생활 수양의 일치를 추구하였다.2 또 내가 학교 밖에서 활동하며 경험했던 것과 달리 학교에서는 배우고 감동을 받아도 노래하고 춤추지 않았다. 배움과 깨달음은 즐거운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면 기쁨에 겨워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감정과 행동은 배제된다. 이성의 칼을 세우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형식에 맞게 종이 위의 글로만 표현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지극히 비효율적이며 제한적이라고 느낀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학교로 돌아왔다. 논리적으로 글 쓰고 분석하고 형식에 맞게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도 내게 필요한 일이고 얻고 싶은 능력이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과 생각을 설명하고 싶었고, 그것을 지속가능하고 보편적이게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위해 배워가고 싶다. 잘 되지 않더라도 인정하고 노력하고 싶다. 하지만 학교와 학문은 나의 한쪽 날개일 뿐이다. 하늘을 나는 데 한쪽 날개로만 날수는 없지 않은가. 두 날개로 날아야 더 높이 멀리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기반이 되는 서구 근대문명은 이성
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위와 같은 모순과 문제를 낳았다. 그래서 나의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그래서 지금·여기서 내 나름의 개벽을 하고 싶다. 오만하지 않게, 하지만 소신 있게 따로 또 같이 개벽하고 싶다. 지금·여기 나에게 개벽은 “두 날개를 펼쳐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먼저 배움과 깨달음에 대한 표현을 예술적으로,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시도해 보고 싶다. 또 실제 나의 경험과 실천,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며 살아있는 글,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
자기로부터의 혁명 : 대립면 바라보기
최진석 교수는 그의 저서『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에서 함석헌 선생이 말한 ‘자기로부터 혁명’을 소개하며 대립면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함석헌 선생은 과거 학생운동가들 중 혁명가라고 자처했던 대부분의 운동가들이 사실 자기는 혁명시키지 않은 채, 사회혁명만 부르짖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거대한 이념의 틀 속에서 승리를 일구는 영웅들이 오히려 일상에서 좌절하고 ‘패’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화는 바로 자기 삶을 위해 존재한다.
노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원칙, 즉 대립면의 꼬임 혹은 대립면의 상호의존이라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립면 사이에서 오는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그 쪽으로만 치달으려고 하면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치자가 높은 위치에 도취되어 계속 고귀하게만 나아간다면 백성들의 지지를 상실하고 파국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 통치자는 스스로를 과인(寡人. 남편 없는 사람)으로 낮추어 부르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했다. 빛나되 눈부시지 않고, 빛나되 그 빛이 다른 하찮은 먼지들과 조화를 이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의 반대 경우도 생각해보았다. 패배감이나 열등감에서 오는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면의 우울이나 슬픔으로 혹은 그것을 외부로 돌려 사회에 대한 분노나 투쟁으로만 돌린다면 노자의 생각과 맞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돌리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로 받아들이고(바라보아 주고) 충분히 흐르게 해주면 자연히 조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 부분에 나를 비추어보았다.
변두리 소년, 소녀
나는 전북 정읍에서 자랐다. 나는 정읍이 변두리라고 생각했다. 역사의 변방, 문화의 변방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변두리 소년은 고3이 되던 해에 광화문에 가서 촛불을 들었고 “정읍에서 올라왔어요.” 라는 제목의 기사로 인터넷 신문에도 올랐다. 또 홍대의 문화를 동경했던 변두리 소녀(나의 감성, 문화적 측면)는 광주와 서울로 인디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며 기차역에서 밤을 새고 첫차를 타고 정읍으로 돌아오곤 했다.
변방의 소년(소녀)은 자라서 변방의 대학에 가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은 나를 놀렸다. 지방 사립대에 들어가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그렇게 들어간 학교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1년 만에 군대에 가게 된다.
전환. 바라보고 흐르게 해주자
군대에서 사이버 강의를 들었다. 인류가 평등과 효율의 문제를 고민하며 노력해 온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고 맨 마지막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공동체와 사회적 경제였다. 군에서 제대한 나는 사회적 기업 ‘이음’이 하는 시장 활성화 사업(청년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나의 약점, 지역의 약점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지방대학을 다니는 것은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었고, 공부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또 지역(시장)의 낙후되어 방치됐던 공간은 청년들에게 기회의 공간이 되었다. 그 후 인터넷 강의에서 제시한 또 다른 대안이었던 공동체를 경험하기 위해 인도에 있는 대안공동체 ‘오로빌’과 생태공동체 ‘사다나포레스트’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다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권력, 돈, 학벌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사랑하며 조화롭고 지속가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의 주체, 중심되기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지역청년 모임을 만들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편견 없이 바라보았다. 약점을 인정하고 나니 우리의 장점이 보이고, 제3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어도 우리 안에 답을 발견할 힘이 있다고 느꼈다. 다니던 원광대를 중심으로 2014년에 청년 네트워크 파티, 청년포럼 등을 열었다.
많을 때는 전북의 10곳이 넘는 청년 단체와 50명이 넘는 청년들 그리고 지역 단체들이 모여 발표하고, 프리마켓을 열고 공연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후 퍼실리테이션을 활용한 대화모임으로 지역청년의 고민과 해결책을 도출해 서울에서 발표하기도 했다(2014 오픈테이블 일상폴폴). 그 후 청년들의 교류가 활발해져 다양한 활동이 생겨났다. 대학생 정책 제안을 하기도 했다(2014년 6.4지방선거). 나는 청년문화정책에 대해 제안했다. 또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제 스스로 역사의 주체이며 중심이 되었다.
최진석 교수는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존재하라고 했다. 자신이 서 있는 바로 여기가 거룩함이 등장하는 원초적 토양이라고 했다. 나와 우리는 사회가 이름지어 준 ‘지방대학 열등생’이 아닌 ‘지역의 희망인 청년’이 되었다.
자신을 아는 자
노자는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이라고 하였다.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아는 지(知)는 분리된 상태에서의 인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아는 명(明)이라야 자기 내면에서 주관과 객관의 분열이 통합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세계(대안활동, 청년혁신활동)에 발을 들여 놓은 후로 정말 많은 활동과 만남을 이어갔다. 나라에서는 마을만들기, 청년혁신활동,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마을지향 사회복지 등 많은 사업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지쳐만 갔다. 활동과 만남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면을 바라보려고 명상을 했다. 원광대에서 하는 명상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또 나만의 내면 보기의 방법으로 ‘몸짓’을 매개로 한 방법도 찾았다. 무용과 수업과 전국, 인도와 태국 등을 돌아다닌 끝에 움직임 명상 ‘댄스만달라’를 안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사업과 공부에 더욱 힘이 생기고 나의 중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개벽(나, 마음)과 큰 개벽(인류, 문명)
최진석 교수는 사랑과 이별이 하나라고 말한다. 개념으로 만든 것은 단일한 의미 속에 갇혀 있는데 이 세계는 한 가지 의미로만 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대립 면을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고 한다. 이 말은 노자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노자는 보편적인 것으로 합의되는 것은 구분, 배제, 억압의 폭력성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도 대립면(상반된 개념의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하나로 볼 수 있는 힘) 이는 대·소, 유·무, 부처와 중생 , 생·사를 하나로 보는 원불교의 일원상 교리와 유사하다.
최근에 나는 지극히 작고, 큰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실패는 사랑에 대한 실패다. 내가 지향하는 대안적 삶의 태도와 대안적 생태공동체에 대한 꿈 그리고 가진 돈의 적음이 큰 이유가 되었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멀어짐에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대립면의 긴장을 느끼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지 않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둔 채 슬픔이 오면 품어 안아주고 충분히 울며 억울해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다보면 이따금 평화가 찾아오고 깨달음의 희열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아픔과 실패는 나를 성숙하게 한다. 또 세상에 대한 더 큰 사랑을 창조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과 감정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현실을 은혜로 개벽하는 원불교의 ‘마음공부’ 원리와 비슷하다. 또 얼마 전에 원불교 교무님께 들은 수행법과도 유사한데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드러난 형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을 함께 보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나를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드는 것도 경계 내와 밖을 함께 바라보며 어느 한쪽으로 개념화 하지 않는 좋은 방법이다.
‘지극히 큰 실패’는 지구문명의 실패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재난적 기후변화, 빈부의 격차 등으로 고통 받고 지속가능하지 못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문명도 ‘나’이다. 나 또한 문명의 세계관과 제도 속에 하나의 세포처럼 일조하며 살고 있다. 나는 이 문명의 대립면을 보고자 한다. 지금의 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좌(파)와 우(파)의 대립 그 어느 쪽으로도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다만 열린 마음으로 이 모두를 아울러, 또 세상의 모든 지혜와 노력을 아울러, 새롭고 대안적 문명을 창조하려고 한다. 그것이 두 날개를 열어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오르는 ‘개벽’일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조화뿐만 아니라 성숙과 창조, 즉 ‘개벽’으로까지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영적 존재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이 가진 특별함이다. 이 ‘마음’은 화엄경에서 이야기하는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리고 원불교의 ‘정신개벽’이다. 자연의 조화에 인간의 힘이 더해져 개벽이 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여는 ‘개벽’, 그것은 우주적 성숙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의 개벽부터 지극히 큰 ‘문명’의 개벽까지 말이다. 3차원의 세계를 넘어 4차원의 세계를 지구의 온 생명에게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각해본다.
다시 나로 돌아와 내가 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 개벽을 생각해본다. 새로운 세계관(세계를 보는 관점: 사상, 철학)을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전환적 디자인(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을 구상하고 실현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세계관을 고민한 선구자들의 사상(동학에서 시작한 개벽사상)과 노력을 연구하고 실천할 것이다. 예술(몸짓, 퍼포먼스, 워크숍, 문화기획, 자연농 텃밭)과 언어(강연, 글, 대화)로 표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지배자 중심, 남성 중심, 승리자 중심으로 서술하였음을 느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위대함’의 예시로 통치자를 들고 통치자의 겸손함을 예로 드는 식이다. 이 책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예시, 약자를 중심으로 한 예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부분들을 인식하고 더 다양한 시선으로 노자와 세상을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주석>
1 조성환은 그의 저서『한국 근대의 탄생』에서 한국에서는 일본과 같은 ‘개화적 근대화’ 대신에 ‘개벽적 근대화’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조성환,『한국 근대의 탄생』, 모시는사람들, 2018, 20쪽.
2 원불교의 삼학(三學)은 정신수양(精神修養)ㆍ사리연구(事理硏究)ㆍ작업취사(作業取捨)으로, 각각 수양, 학문(연구), 실천을 의미한다.
송지용은 춤명상(댄스만달라)과 공연(굿, 연극)으로 몸짓을 안내하고 있다. 대안활동을 하다가 발밑에서 찾은 희망인 ‘한국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댄스만달라’는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음악의 안내에 따라 숨과 몸의 감각을 통해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움직임 명상을 말한다.
유튜브 영상: “댄스만델라 안내자 송지용, DANCEmanda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