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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Sep 05. 2019

천년을 자라는 나무처럼,
꽃피라 개벽

- 2019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익산 원광대학교/를 참가하고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신문> 제85호(2019.6)에 게재된 글입니다.



허채봉 / 개벽하는사람들


개하고 벽하며 벽하고 개하니,

개란 것은 천지의 시작이요, 벽이란 것은 만물의 처음이라

시작하여 마침이 없고 처음하여 다함이 없으니

시작과 처음은 곧 내가 사는 무궁한 것이라.

-의암 손병희 <개벽금>


코발트 남빛 하늘이 바람 타고 바다처럼 유영하는 맑고 쾌청했던 2019년 5월24 ~ 25일 2019 한국종교학회 춘계학술대회가 ‘평화 시대 종교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 2층 및 교학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중, 필자는 오전 10시부터 진행되었던 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프로그램에 참관하였다. 한국 종교, 민족 종교계가 여느 때보다 토착적 근대 담론을 바탕으로 한, 지금, 여기에서 움 틔워 낼 열린 사상 체계를 찾기 위한 치열한 몸짓이 160년 동학에 뿌리를 두고 현재에 이르러 이제 그 열음 꽃 피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며칠 고민 끝에 참관하기로 결정, 어둑한 첫 새벽부터 길을 나섰으나, 부산 간 익산의 교통 상황이 원활하지 못하여 30분 늦게 도착, 첫 발제를 놓치고 말았다. 2019 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프로그램은 총3부로 진행되었다.


제1부 개벽종교의 사회운동

동학 천도교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을 발표하는 박길수 대표

이날 행사 한국종교분과(제3섹션)은 [동학천도교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 : 의암 손병희의 인물개벽론을중심으로] 박길수의 발제로 포문을 열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이미 첫 발제가 끝난 상태였으므로 언급 외로 한다. 다만, 박길수 대표는 의암 손병희의 "인물(人物: 사람과 만물)개벽론"을 중심으로 동학 천도교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에 집중하여 연구를 지속하는 만큼, 수운과 해월, 의암을 잇는 개벽 사상과 개벽운동이 문명사적으로 현대에 이르러 어떤 의미로 재발견 되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확산, 재확산 되어가는지 발제자의 연구 성과와 이에 따른 생각을 들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이에 대한 언급은 가름하고자 한다.


한국종교 (1) 분과 발표 두 번째로, 원불교 경전의 개벽적 성격에 관하여 원광대학교 이주연은 ‘대종경의 수사학적 표현을 중심으로’ 원불교 경전의 개벽적 성격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법을 드러내는 매체로써의 경전은 문어적 양식으로써, “어떤 교법을 전하는가?”가 내용적 접근이라면, “어떻게 교법을 전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형식적인 접근으로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 언어기호의 언상과 언의는 홀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차이를 통하여 서로를 드러내고, 마주보는 거울 한 쌍처럼 서로가 객이 되어 서로를 끊임없이 비추어준다고 볼 때, 내용과 형식이 밀접한 관계는 형식으로서 경전의 문체 유형과 구조를 이해 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번 연구를 통하여 [대종경]에는 범주별 수사법이 다양하게 적용되어 그 패턴을 분석한 결과 대중의 동기.이해.실천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대중에 중심을 둔 표현 방식은 개벽종교의 특성을 암시한다고 함축하여 역설하였다.


1부 마지막 발제로는 일본에서 오신 야규 마코토의 일본 신종교의 개벽운동 [요나오시를 중심으로] 집중 조망되었다. ‘세상 뜯어고치기’라는 사전적 의미의 ‘요나오시’라는 낱말은 원래 지진이나 벼락을 피하는 주문, 또는 널리 흉사를 경사로 바꾸는 목적으로 일부로 경축하는 주술적 행위, 세상이 나쁜 상태를 고치는 것을 의미하였는데 에도시대 중기이후, 도쿠가와 봉건제 하에서의 무거운 세 부담과 압정, 화폐경제의 침투에 의한 빈부격차의 증대 등에 허덕이는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는 개념이 되었다고 한다.

천리교, 마루야마교, 오오모토등의 일본 근대 신종교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발제를 해 주었는데 특이하게도 민의 출현이라는 근대 자천자각 세대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정치. 사회적 관점을 띠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면한 정치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혁명적 움직임이 활발한데 반해, 일본 신종교에서는, 정치·사회 참여가 없었다고 피력하였다. 그 이유는, 정치 사회적 변혁보다는, 좀더 개인에게 천착한 물음으로 자기 완성을 지향했다는 측면이 강했다고 야규 마코토님은 덧붙여 부연하였다.


제1부가 왕권 봉건주의에 대한 토착 ‘민’의 자천자각 각성의 사회적 여건과 탄압,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층으로 조심스럽게 보편성을 지니며 확산 되어져 간 과정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는 시간이었다면, 제2부 개벽 종교의 생명사상은 보다 사상적 측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생명평화사상이 발현 되는 지점과, 관의 탄압과 함께 보다 보편성의 뿌리를 획득하게 되는 사회 사상적 흐름에 대한 논의가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제2부 개벽 종교의 생명 사상

행사가 열린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과 숭산 박길진 초대총장 동상 

<동학의 근대성과 생명 평화 사상> 발제 서론에서 안효성(대전대학교 H-LAC)은 동학의 개벽 사상은 서양의 근대가 갖는 새 시대 개척의 특성과 가치 장점을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서양의 근대에 내포 된 편협함과 폭력성, 반평화적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성속분리의 세속화가 아닌 성속 결합적 영성 회복의 방향을 추구하였다고 하면서 한국의 근대성 인식에서 동학의 성격과 지위를 어떻게 판정해야 적합한지를 검토하고 서양과는 다른 한국의 토착적 근대성을 대표하는 동학의 생명 본위 평화사상이 갖는 역사상의 의의와 현재적 가치를 평가한

다고 밝혔다. 


이는 오백년 조선 시대에 뿌리 깊게 이어져 온 유교의 연장과 유교의 탈 극복의 관점에서 서구식 과학과 산업혁명의 대두로 등장하기 시작한 물질주의-상업 자본의 발달, 성속분리-인간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개인과 시민의 등장, 국민국가와 대의민주주의 등이 개화파라는 서구적 근대의 맹아로서 출현하던 시점에 주자학의 대립물로서 회자 되던 실학의 근대적 진취성과 실체적 학문과 학파로서 실학의 평가가 오히려 반성의 산물로서 김상준을 언급하였다. 김상준은 유교는 반근대, 반유교는 근대라고 간주하는 공식을 거부한다. 그는 동학마저도 유교적 자원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비로소 매우 근대적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으며, 근대성이 전통과의 단절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전통과의 연속성에서 전통에 의지하여 발아하고 성장 할 수도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 외에도 안효성은 송호근, 박길수, 조성환, 박맹수등의 연구를 두루 언급하면서 동학은 한국적 토착 근대의 기점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한 가치 근거와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학은 서양의 근대가 갖는 새 시대 개척의 특성과 가치 장점을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서양의 근대에 내포 된 편협함과 폭력성, 반 평화적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록 실패한 혁명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에 남고 말았을지라도, 서양적 근대의 한계에 봉착해 새로운 문명의 가치를 모색하고 있는 전 세계 현대인들에게 본원적 생명 가치에 근간한 적극적 평화를 구현하는 ‘상생문명’의 얼개를 짤 수 있는 방향성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큰 비행을 앞두고 있다고 하였다.


잠시 휴식을 틈타, 교학대학 4층 시청각실에서는 2019 한국종교학회 임시총회가 열렸으며 2019 한국종교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관한 언급과 함께 한국종교학회 임원단과 분과위원장 등의 인선에 대한 공식 발표와 결산이 처리되었다. 또한, 2020년 한국종교학회 50주년 기념학술대회와 세계 종교사학회 22차 총회가 예고되었다.


제3부 개벽과 개화의 만남

허남진의 근대 한국의 ‘종교’인식-개벽파와 개화파를 중심으로와 조성환의 2세기 개벽학의 제안-방법과 현황을 중심으로가 발제되었다. 특히 허남진의 발제 중 머리말에서 한국에서 종교의 근대적 개념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종교라는 근대적 개념은 기존의 교(敎), 도(道), 학(學)의 전통과 한동안 혼거하였고, 점차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삶의 전체 영역을 모두 관장하는 교(敎)와 도(道)의 성격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근대 서구의 ‘릴리지온’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어떻게 인식 되었고, 수용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당한 연구의 성과들이 있었고, 개항기 종교 개념은 근대성 수용과정에서 생기는 문명의 달성과 아이덴티티의 유지라는 두가지 기본 축 사이의 딜레마와 관련되어있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하였다.


조성환은 19세기 말에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종교의 학문을 ‘1세기 개벽학’이라고 명명하고 이 시기 개벽학의 연구 방법론을 한국학의 관점에서 제안하였다. 나아가서 이것을 바탕으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2세기 개벽학’을 모색하는 흐름과 방향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으로 2세기 개벽학을 한국학으로서의 개벽학으로 바라보고 지금 사회적으로 명명되어 회자 되기 시작한 개벽운동, 개벽대학, 개벽학연구회, 개벽학당, 개벽포럼,개벽파선언, 하늘학회등을 총 망라하면서 총체적인 ‘개벽’을 하나의 인문콘텐츠로 디자인 하는 기획을 조심스럽게 제안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개벽학과’나 ‘개벽학’ 커리큘큘럼을 신설하거나 개벽인문콘텐츠만을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전문팀이나 센터가 독립적으로 있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발표의 마지막을 ‘새로운 하늘을 찾아서’라는 당시 미 발표(발표 예정)인 하늘학회 취지문을 읽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섹션 발표문까지 총 3부의 진행이 끝나고 끝까지 남은 참석자들과 오픈 토크 시간이 진행되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인 조현범은 허남진 발제자에게 종교 개념의 국지성으로 흐르는 부분을 경계하였으면 하는 차원에서 종교라는 근대적 개념은 도.교.학이라는 맥락과는 다르며 오히려 삶의 전체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다시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다시 묻는 질문을 주었다.


원불교수위단 김경일 총장은 종교에 국한되니 오히려 더욱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움이 있다고 깊은 소감을 피력하였으며, 개벽하는 사람들 허채봉은 지금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물음으로 출발 해야 하지 않을까, 동학혁명이 과연 실패로 끝난 과거의 한 이벤트인지, 아니면 성공한 혁명인지 새삼 물음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좌중을 향하여 물음을 던졌다.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개벽이 뭐지? 누군가 무심히 던지는 자조적인 물음에 그러게, 개벽이 뭐지? 다시 되묻는 물음과 함께 다시 개벽 세상을 맞이하려는 폭풍 닮은 열정과 냉정이 왔다 갔다 핑퐁거렸다. 끝까지 남은 소수의 참여자였지만, 새로 쓰는 개벽 이야기로 뜨겁게 혹은 차갑게 공간을 달구었다 식혔다 온 시간 속에 공간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한 풀 꺽이어진 햇살이 뉘엿거리며 붉게 물든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살이신 대지에 의존하여 오직 뚜벅이로 세상을 걸어 찾아다녀야 하는 신세로 길 나설 때마다 차비가 바쁜 탓에 잠을 줄이고 한 번 더 준비하며 움직이는 이외엔 별다른 빠르고 편한 방법이 없겠기에, 매번 정확한 일정과 동선을 일일이 시간마다 확인 또 확인 체크 해야 한다.


손과 발과 머리는 바쁘고 마음은 물음한다 나는 왜? 가는가? 내 마음은 왜? 미련 속에 요동치며 전율하는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가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처 마음 속에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 당면하였을 때 우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대개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따지게 되지만, 대개 마음의 소리를 좇아 선택과 결정을 해 왔던 나의 경우, 나는 무엇을 보는가? 내 가슴의 전율이 떨림으로 반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인가? 이 상황은 과연 내가 찾고 구하는 것에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인가?를 물음하게 된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오리무중, 막연하고 아득하게 보이지 않는, 심지어 전혀 연관성 없어 왜? 그런지조차 알지 못하는 엉뚱한 일들을 벌이고 있을 때조차, 이 기기괴괴한 물음과 답을 좇아 행했던 시간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기쁨, 즐거움, 환희, 그리고 가장 막강한 선물, 굳건하고 당당해진 지금 여기의 나로 피드백되어 회귀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관성 없어 보이던 것들조차, 돌고 돌아 종래에는, 더없는 귀결점으로 함께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결국 삶에 관한 모든 문제는 시간의 문제일 뿐, 함께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천착한다.


말의 세기보다 생각의 크기보다 몸이 움직이는 만큼의 희망의 크기는 뿌리내려지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무럭무럭 천년을 지켜 자라는 나무처럼. 


어둠 속에서 바람이 나니 다시 한울이 살아나도다

비고 빈 것이 본래 빈 것이 아니요 마음이 비어서 공적계가 되니라

내 성품은 본래 한울이요 내 마음은 몸 뒤 한울이니라

내 성품에는 나도 없는 것이요 내 마음에 내가 바로 있는 것이니라

세상 법은 백년 괴로움이요 성인 법은 만년 수심이니라

사람은 해와 달 같이 분시가 아니니 단연코 백년 슬픔을 만들지 말라

헤아릴 수 없는 큰 한울도 조그만 맘보다 낮고 홀연히 일어나 만리를 뒤 밟느니라



<개벽파선언 구매 예약 - 9일 이후 받아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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