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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02. 2020

천도교 소년회의 설립과 그 파장

글쓴이 : 묘향산인(妙香山人 : 소춘 김기전) / 현대어역 : 박길수


[편역자 주] 이 글은 <천도교회월보> 통권131호(1921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1922년 5월 1일을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어린이의 날)'로 창설하여 기념한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에 창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922년 5월 1일은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천도교소년회 창립은 소춘 김기전 등이 주동이 되었습니다. 즉 1921년 4월 천도교청년회 산하조직으로 '소년부'가 창설되고, 곧이어서 5월 1일자로 '천도교소년회'로서 독자성을 갖는 조직으로 발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소년회'의 회원은 만 7~16세 소년으로 정했고, 남녀는 물론 한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소파 방정환은 당시 '천도교소년회' 창설의 실무자이자 앞장선 이이기는 하지만, 방정환이 소년회 및 어린이운동의 총 기획자이거나 최종적인 지도자는 (초기에는) 아니었습니다. 즉 '천도교소년회'는 천도교청년회(후일, '천도교청년당' '천도교청우당')의 지도 아래 있었고, 청년회 임원들 중에 '소년회지도위원'이 여러 명 선정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 방정환이 책임적 실무를 담당한 것입니다. 아래 글은 그로부터 2~3개월 후 당시 천도교청년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야뢰 이돈화가 '천도교소년회' 설립의 의의를 쓴 글입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가 주관한 '제1회 어린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날입니다. 그로부터 1주년이 되던 1923년 5월 1일에는 '방정환'이 주축이 된 천도교소년회가 중심이 되어 조직안 '조선소년운동협회'(천도교소년회,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가 주최하는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개최됩니다. 오늘날 어린이날은 주로 이날을 기념합니다. 이때부터 '색동회'가 간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색동회가 '어린이날' 창설이나 조직의 주축은 아니었습니다. 1923년의 어린이날 행사도 여전히 '천도교소년회'가 그 주축이었고, 그리고 당시(1923) 일본에 머물고 있던 소파는 편지로 어린이날 행사이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당부하는 입장이었고, 실질적인 업무는 서울의 천도교청년회의 임원들이 주축이 된 '천도교소년회 지도위원'들의 힘으로 조직되고 전개되었습니다. 이제 곧 어린이날 100주년(1922년과 1923년 둘 다 - 이 문제는 추후 다시 거론)이 다가옵니다. 100주년을 맞이하고 또 보내며,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도교중앙대교당(중앙)과 중앙총부 본관(오른쪽).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창립, 중앙총부 본관에 설치되었다. 현재 이 자리에 '수운회관'이 들어서 있고, 표지석이 있다

천도교청년회 경성 본부 안에는 천도교소년회라는 새 모듬이 생겼나이다. 그 생긴 일자는 지난(1921년) 5월 초1일이라. 엿튼 일자(日字)이나 그 모듬의 파문(波紋)은 비상(非常)히 넓게, 이제는 누구라도 한번 주의치 아니치 못하게 되었나이다. 이제 이에 대한 수언(數言: 몇 마디)을 기(記: 기록)하여 동덕(同德: 천도교인)의 일람(一覽: 한번 봄)에 공(供: 제공)고자 하나이다.


나라에 국회(國會)가 있고, 동리에 동회(洞會)가 있으며, 청년에게 청년회가 있고 부인에게 부인회(婦人會=여성회)가 있습니다. 사람이란 항상 고거(孤居: 떨어져서 홀로 삶)함보다 군거(群居: 무리지어 삶)하기를 즐기는 동물인 동시에,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무슨 회(會)라는 것이 생기는 것인 듯합니다. 그리고 철없이 사는 야만인(野蠻人)이 아니요 그래도 자기의 의식으로써 어찌 하면 금일 이상의 더 좋은 생활을 지어볼까 하는 문명인(文明人)에 있어서는 무슨 회(會) 무슨회 등 그 회의 종류가 별(別: 특별히) 많은 모양이외다.


우리 조선에도 근년 이래로 회의 종류가 훨씬 늘었으며, 그 회로서 행하는 활동의 범위도 비상(非常: 보통 이상으로) 넓어 가나니, 이것이 즉 우리가 문명인이라는 표시이며, 장래의 영광을 꾸미리라는 약속이외다.


그러나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우리의 모듬의 종류와 범위가 그와 같이 많고 넓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류 중에는 소년에 관한 모듬이란 것들이 들지 아니하였으며, 따라서 그 범위 안에는 소년에 관한 하등의 시위(施爲: 베풂)가 없는 그것이외다.


물론 혹(或: 어떤) 청년회에는 소년부(少年部)란 것을 특설(特設: 이것도 결국은 '천도교청년회' 이야기이다 - 역자 주)하여 소년에 관한 다소의 시설(施設: 베풂과 활동)을 행치 않음은 아니나, 그것은 그 청년회로서 경리(經理: 운영)하는 여러 가지 사업 중으로서 소년에 대한 일과(一科)를 설(設: 설치)한 것인 동시에 그 시설이 충분치 못할 것은 물론, 더욱이 소년 자기들이 자진하여 행하는 일이 아니며, 또 작년 중 경남 진주에서 '진주소년회'란 것이 우담화(優曇花)와 같이 잠깐 나타난 일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것은 혹종(或種: 어떤 종류의 = '독립만세운동'을 말함 - 역자 주) 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설립함에 불과함이요, 신문지의 보도에 의하면 회원 각자가 그 회의 본래의 사명을 자각하고 상당한 조직과 의의 있는 규모 밑에서 그리한 것이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고로 엄격히 말하면 우리 조선에는 아직도 진정한 소년의 모듬이라고는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년회 문제가 없는 이유

다른 각도에서 본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천도교중앙총부 본관


가만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도 많은 대신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면 지금 말하는 소년회는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할 것인가 또는 없어야 할 것인가. 없어야 할 것이라 하면 벌써부터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손으로 두드려 부술 수 있는 것이요, 만일 있어야 할 것이라 하면 우리는 여름밤의 잠을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있도록 하여야 될 것이외다.


세상 사람들은 유소년(幼少年)을 무시합니다. 우리 조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가 합니다. 이것은 물론 까닭이 있어서 그리함인 줄 압니다. 즉 (1) 유소년은 마음이 곱고 살과 같이 부드러우며, 음성이 화열(和悅)한 동시에 큰사람(어른-역자 주)의 완구(玩具=장난감-역자 주)가 되기 쉽습니다. 그서 누구나 한번 그를 완구로 인(認: 인식, 인정)한 이상은 그것을 귀애(貴愛: 귀하게 여기고 사랑함)할 것까지 생각하지만, 그의 장래를 걱정함과 같은 원대한 생각을 잘 내지 못하는 까닭이며, (1) 특히 종래의 동양윤리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교훈을 극단으로 고수(固守)하여, 유소년의 인격을 인정치 아니하는 동시에 그를 사회의 각 방면으로부터 제외하여 성년(成年)에 달(達: 이르다)하기까지는 그로써 하등의 문제를 삼지 아니한 관례가 있는 까닭이며, (3) 우리 조선 사람이 사회적 생활에 의의를 붙이고 가치를 인정하기는 갑오년(1894-동학혁명-역자 주) 이후부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에 그 파문은 이제 겨우 큰사람에게 미쳤고, 아직 소년에게 미치지 못한바, 금일의 우리 큰사람(어른, 성인-역자 주)들은 만일 자가(自家: 자기 집)에 어린 자여질(子與姪: 자식이나 조카)이 있다 하면 그에게 가벼운 옷을 주고 보드라운 밥을 주며 또는 가정교육을 잘하고 학교 공부를 잘 시키는 것이 그의 장래에 유익할 것까지는 생각하되 그에게 미루부터 사회적 훈련을 주고, 동시에 그 훈련을 줄 만한 기관을 설시(設施: 실치)함이 한층 더 유리한 것을 생각지 못하는 까닭이며 (4) 소년의 회합에 관한 전설(傳說: 전해지는 이야기, 전례 - 역자 주)과 형식이 없으며, 또 일반이 그 회합을 장(壯)하게 생각지 아니하는 이 사회에 있어서 소년된 자기(스스로-역자 주)로서는 도저히 그러한 기관을 시설(施設: 설립)할 수 없는 까닭이외다.


소년문제가 우리의 구두(口頭: 입-역자 주)에 오르지 아니하게 된 원인은 실로 여러 가지가 있을지나, 추려 말하면 전기(前記: 앞서 기록한-역자 주) 수자(數者: 몇 가지-역자 주)에 불외(不外: 벗어나지 아니함 - 역자 주)할 듯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있어서 소년에 관한 회합이 아직까지 생기지 아니한 것은 그것이 있어 가(可: 옳을)할 것인가 또는 없어 가(可)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무슨 여론적 단정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유소년을 무시하던 종래의 관례에 의하여 그에 생각이 미치지 아니하였으며, 또는 종래의 관례를 타파하여 유소년을 중시하는 생각을 가진이가 없지 아니할지라도 사회적 생활을 시(始: 시작-역자 주)한 그 일자가 천(淺: 얖은, 얼마 안 된 - 역자 주)한 그들로서는 아직 유소년에게까지 사회적 훈련을 시(施: 베풂)함이 여하(如何: 얼마나)히 긴절할까 하는 그 점에까지 상급(想及: 생각이 미침)치 못한 것뿐이외다. 그러한지라 조선에서의 소년문제는 일어난다 하면 이제부터 (일어)날 것이요, 따라서 그 문제가 우리 사회에 대하여 여하한 관계, 아니 얼마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냐 하는 것도 이제부터 사정(査定: 조사하여 정함 - 역자)할 것이외다.


아아, 소년! 소년! 아아, 소년, 이름만 하여도 얼마나 향기로웁니까. 대지의 구석구석이 빙설(氷雪: 얼음과 눈)로써 매몰(埋沒: 뒤덮임-역자)할 때에도 따스한 입김을 불어내는 자가 그들이며, 우리의 말과 글이 나날이 인습(因習)의 옛집을 찾을 때에도 오히려 내일의 새 생명을 노래하는 자가 그들이외다. 그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사는 곳에는 웃음과 기쁨이 풍성하며 그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지어가는 공정에는 녹이 쓸지 못하나니, 우리 사회의 꽃이며 생명의 '엉지순(?)'이며 인습이란 충(蟲)의 구제자(驅除者)이며, 미래의 예언자이외다. 그러므로 그들을 선도하는 곳에 사회의 생장(生長)이 있을 것이요, 그들과 잘 조화하는 곳에 인도(人道)의 샘물이 흐를 것이요, 그들이 스스로 소리쳐 나아가는 곳에 진정한 파괴와 건설이 있을 것이외다.


영국의 금일 유명한 사상과 러셀은 말하되 청년은 그 죽은 유령일지라도 산 노인보다 낫다 하였나이다. 이 말에 일리가 있다 하면 소년은 죽은 유령일지라도 또 산 청년보다 나을 것이외다. 맨주먹으로써 사회에 새로운 파문을 그리는 것이 청년이라 하면, 다만 가벼운 웃음 한 소리로써 새로운 수(繡)를 놓는 것이 소년인 까닭이외다. 즉 소년은 청년보다도 언제든지 인도적이 되는 까닭이외다. 말하자면 소년은 인간 중의 선민이라 그를 제외하고는 더불어 사회의 개선을 말할 수 없으며, 인간의 향상을 말할 수 없으며, 인도의 옹호를 말할 수 없는 것이외다. 금일의 우리 세간에 부도덕이 오히려 공행(公行)한다 하면 또 오히려 머리를 들먹거린다 하면 이것은 모두 과거 세기에 있어서 선민(選民)인 소년을 제외함에서 생긴 반앙(反殃: 反受其殃)에 불과한 것이외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느낌이 있어서 이번에 새로 설립된 것이 '천도교소년회(天道敎少年會)이외다.


천도교소년회 회가


우리 교의 교지(敎旨)와 소년


'귀신자(鬼神者)도 오야(吾也)라.' 즉 "사람(人)은 한울(天)이라 한 종지(宗旨)를 가진 우리 천도교는 당연히 소년남녀의 인격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며,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 하는 가사(歌詞=용담유사, 흥비가-역자 주)를 지어내어 인생(人生=인간-역자 주)의 무궁한 전진을 음미한 대신사(大神師=수운 최제우 선생-역자 주)께서는 미리부터 소년 교도(敎導)가 여하(如何: 얼마나)히 긴중(緊重: 매우 중요함)한 것임을 암시하였다 할 것이니, 미래를 마음하는[=염두에 두는] 이 소년을 제외하고는 인생(인간)의 무궁성을 상상할 수 없는 까닭이외다. 그리고 해월(최시형) 신사께서는 다시 노골적으로 말씀하셨으니, 왈 "도가(道家: 천도교 믿는 집안) 부인이 유아(幼兒)를 타(打: 때림)함은 시(是: 이것은) 천주(天主=한울님)의 의(意: 뜻)을 상(傷: 다치게 함)함이니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되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이르지 말고 천주(天主=한울님)가 임(臨=강림)하셨다 이르라." 하셨나이다. 이런 계시(誡示) 저린 말씀으로 볼지라도 우리 교(敎) 종지 속에는 당연히 소년문제가 포괄하였다 할 것이며, 우리가 소년 문제에 일부의 력(力: 힘)을 경주(傾注: 기울임)하는 것과 같은 것은 우리 교의 오지(奧旨: 오묘한 뜻)를 사실로써 세간에 표현시키는 일사(一事) 됨을 부실(不失)할 것이외다.


소년회의 조직과 그 내용

초창기 어린이날 노래, 소춘 김기전 이 쓴 가사를 당시 유행하던 '야구가'의 곡조로 불렀다.(해방가 곡조와 같음)

[[[*어린이날 노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사도 있다. "소파 방정환에 대한 평전 '청년아, 너희가 시대를 아느냐'(중앙M&B)를 어린이날에 맞춰 펴낼 민윤식(한국방정환재단 출판본부장)씨는 "일제 강점기에는 미국에서 유행하던 행진곡풍의 야구 노래에 방정환이 노랫말을 붙인 어린이날 노래가 불리기도 했다"고 했다.[출처: 중앙일보] 어린이날 노래 처음 작곡한 안기영 악보 발견-https://news.joins.com/article/163388]]]]


이제부터 천도교소년회의 여하(如何)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겠나이다.


1. 목적사업

소년회 규약 둘째를 보면 "이 회는 천도교의 종지 밑에서 회원의 상식을 늘리고 덕성을 치며(=기르며 - 역자 주) 신체의 발육을 꾀하여 쾌활 건전한 소년을 짓기로써 목적함"이라 하였으며, 다시 동 규약 '아홉째'를 보면 "이 회의 목적을 달(達)하기 위하여, 유락부(遊樂部)와 담론부(談論部)와 학습부(學習部)와 위열부(慰悅部)의 네 부를 두되, 유락부에서는 유희(遊戱)와 운동을 행하며, 담론부에서는 담화와 강론을 행하며, 학습부에서는 사회 각 방면의 실제적 상식을 학리(學理)하며 위열부에서는 회원과 회원 아님을 불문하고 때와 경우에 상당한 위문(慰問)을 행함이라" 하였나이다.


이로써  보면 전(前)은 소년회의 목적이요 후자(後者)는 소년회의 사업이외다. 동회(同會)에서는 목적사업을 실현키 위하여 일주간에 2차씩 회합하되, 회원이 기(旣: 이미)히 3백여 명에 달하였으므로, 회무(會務) 진행상 이를 남녀 2편(便)에 나누고 갱(更: 다시) 이를 연령별로 제1부 8세 지(至) 10세, 제2부 11세 지13세, 제3부, 14세 지16세로 각분(各分)한 후 각부에는 특별지도위원 1인씩을 치(置: 두다)하여 유락, 강론, 학습, 기타에 관한 일체를 교도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동회(同會)에서는 일찍이 유락부 주최로 운동회와 탁족회(濯足會)를 행한 사(事: 일)이 유(有)하며 기타 각 부에서는 지금 여러 가지로 활동을 준비하는 중이라 합니다.


2. 그 회원의 자격과 그 권의(權義: 권리와 의무)

동(同) 규약 넷째에 이 회는 만7세로부터 만16세까지의 소년으로써 조직함이라 합니다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회의 회원이 되는 자격은 만7세로부터 만16세까지의 소년이으면 족(足)하고, 남자와 여자임을 불문하며, 또 조선인임과 외국인임을 불문하며, 천도교를 믿는 소년이면 더욱 좋고 믿지 아니하는 소년일지라도 무관합니다. 그리고 이 회의 사무를 처리키 위하여 위원 몇 사람과 특별위원을 몇 사람을 두게 되었는데, 위원은 소년회원으로부터 공선(公選)하되 현재의 위원 수는 남녀 편을 합하여 12인이며, 그 위원 중에는 위원장이 유(有)하여 그 회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지라 회원 된 일반은 그 회의 모든 집회의(集會議, 집회와 회의-역자)에 참여하고 위원을 선거하며, 또 피선될 권리가 유한 동시에 그 회의 규약, 기타 결정에 절대로 복종할 의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 발전을 도(圖: 도모)하기 위하여 물론 금전을 요(要: 필요)합니다. 그 요금(要金)을 전부 부담하기는 금전에 대한 능력이 무(無)한 소년 자기로서는 사실상 불가능인바, 요금의 다부(多部: 대부분)은 일반 유지의 찬조금으로 충(充: 충당)하고 기여(其餘: 그 나머지)의 기분(幾分: 약간)은 회원 각자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소년에게 자립자영의 교훈을 주는 일도(一道)가 아닌가 합니다. 그 부담금은 입회금 5전, 월연금(月捐金: 월회비-역자 주) 3전인데, 지금까지의 성적을 고(考: 고찰)하면 그 의무금 수입은 성적이 심히 양호합니다. 회원의 다수는 월연금을 내기 위하여 매월의 제1 일요(日曜)를 손꼽아 기다리나니, 이것은 그 회의 자금이 날로 증가하여 감을 재미있게 생각하는 까닭이외다.

3. 실제 하는 일

소년회의 목적과 사업은 전항에 기(記)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지로 집행함에는 여러 가지의 고심이 되는 동시에 많은 취미가 있습니다. 회원 자기가 즐거워함은 물론 그를 방시(傍視: 무관심-역자)하는 자까지 흥미를 느낍니다. 제1 유락부에서는 유희와 운동을 행하되, 이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요, 자유스럽고 즐거운 중에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니, 즉 혹은 연희, 혹은 창가(唱歌) 또는 무도(舞蹈)와 야구, 축구, 풋볼 같은 등이 그것이며, 담론부에서는 역사나 담화 상에 나타난 취미와 교훈이 가득한 화재(話材)를 선(選)하여 담화 혹은 토론을 행하는 동시에 일상행사에 관한 것을 간간(懇懇: 정성을 다하여 - 역자)히 설진(說盡: 모두 말함)하여 그의 품격 도야에 노력하며, 위열부에서는 회원간에 혹 병이 나거나 기타 의외의 좋지 못한 일이 생길 때나 또는 일반 사회에라도 사람의 이목을 놀랠 만한 불행사(不行事)가 있을 때에는 성심으로 위문을 행하며, 이와 반대되는 기꺼운 경사가 있을 때에는 축하를 행합니다. 즉 희우(喜憂: 즐거움과 근심)를 사회와 공분(共分)하여 그들의 품성에 잠겨 있는 인도(人道)를 그대로 발휘하자는 것이 이 부의 정신이며, 학습부에서는 소년으로서 일상에 행할 예의 작법(作法)을 학습하며 사회에 널리 쓰이는 상식을 준비하되 이것을 앉아서 이론(理論)으로써뿐(만) 그 목적을 달할 것이 아니므로 명승고적을 구경하며 사회의 실제를 견학하기에 주력을 용(用)합니다.


그리고 이 쇠에는 회원 호상간(互相間)은 물론이요, 지도위원과 회원간이라도 필히 경어를 용(用)하며 그리고 호상간의 예양(禮讓: 예의와 양보)을 중시하여, 만나고 헤어질 때에는 반드시 예를 행하며, 지도위원으로부터 회원에게 무엇의 실행을 요구할 시는 먼저 그 이유를 곡진(曲盡: 간곡하고 자세히)히 설명하여, 그가 자진하여 실행하여 그리 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모든 지도에는 명령과 같은 살풍경(殺風景)의 태(態)가 없고 극히 온화한 기분 중에 실행됩니다. 예(例)하면, 일반회원의 행렬(行列)를 짓고자 할 때에는 척으로 하는 일이 없고 지도위원으로부터 "자, 좀 보기 좋게 서 봅시다" 하면 곧 정연한 행렬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그 투(套)로써 된바, 퍽 재미있습니다.


천도교청년회와 천도교소년회

천도교청년회(->천도교청년당)의 전국대표자 회의 후 기념촬영(천도교중앙총부 본관 앞)

천도교소연회는 회 자체로 보면 물론 독립체이외다. 그러나 소년은 소년이라.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획책(劃策: 계획과 정책을 세움)할 수 없으며, 또 그 회책을 실현할 능력이 부족할 것이외다. 반드시 누구의 지도를 요하며, 부액(扶腋: 부축-역자)을 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지도 부액함에는 누구보다도 소년과 제1 인연이 가까운 청년이 최적(最適)할 것이외다. 천도교청년회에서는 깊이 이 점에 생각한 바 있어 청년회 사업의 일(一)로써 소년 사회에 수(手)를 하(下)하였나니, 천도교소년회의 설립이 즉 이것이외다. 말하자면, 청년회에서 소년부를 둔 셈이외다. 그러나  소년부를 둘뿐으로서는, 다시 말하면 소년에 관한 문제를 청년회의 일부로써 취급할 뿐으로서는 소년에 관한 여러 가지 사위(事爲)를 유효히 실행키 곤란할 뿐 아니라 일면으로 소년의 자립자존성(自立自存性)을 멸여(滅如: 없애는 것과 같은)함과 여(如)한 혐(嫌: 싫어 함)이 불무하므로 소년회를 본회를 독립케 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자기네 스스로 회무(會務)의 처리에 당케 하여서 책임과 희열을 아울러 느끼면서 회의 발전을 도(圖)케 한 것이외다. 그리고 청년회에는 다만 특별위원 몇 사람을 지정하여 그 회의 전반을 지도 감독하는 금일이외다.


소년회의 실립과 그 파문


천도교소년회의 설립은 겨우 한 달 전 일이외다. 따라서 회원 수도 아직 320여 인에 지나지 못하며, 모든 것이 지금 애쓰는 중에 있습니다. 회원들은 오히려 이 회의 취지선전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의 설립은 우리 사회 전반에 향하여 큰 파문을 그렸나이다. 설립 초에 있어 각 신문은 그 실상을 보도하였으며, 어떤 신문에서는 이를 사설로써 보(報: 보도)하여 이 소년회의 설립이 곧 조선사회에 재(在)한 소년운동의 제일성(第一聲)임을 논하였으며, 기타 사회 문제에 유의한 모모 씨는 소년회의 광경을 친견(親見)하고 운동 기구와 책 같은 것을 기부한 일도 있나이다.


이것은 의당히 그러할 것인 줄 압니다. 오직 과거 예배에만 분주하던 전일(前日)에 있어서는 소년을 문제 이외에 두었을는지 모르거지와 적어도 명일(明日)의 더 좋은 광경을 바라며 나아가는 금일 사회에 있어서는 소년문제가 무슨 문제보다도 더 큼이 되는 까닭이되다. 그런 중에도 이 문제는 천도교의 종지로 보아 더욱 긴중한 것인 듯합니다. 이에 대한 제일성은 천도교청년회로부터 발(發)하였나이다. 그 파문은 곧 청년회 있는 곳에는, 아니 천도교도 있는 곳에는 모조리 밋흘[조직할?-역자]지며, 그리하여 불기일(不幾日: 며칠 지나지 않아)에 조선 전토(全土)에 미칠 줄 믿으면서 이 글을 초(草)하나이다.


<참고>

아래 글은 그로부터 1년 후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의 날" 행사를 진행하였다는 소식.




<관련도서 : 천도교청년당(청년회)의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천도교소년회'와 '어린이운동'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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