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4
1.
세월호 사태가 박근혜정부의 허위와 위선과 무능을 드러내는 스모킹건이 됐다면, 코로나19 사태는 문재인정부의 '유효성'을 대내외에 증명하며 그 반대편에 선 정치세력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세월호 사태에 대하여 우리는 '잊지 않음'과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의 두 기둥을 축으로 시대의 언덕을 넘어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길에 접어든 우리 앞에는 아마도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연필과 '자존감에 값하는 시민사회와 국가체제의 재구축'이라는 숙제가 주어진 듯합니다. 그것은 '마스크 쓰기'로부터 시작되는 한 개인의 삶의 현장에서의 실행과 '산재사고율 1위의 오명을 씻어내기'라는 국가/사회 차원의 실행까지 아우르는 일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의미를 냉철히 짚어보기와 "가던 길로 함께 내처 가자는 '으쌰으쌰'를 이야기합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이 바이러스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한 요인으로, 중앙집권화된 민주 체제, 의료보험의 보편화, 준비된 공공보건 시스템, 사회적 응집력과 높은 시민의식, 의료인들의 전문성과 헌신성, 정치지도자의 의지를 꼽았다. 이들이 특히 주목한 방식은 투명성 즉 시민이 참여하는 방역, 진단키트의 개발과 대량생산, 안전하고 빠른 검사를 가능하게 한 드라이브스루 선별 진료, 중증환자와 경증환자를 구분하여 경증환자를 생활치료소에서 관리한 것 등이다. 독일은 한국 모델을 ‘추적, 검사, 치료’로 파악하고 이 모델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 한국의 대응, 모델이 될 것인가 / 이나미> 14쪽)
이러한 '한국모델'에 대해서, 유럽인들은 그 결과치(=성공적인 방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그에 이르는 방법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조처를 두고 개인정보가 낱낱이 노출되는 것으로 오도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유럽의 상반된 시각은 어떻게 국가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양립 가능한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인권'이 최대/지상의 가치이고 개인정보를 국가가 통제/관리하는 것(이라고 그들이 착각하는)은 '전근대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한' 방식이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라는 점을 애써 외면하는(전우용 선생님 말씀)"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증가가 한창 진행되다가 극적으로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한국인 스스로도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인식하였습니다.
첫째, 진단검사의 속도와 혁신성(54.5%), 둘째, 방역당국의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공개(17.9%), 셋째, 의심증상자·확진자의 병원 접근성(8.5%), 넷째, 국가가 부담하는 감염증 관련 비용(7.1%), 다섯째, 시민사회의 예방지침 준수와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 (이나미, 앞의 글, 앞의 책, 14쪽)
세세한 이유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주목할 것은 한국인들이 (아마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때만큼이나) 자신감과 자부심에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 때문에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촛불혁명'과 '정권교체' '성공적인 의회권력 교체'로 이어져 온 일련의 정치적 흐름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고, BTS나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같은 문화적 측면이 또 다른 측면에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를 열거하자고 해도 한참 걸릴 테지요.
그러나 지금, 이 지면(책)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깊이 다루는 이유는 '한때(?)'의 성공에 취해 희희낙락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도 기대치 않은 가운데 찾아온 이 '작은(?) 성공'의 원인을 정확하게/정직하게/정면으로 분석하여 '더 큰 성취'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한국사회/한국인)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주목하여 힘주어 외치는 사람도 있고, 애써서 외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실 자체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무지한 경우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그 해결의 방향과 경로를 "(전통적인, 서구, 유럽) 선진국"에다 맞추고, 그리로 가야 한다고 애면글면하거나, 그곳과의 거리가 멀다고 자책하고 자멸하고 자기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정서적 특장이 있는 만큼 그에 기반하여, 그것에 적합한 미래상을 그려 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 세계의 보편화된 담론과 삶의 방식과 외떨어질 수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외국의 그것과 천편일률적이지 않아도 됩니다는 것,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럴 수도 없으며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