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영 교수의 종교평화 활동에 부침
[개벽통문 - 117]
1.
코로나19 이후에도 '종교'가 (유의미하게) 존속할 수 있을까? 당연히 '종교'는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모든 영역, 심지어 인간 자신의 정체성이 코로나 이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처럼, 종교도 코로나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다(달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이후에는 '오래된(전통적, 기성의) 종교'와 '새로운 종교'와의 투쟁(=경쟁)이 훨씬 더 가속화될 것이다. 오래된 종교란 기존의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의 '교단-제도 종교'를 말한다. '새로운 종교'란, 금번 이태원 클럽에서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젊은이들이 신봉하는 '클럽신'이나 '지름신' 혹은 '덕후(교)' '물신' 같은 물질주의, 자본주의, 과학주의 등등 (뭐라고 하든) "유사종교" "대체종교" "신-신종교" '초(超)-종교' 등을 말한다. 하나의 사례로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외국 팝스타 내한 공연에서 당시 여고-여대생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환호 장면 이래로, 1990년 대 이래 우리나라의 가수나 아이돌 스타에게 열광하는 청소년이나, 최근 들어서의 트롯 열풍에 보여주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 열광은 '부흥회'에 열중하는 종교 신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모두 느끼듯이 이러한 '유사-대체, 신:신' 종교들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짧게 보면 근대(과학, 철학)의 등장과 자본주의 시대 이래(3, 400백년?)의 일이지만, 길게 보면, 오늘날의 전통-제도 종교의 원형이 되는 원시종교의 발현 시절부터 이미 (전통적 의미에서의) 종교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공존해 온 것들이다. 그것들은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들어 전 세계적으로 기존의 종교 세력 판도를 잠식하면서, 서구(유럽)의 경우 형식적인 면에서의 제도종교는 이미 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유럽인 내부에 '종교적 심성-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등-'까지 전면 무력화되었는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기존 종교 - 전통 종교에 끼친 영향의 결과로 이러한 새로운 종교의 발호는 이제 공식화되고 공론화되고 공공화(=시민들의 지지를 얻음)되어 '탈(전통)종교화'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특히 가시화, 현실화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조적) 신'을 상정한 전통종교의 자리는 (일부 광신적 신앙 행태를 보이는 종파, 교회를 제외하고는) 점점 위축되어 갈 것이다.
3.
그렇다면, 이러한 해서 인간은 완전히 '탈종교화'할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 이미 암시한 것처럼 인간은 종교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다만 '대체 종교' '대안 종교' '물신 종교' 등으로 그 '종교적 열정'이 옮겨갈 뿐이다. 그것은 '대체'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경우도 있고, '탈' '초(超)'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경우도 있겠으나, 어쨌든 기존-기성-전통 종교의 영향력은 점점 축소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결코 '종교'로부터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기성의 종교가 인간 본연의 종교적 심성을 이용하고, 또 한편으로 제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보수화-기득권화-형식화 등의 폐해를 보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영혼(의식, 마음 등 뭐라 부르든 간에)' 즉 영성을 같게 된 이래로, 종교란 인간 존재의 바로 그 '영성적 측면'을 감당하고, 설명하고, 교육(안내)하는 필수적, 필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초종교화 현상이 필연적이며, 대세라고 해서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인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데 인간의 숙제가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당시 '신천지'는 (이단)종파는 기성종교의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바로미터다. 신천지 신도의 주류가 20대 여성들이라고 하고, 그들이 신천지에 열광한 이유가 한편으로는 사회적(국가적)으로 희망 없음, 다른 한편으로 기성종교(기독교)에서 충실한 구원을 발견(희망)하지 못함에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탈-초종교화 현상은 기성종교의 문제-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신주의-현실주의(지금-여기에서의 쾌락과 행복)의 유혹에 휩쓸린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 공동체와 (영성적)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마치 '중독자'처럼 물신-소비 의존도는 점점 커지기만 한다. 그렇게 '소비(물질이든, 아이돌스타의 노래든)'에 내몰린 결과 지구 전체에 심각한 부하가 걸리고 그 결과가 가로 오늘날의 기후위기 그리고 그러한 기후 기가 영향을 끼쳤음에 분명한 코로나19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4.
이러한 때에 (기성-기존) 종교/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체로서의)현재의 (기존)종교에 비종교인, 또는 '가나안(안나가) 신자' 들을 돌아오라, 들어오라고 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이제 굳이 누구더러 어딘가(종교뿐만 아니라 정당이든 시민사회단체든)엘 들어로라 말아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들어올만 한 조직/단체의 정보는 SNS를 타고 사람사람마다 도달하게 마련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5.
"너나 잘해!" 지금 (기성-기존) 종교/인들이 되새겨야 할 말은 이것이다. 기존-기성 종교/인들이 스스로 종교인으로서 행복하고 완성도 있는 (종교)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 - 이 세계를 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진실되게 하는 바르고 밝고 깨끗하고 즐거운 길이기 때문이다.
기존-기성의 종교가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면, 신-신종교, 물신주의-과학주의 등의 새-종교, 대체종교, 대안종교들과 배타적-적대적인 경쟁을 할 필요도 사라진다. 오히려 그러한 때야말로 건강한 '공존'과 아름다운 경쟁, 그리고 행복한 조화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 문자그대로의 신천지를 희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손원영 교수(목사)의 투쟁은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현재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기존-기성 종교의 자기혁신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음, 기존하는 기득권을 고수하는 (기성)종교가 맞이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손원영 교수를 해직시킨 학교, 이단논쟁을 벌이는 해당 교단) 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가시적인 심판(재판에서 패소)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도한 우주 생명(신의 리)의 흐름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하고 도태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손원영 목사가 보여준 '열린 종교' 활동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계)가 지향해야 할 바른, 바람직한 길을 말해준다.
싸우는 것만으로 이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적어도 (드러난, 기존, 기성의) 종교 행태들에 대해서 싸우지 않고 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원영 목사의 투쟁 경험은 우리(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모두에게 귀중한 전범이 된다. 그리고 그만큼,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개벽의 징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