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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02. 2020

맹호은림의 문화운동가, 청오 차상찬

- <차상찬 연구 :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선구자> 책소개

맹호은림(猛虎隱林)! 


이 말은 일제강점기, 저널리스트 청오 차상찬(1887-1946)을 당시 <별건곤>의 기자가 한마디로 묘사한 술어이다. 1887년에 태어나 1946년에 돌아간 청오 차상찬 생애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상황 속에서 근대적 독립 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전반기 23년과 일제강점기하에서 국내외적으로 문화운동-민족운동과 무장 항쟁을 통한 자주독립을 지향하던 후반기 36년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며 전개되었다.


그는 근대 시기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고 할 수 있는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20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로 창간되는 <개벽> 창간동인으로 개벽사에 합류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차상찬은 <개벽>을 비롯한 개벽사 내의 잡지(<어린이><별건곤><신여성><혜성><제일선><학생>)은 물론이고 당대의 거의 모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왕성한 집필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글을 수많은 잡지/신문에 게재하게 되면서 그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71개의 필명(筆名)을 사용한, 국내 최다 필명 보유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이력에 비하여 그는 거의 ‘묻혀진 인물’에 가깝다. <개벽> 잡지가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그에 비견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잡지를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성취를 이루었으며, 차상찬은 김기전, 이돈화, 방정환과 함께 개벽사의 ‘4대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 이유는 ‘개벽파’라고 할 수 있는 자생적 근대화, 자주적 근대화 세력의 몰락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성이 매우 크다. 


차상찬은 2010년 11월 1일 제45회 잡지의 날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겨우 복권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그의 고향 춘천을 중심으로 ‘방정환 동상 건립(2015)’ ‘차상찬문고(컬렉션) 개설’(2016) ‘차상찬 연구 학술대회’(2017, 2018, 2019) 등이 잇달으며 차상찬을 재조명하기에 이르렀다. 또 강원교육문화연구소에서는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2018년 <차상찬전집>1차분 3권을 발행하였으며, 학술대회 및 기념사업 등이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차상찬에 대한 조명은 단지 한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첫째, 차상찬이 주력하였던 <개벽> 잡지의 재조명, 그리고 <개벽>이 지향하였던 문화입국으로서의 근대적 자주독립국가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근대 문화운동의 보고인 <개벽>과 개벽사 잡지들의 콘텐츠를 통해 ‘식민지 치하’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문화투쟁의 전모를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 문화운동은 ‘일제의 문화통치의 산물’이라는 고정관념에 편향되어 그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셋째, 개벽사의 다른 주역들(이돈화, 김기전, 방정환, 박달성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차상찬에 버금갈 만한 이력과 콘텐츠를 간직하고 연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차상찬 연구>는 지난 4년여 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온 차상찬 연구 사업(학술발표)의 성과를 총망라한 것이다. 차상찬이 주 활동무대인 ‘개벽사’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차상찬과 천도교’ ‘생애 주기별 활동’ ‘민족문학 발굴 활동’ ‘조선문화의 기본조사 활동’ ‘문화기획자로서의 차상찬’ ‘아동문학가로서의 차상찬’ ‘민요수집가로서의 차상찬’ ‘언론인, 언론학자로서의 차상찬’ 등을 조명한다.


총론인 정진석의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문화운동과 <개벽>>은 <개벽>이 추구한 항일문화운동을 ‘민족, 문학, 사상, 여성, 어린이’의 세부적인 관점에서 규명하였다. 성주현의 <청오 차상찬과 천도교>는 천도교청년회(청년당), 천도교소년회, 조선농민사를 중심으로 차상찬이 전개한 청년운동, 어린이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박길수의 <청오 차상찬의 개벽사 활동>은 차상찬이 개벽사를 무대로 잡지 발간을 주도하고 주요 필자로서 활동한 과정을 생애 주기별로 조명하고,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에 반영된 현실인식을 짚어 보았다. 심경호의 <차상찬의 민족문학 발굴 공적>은 민족문학과 민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차상찬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김태웅의 <차상찬의 지방사정 조사와 조선문화 인식>은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의 배경과 의도, 답사 과정, 성과물의 내용, 통계표의 활용 등을 검토하였다. 송민호의 <식민지 조선의 문화기획자 차상찬>은 잡지 편집자 또는 조선문화의 기획자로서의 차상찬의 면모를 주목하고 취미잡지 <별건곤>을  분석하였다. 유명희의 <차상찬의 민요수집과 유형 연구>는 차상찬의 민요수집 활동을 통해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고향 춘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고찰하였다. 오현숙의 <차상찬의 아동문학>은 차상찬이 전개한 아동 역사 서사에 주목하고 기초적인 개념을 정립하였다. 야나가와 요스케의 <1920-1930년대 언론계와 차상찬의 위치>는 차상찬의 언론활동과 ‘신문발달사’의 내용을 고찰하였다. 정현숙의 <차상찬 필명 연구>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차상찬의 71종의 필명을 확인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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