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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7. 2020

태초에 미디어가 있었다

<<미디어 빅히스토리 입문>> 이야기 - 1/2

- 모시는사람들 편집실


오늘도 우리는 '이른바 언론'이 쏟아내는 가짜뉴스 또는 가짜뉴스에 버금가는 편향된 정보에, 눈과 귀를 막고 '미디어 청정 지역'을 찾아 헤매거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마는 괴로움,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마는 고통스런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사회-국가)와 우리의 미래세대까지 아울러 삶(생명)의 건강성을 좀먹고, 누려야할 기쁨을 앗아가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은 '미디어 시대'이다. '미디어 시대'에서 '미디어'의 위상과 의의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위력을 발휘하며 우리 삶과 건강한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이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좁게는 언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보릿고개 시절'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을 확보하는 일과 같이, 우리 삶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시대이다. 

태초에 미디어가 있었다

 

미디어(media) 시대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5G, 양자컴퓨터 등을 근본 요소로 하는바, 이것은 모두 미디어와 연계된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이나 'SNS'를 제외하고는 유지는 고사하고 그 실체를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시대의 핵심적인 키워드로서 미디어는 ‘뉴 미디어’라는 말로도 포괄되지 않은 차원의 확장을 경험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에는 '미디어'가 내장되어 있다. 드디어, 인간은 “태초에 미디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말해야 하는 세계를 만난 것이다. 


여기서 ‘태초의 미디어’란 ‘빛’을 말한다. ‘빛’이라는 미디어로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태초의 시간은 빅뱅 후 30만 년이 지난 시기부터이지만(그 이전의 시간은 '중력파' 등을 통해 접근한다), 그 시초성 외에도 빛은 인간이 우주만물에 관해 이해하는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한다는 점에서도 근본적인 미디어이다. 미디어의 역사의 시간적 확장이 138억 년까지 확장되는 순간이다. '미디어 빅히스토리'는 이처럼 '빅뱅'의 순간부터 오늘,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세계의 존재 양상을 '미디어'라는 패러다임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한편 빛을 미디어로 인식하는 순간, 다시 말해 미디어를 빛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시야를 갖추면, 자연스럽게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사회과학’의 범주를 넘어 ‘자연과학(물리학)’을 아우르는 것이 된다. 또 인간의 진화에서 결정적인 티핑포인트가 되는 것이 ‘언어’의 사용이라고 할 때, ‘미디어’가 인간의 인간됨과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음과 인간을 포함하여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미디어’의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미디어의 공간적 확장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미디어 빅히스토리’는 미디어의 시공(우주)를 본래의 자리까지 확장함으로써, 미디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밝힌다.


원시 인류는 매우 초보적인 상징적 전달 방법에서부터 시작해서 언어적 의사 전달 노력을 거듭하였고, 그것은 다시 뇌의 발달을 가져오게 됩니다. ... 인류에게 언어의 사용은 대약진의 발판이 됩니다. 언어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히스토리의 법칙입니다. (30쪽)


미디어의 지평을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은 매클루언의 미디어론은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a is the message)"는 한마디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 말이 갖는 의미와, 나아가 매클루언의 미디어론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미디어 매체'에 한정시키지 않았고, 또한 미디어에 담기는 메시지를 주로 하고 미디어를 수단으로 인식하던 전통적인 미디어관을 전복시키면서, 인간으로부터 연장되는 모든 것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라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미디어는 단지 인간에 의해 소비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확장으로서 작동하는 것임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는 곧 본래적 의미에서의 '인문학(모든 학문은 인문학이다)'이 된다. 미디어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고, 심지어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미디어 이후’ - 전통적 미디어 대멸종기 

 

지금은 ‘미디어 이후’의 시대다. 여기서 ‘미디어’란 전통적인 의미의 미디어이며, 그것은 압도적인 크기로 인하여,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고 만 공룡과 같은 존재이다. 근대 산업혁명 이래로 신문-TV를 비롯한 전통적인 미디어는 에너지 혁명과 통신 혁명 등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면서 전통적인 미디어는 예전의 생명력과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미디어 생태계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공룡의 멸종이 포유류의 번성을 가져왔듯이 ‘전통적인 미디어의 대멸종’은 뉴미디어의 폭발적인 확장을 가져왔다. 또는 뉴미디어의 성장이 전통적인 미디어의 멸종을 촉진시킨 측면도 있다. 이러한 뉴미디어 시대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 개개인이 ‘미디어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더 근본적인 것은 인간과 미디어의 융합마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인간 ‘뇌’의 확장으로서 존재하고 기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디어의 전환과 변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존재론적인 전환과도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되는 것이다. 


미디어의 공정성과 객관성의 역사 


인간은 미디어 속에서 발생하여 진화하고 성장해 왔다. 지금 여기에서의 일상의 삶 역시 미디어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도 온전히 지탱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해진 만큼, 그것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소중하고 긴요하다.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은 점점 더 ‘미디어’에 의존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만큼, 미디어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인간이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데에 더욱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인간 삶의 중요 요소로 등장한 산업혁명 초창기부터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이 변질되어 왔다. 급기야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인 변화와 더불어 객관성에 대한 포기, 공정성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에 근거한 불공정의 만연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디어 빅히스토리의 패러다임은 이러한 ‘저널리즘적 일탈-객관성의 포기’ 경향에 일침을 가하고, 객관성-공정성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기반하여, 해법을 모색해 나간다. 이것은 미디어를 ‘미디어-내부’의 일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확장시켜서 이해하는 ‘미디어 빅히스토리’의 접근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다. 직접적으로는 미디어의 역할과 저널리즘의 이해와 실행에 과학의 바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미디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진실과 객관을 포기하는 않는 태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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