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시공간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적잖이 다른 시간 속을 관통하는 중이다. 이른바 386(586, 86) 세대와 그 이후 여러 세대-N포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 그리고 세대로 포획되기를 거부하는 세대까지-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은 같지 않다.
소위 86세대로 지칭되는 그룹의 많은 사람들(과반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회적으로는 대체로 그렇게 대별된다)은 여전히 진영 차원에서의 민주화와 정의, 공정함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후 세대들은 그보다는 훨씬 더 미세하고 정교한 수준에서의 공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86세대의 정의와 공정 추구는 여전히 "우리의 정의" "우리 모두에게 공정함"을 기준으로 삼는 데 반하여, 그 이후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우리'의 정의와 공정함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노출되는 불공정과 부정의를 빌미로, 결과적으로 '나에게 정의로움' '나에게 공정함'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나에게 공정함이 타자에게 불공정함을 야기하거나, 전제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연코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이기주의자'나 '유아(唯我)주의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결국은 나도 이른바 '86세대 類'이기 때문일 테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대 '저들'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우리' 안에도 '저들'이 있고, '저들' 안에도 '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전선(戰線)을 '우리'와 '저들' 사이에 긋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필수적인 접근 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복잡함과 중층적인 구조 (나는 '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얼마든지 '갑'이 될 수 있고, 되곤 하는) 때문에, '우리'와 '저들' 사이의 '전선'을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또 설령 전선을 찾았다 하더라도, 금방 그 전선이 뒤바껴 버리는 상황 때문에, '우리'와 '저들' 사이의 '전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와 '저들' 사이의 전선을 이탈하는 순간이야말로, '저들'의 먹잇감으로 쉽사리 노출되고 포획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는 '나들'(We가 아니라 I's)로 살아가는 데에 익숙하고, 그것이 '인간됨'의 기본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긍정적인 의미의 - 최소한 중립적인 의미의 개인주의)에서 "우리" 대신 "나"를 기본 단위로 하는 86 이후 세대들은 촛불혁명 당시에도 든든한 '동지들'이었고, 또는 '각자들'의 자리에서 수많은 '작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 '혁명 세력'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수자' 내지 '소외자' (취업준비생 내지 무주택자 내지)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대(1860년 전후한 시기 이후 ) 이후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을 제지당하는 역사의 길을 걸어 왔다. 혹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삶을 기획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루저'로 전락하도록 강요되어 왔다. (동학혁명이 일본군에 의해 좌절되거나, 한국 자주적 근대화가 일본의 국권강탈로 저지되거나, 광복 이후 통일민족국가 수립이 남북 양쪽에 진주한 미군-소련군 등의 냉전체제하에서 저지되거나 등등)
그리고, 그 어간에서 우리는 우리 생명의 직접적인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마저도 우리 것이 아닌, 일본 기준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존재'의 불일치로부터, 오늘 우리가 드러내 보이는 온갖 부조리가 필연적으로 조성되지 않았을까?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자란 아동이 나중에 부모가 되어 폭력적인 부모가 되는 것처럼) ... 우리 모두가 그러한 존재-시간 불일치의 삶으로부터 생겨난 '병적인 상태' 속에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비타협(어긋남, 불일치) 기조가 형성되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시간"을 찾고자 한 (우리 역사에서 두드러진) 최초의 임금은 세종이었다. 영화 <천문>에서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것이, 역사적 사실의 일부분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세종은 장영실을 비롯한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우리 한반도에서의 천문관측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달력과 시간표를 갖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중국으로부터의 자주성을 획득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생명의 온전성을 확보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자주성이라는 말 자체를 '정치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보면, 자주란 다름 아니라, 내 생명의 온전함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확보하는 노력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왜 아픈가?"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우리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사실 기준을 다른 데 두고 있는 경우가 어디 이(-표준시/도쿄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의 시간)뿐이던가. 가령 그동안 한국 기독교의 기준은 한국이 아니라 로마나 미국이 아니었던가. ‘거룩한 땅’은 여전히 예루살렘에나 있는 것 아니던가. 음악은 으레 서양음악일 뿐, 우리 음악은 국악 아니던가. 역사는 으레 서양 역사이고 우리 것은 국사 아니던가. 철학 하면 으레 서양철학이고 우리 것은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성립되는, 종속적인 것 아니던가. 그나마 한국 철학의 기원은 대부분 중국에서 찾아지지 않던가.
비행기 타고 ‘서쪽으로’ 10시간은 더 걸려 가는 나라를 ‘가운데 동쪽(중동)’이니 ‘가까운 동쪽(근동)’이니 하며, 마치 유럽인처럼 말하지 않던가.―물론 동쪽으로 빙 돌아간다고 해도 중동이나 근동 지역이 나오기는 다.―6.25의 비극을 ‘한국전쟁’이라며 남의 나라 얘기하듯 타자화하지 않던가. 양력 1월 1일 0시가 되면 연예인들이 TV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큰 소리로 외치고는, 다시 음력설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또 시청자들을 향해 절을 한다. 우리가 새해의 기준조차 아직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그만한 이런 사례들은 더 나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의 것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삶이 체질화되다시피 해서, 별로 어색해할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은 왜일까? 언제쯤 우리 자신이 기준이 되어 볼까? 언제쯤 내가 누구인지 저 밖이 아닌,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제대로 보고 알 수 있게 될까? 한반도 전체가 여전히 도쿄의 시간을 따라 쓰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다 보니, 여러 가지 모순들이 연결되어 따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