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33] <다시개벽> 창간호 중에서
[다시개벽] 창간호 - 다시읽다
- 조성환 / [다시개벽] 편집인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전략)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래의 개념 세계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이러한 전면적인 태도전환을 권덕규는 "자아를 개벽하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조선인에는) 역사의 조선인과 현대의 조선인,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역사상의 조선인은 (…) 스스로를 천제자(天帝子)라 일컫고, 남들에게는 천족(天族)이라고 불리었다. 오직 나 외에는 내가 없고, 나 아닌 남은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으니, (…) ‘나의 쓴 것이 남의 단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자세히 말하면, 남의 작록(벼슬자리)이 자기 회초리만 못하다고 보았다. 지금 사람들처럼 남의 꽁무니만 좆지는 아니하였다. (…) 몇 백 년 동안 우리 사상계는 보잘 것이 없었으니, 악착같은 주자학파의 지배 아래 엎드려서 일거수일투족에 도무지 자기 생각이 없었다.
고대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하늘님의 자손’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존감이 높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남의 흉내를 못 내서 안달이 난 민족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시대에 와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 이유는 중국의 주자학에 지나치게 기울어서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조선이 망한 원인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아니다. 대개는 신속하게 산업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 데에서 원인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31세의 청년 권덕규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조선인들이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하지 못한 데에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정신적으로 주자학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처방이야말로 개벽파를 다른 그룹들과 구별짓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개벽파는 당시의 조선이 처한 비극의 원인을 창조적 사유의 부재에서 찾았고, 그 창조적 사유를 가로막는 정신적 식민지성을 개벽할 것을 촉구하였다는 점에서 척사파나 개화파와 달랐다.
100년 전의 개벽파의 진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조선의 주자학이 서구에서 전래한 학문들로 대상만 바뀌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에도 자아를 개벽하기보다는 자아를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다시개벽]은 이제라도 ‘다시’ 자아개벽에 도전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확장되어 지구개벽에 이르는 세상을 꿈꾼다. 바로 여기에 [개벽]을 다시 호출하는 이유가 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