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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04. 2021

강은 흐른다

[牛步詩-016] 강은 흐른다


영하 이십도나 삼십도

아무리 추워도

그 추위가 몇날 며칠이 가도 

강은 흐른다 


친일파의 세상은 끝이 났는가, 하고 물으면 

언제적 친일파냐고 반문하는 사람들과,

친일파의 후예들과 그 후예들

그 후예들의 후예들과 그 사돈의 팔촌과

착취하는 자본과

군림하는 사법과

부패하는 권력과

기타 등등, 그리고 기타 등등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깊은

강은 흐른다

 

혹은 친미파래도 좋고, 혹은 친중파, 친러파래도 좋고

혹은, 그러므로, 기타 등등

이제는 과거사는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니 평등이니, 평화 그런 꼰대 같은 말,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 강과 바다, 산과 들판도 함께 잘 살아가자는 좋은 말, 멋있는 말,

은,

예쁜 책갈피와 더불어 모셔두고

우리는 여전히 성장과 발전의 길로 내달려 가서

세계속의 한국을 구가하는 게 옳다고, 좋다고, 즐기라고 말하는, 

남은 남대로 미국이랑 붙어 살고, 

북은 북대로 제 갈길 가는 게, 가능하고 필요하고,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고

우리의 우리다움을 찾고 알고 살고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그러나 함께 걷고, 말하고, 오가고,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하루에 한 송이 꽃이 삼백예순 날에 

온세상의 꽃이 되는 날이 온다는, 

그럴 때에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도 살고, 세상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딱, 그 사이에

강은 어김없이 흐른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스키장으로,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집합 금지 조치가 해제되기를 기다리는,

해제되지 않으면, 빗장을 억지로 열고서라도

달려가겠다는,

달려가는 걸 막는 정권의 무능(!)함과 부패(!)함은 

내로남불이므로, 능멸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욕망도 내것이므로

내 사유재산이므로

값을 떨어뜨리는 어떠한 정책도 사상도 철학도

수운도 해월도 예수도 부처도

모두 위헌이고 불공정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도 코로나19를 불러온 자연 환경의 파괴를 야기한

인간 문명의 무한확장을 불러일으킨

조금이라도 더 잘, 더 많이, 더 맛있게, 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그 욕구대로 살아가는 걸 발전의 동력이라고 여긴

인간이므로, 내 죄가 크다, 참회하며, 다시는 코로나19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사이에

강은 

넘쳐

넘쳐

흐른다


흑인과 백인 사이가 아니라

인디언과 한국인 사이가 아니라

토종과 외래종이 아니라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군의 후손 사이가 아니라 

생명, 평화, 양심, 정의, 진리와

이대로가 좋은데 왜! 사이에,

이 지구상

그레타 툰베리들과

도널드 트럼프들 사이에,

일본인 다나카  쇼조 + 동학접주 전봉준과

동비를 토벌해야 한다고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는 

조선인 관리, 민보군을 꾸려 동비를 때려 잡는 양반 나부랭이 

사이에,

강은 

감히!

흐른다 

흐르므로

흐르는 

강은, 

꽝꽝꽝 얼어붙어서 

서로 건너오갈 수 있게 되지 않는다! 

영하 삼십도, 아니 사십도,

제트기류를 끊고 남하한 시베리아 한풍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비양심의, 반민족의, 반생명의, 반정의의, 반인권의

갈등의, 멸시의, 증오의, 차별의, 혐오의

쇳가루의, 플라스틱 알갱이의, 똥물의, 

침의, 가래의, 담배꽁초의, 미세먼지의, 

욕설과 욕망의, 강은

얼어붙게 만들지를 못하므로

그 강은,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흐른다.


나와

너와

사이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조차

때로 혹은

언제나

흐르는


그 

가에 

비껴서서

흔들리며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기를

심고(心告)

해도

아직도,

여전히 

도도하게 

흐른다.

***

[*추신: 친일파의 후손 중에도 생명, 민족, 평화의 삶을 사는 이가 있고, 독립군의 후손 중에도 '친일파'처럼 사는 이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일 개연성이 더 많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 중간은 더 많을 개연성이 더 크다는 점에도 나는  또 동의하며, 아무튼 '친일파의 후예'가 문제지, '후손'인 것이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이 각각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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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haewon Shin, 백승종, 외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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