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역자주] <동아일보> 창간호(1920년 4월 2일) 축사로 당시 천도교중앙총부 현기관장, 오상준(吳尙俊, 1882-1947)이 쓴 글이다. 오상준은 1900년대 초 의암 손병희가 주선한 '일본유학생'의 일원으로 일본에서 유학하고 1905년 전후(?)로 귀국하여 천도교중앙총부에 근무하면서 <<초등교서>>라는 단행본을 발간하고, <천도교회월보> 등에도 많은 글을 투고하였다. 이 글에서 오상준이 '새[新]'와 '개조(改造)'를 중시하는 것은 당시의 핵심적 시대 흐름[트렌드]이기도 하지만, '다시개벽'을 강조하는 천도교 특유의 관점이 잘 표현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이 글이 <개벽> 잡지가 창간(1920.06.25)되던 때보다 2개월이나 앞섰다는 점에서, '개조=개벽'에 대한 관심은 <개벽>과 '청년'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일반 천도교(인)들의 주요 관심사였음을 짐작케 한다.
개조와 자각
천도교중앙총부 현기관장(玄機觀長) 오상준(吳尙俊)
온 세계 모든 인류 날로 부르짖는[叫呼] 소리, 오직 개조의 소리뿐이로다. 천시(天時)가 새로워지고[新], 인사(人事) 새로워지고, 일체 만리(萬理)가 날[日]로 새로움을 더하는 중이니 이를 이른바 개조(改造)의 세계라 하리로다.
오랫동안 암흑에 퇴굴(退屈)하고, 게으른 잠[惰眠]에 취하였던 반도의 우리, 이제야 겨우 새로우을 음미하며, 새로우을 동경하면서 나도 남과 같이 살아 보리라는 각성 하에서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비록 불충분할지라도 날[日]로 신생활의 낙원을 건축(建築)하려 노력하는 중이니 이를 이른바 개조의 조선이라 하리로다.
개조란 필연히 방식과 순서를 요(要)할 것이요, 방식과 순서란 필연히 자각(自覺)을 의미한 것이라. 자각이 없는 개조는 이[是]는 맹목(盲目)이요, 이는 모순이니, 우리[吾人]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당한 자각을 요할 것뿐이라. 개인이면 개인, 단체면 단체, 전민족이면 전민족 도두 다 그러하여야 할 것이라. 이를 이른바 개조의 오인(吾人)이라 하리로다.
우리[吾人]는 미약[微]하나마 민중(民衆)의 한[一] 분자(分子)로, 약하나마 사회의 한 정원(正員)으로, 명명(冥冥)의 중, 개체적 자각, 민중적 자각을 절망(切望: 절실히 바람)하는 성의(誠意)하에서 문득 동아(東亞) 군(君)의 출세(出世: 태어남)를 듣고 스스로 만강(滿腔)의 감상(感想)을 금치 못하였나니, 이 실로 동아 군은 자각의 선각(先覺)이 있음으로써요, 개조의 책임을 졌음으로써요, 교화(敎化)의 정편(正鞭: 바른 채찍)을 가졌음으로써요, 활동(活動)의 수단이 넓음으로써며, 그리하여 우리[吾人]의 희망을 답(答)할 것임으로써며, 따라서 우리가 조선의 우리 됨이며, 동아 군이 조선이 동아 군 됨으로써라.
군의 사업과 부담(負擔)은 이미 우리 사회로부터 정평이 있으므로 우리가 구구히 그 내부와 장래를 *설(*說)함은 도리어 무식에 근(近)하고, 공론(空論)에 치우치는 것으로 아노라. 고로 우리는 무조건으로 군을 신앙(信仰)하는 하에서 심대한 축하의 말[賀辭]을 피(避)하며, 과분한 요구를 꺼리노니, 이는 군의 책임이 이미 광대무량하며, 군의 용심(用心)이 이미 공명정대함으로써라.
오호, 풍상(風霜) 몇 십년[幾十年]의 조선에 동아군의 금일이 있게 됨은 이 세계의 문운(文運)이 이마만치 진보한 까닭[故]이며, 조선의 풍화(風化)가 이마만치 향상한 까닭이니, 장하다 군의 장래! 진보를 따라 항상 이마만하고, 향상을 따라 영구히 이마만하리라 자신하되 마지아니하노니, 이를 이른바 개조의 동아 군이라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