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타인에게 다가가는 효율적이고 정중한 방법 찾기
‘아줌마’, ‘아저씨’란 단어는 한국의 대표적인 호칭이면서 경우에 따라 호전적인 감정을 부를 수 있는 표현이다. ‘이보세요 아줌마!’ 란 말은 ‘싸우자!’란 뜻으로 이해되기 쉽다. 최근에는 식당이나 상점에서도 아줌마나 아저씨 대신 ‘이모님’, ‘사장님’ 등의 호칭을 더 예의 바르고 안전하다고 보는 추세다. 뇌관은 '아저씨'보다 '아줌마'에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잘생긴) 원빈이었고, (대표적인 할리우드 남성 배우) 브래드 피트의 한국 별명은 ‘빵 아저씨’다. 반면 20여 년 전쯤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 ‘아줌마’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억척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시간 차이가 있는 예시이긴 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아줌마’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올 것 같지 않고, 설령 나온다 해도 여성 주인공이 우수에 찬 눈빛과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울 것 같지도 않다.
영어도 호칭 문화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다. 남성은 미스터(Mr)라 통칭하면서 결혼한 여성은 미시즈(Mrs), 미혼 여성은 미스(Miss)라 구분한다. 프랑스도 여성의 결혼 여부에 따라 마담과 마드므아젤로 나눠 부른다. 성평등한 문화로의 개선과 공적인 편의를 위해 여성도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미즈(Ms)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어쨌든 호칭의 성차별적 맥락은 전 지구적이고, 사회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어 호칭 문제의 특이성은 효율성과 복잡성, 개방성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예시로 들었던 '아줌마, 아저씨'라는 표현만 해도 널리 쓰이지만 효율성은 대단히 낮다. 사용하는 맥락에서 계산할 게 많고 함부로 사용했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한국어의 다른 호칭도 마찬가지다. 영어권 국가들에서 길이나 상점에서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써(sir), 맴(ma’am) 정도인데 우리는 고객님, 손님, 사장님, 사모님, 언니, 어머님, 어르신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 어떤 호칭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차별, 나이 차별, 직위 차별, 권위주의 등 끝없는 논란의 대상이다. 심지어 상대를 한껏 높여 '어르신'이라 불러도 듣는 어르신은 기분 나쁠 위험이 있을 정도다. 호칭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오히려 써(sir)나 맴(ma’am)처럼 어떤 경우에도, 누구의 감정도 상하지 않게 쓸 수 있는 보편적 표현은 부재한 느낌이다.
최근 학교에서 교직원들의 호칭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교사, 행정실무사, 조리사 등 학교 내 다양한 직군을 모두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부르자는 요구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찬반 의견은 차치하고 나는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발언들을 목격했다. 일부 조리사들이 조리사란 호칭을 멸칭으로 인식해 '선생님'이라 불리길 원한다든지, 조리사는 공무원이고 조리원은 공무직이라 조리사에게 조리원이라 부르면 싫어하고, 조리원에게 조리사라 부르면 조리사가 싫어한다는 등의 복잡한 현상이 있었다. 호칭에 대한 집착은 한국인들이 '내가 누구인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중시한다는 거친 방증이며, 호칭에 대한 복잡한 요구와 구분짓기 욕망은 병리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호칭이 복잡하다는 건 우리가 타인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고려할 사항과 써야 할 에너지가 많다는 뜻이다. 나이, 성별, 지위 고하, 관계, 상대방의 반응 등을 다양하고 다층적인 맥락에서, 순간적으로 계산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그러한 계산 과정이 복잡하고 번잡스럽다 보니 한국인들은 관계망의 울타리를 깨기 어렵고, 가족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또 언어의 그물 때문에 내 눈 앞에 놓인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보지 않고 고객으로, 사장으로, 나이가 많고 적은 여자 등으로 환원하고 대상화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이 타인을 부르는 호칭을 단순화해 효율성을 높이면 사회의 분위기가 좀 더 개방적이고 활기차게 바뀌리라 생각한다. 꼭 영어 표현에서 차용할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소통 방식을 참고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든 정중하게 쓸 수 있는, 단순하고 효율적인 호칭 표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다. 그 저변에는 평등하고 개방적인 관계와 소통에 관한 개인들의 의지가 필요할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