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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전시행정도 교권침해다

기자회견_2023. 8. 21.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전교조대전지부장 김현희입니다. 교육부는 올해 늘봄 시범학교를 두 배로 늘리고 내년까지 모든 학교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시범운영 지역인 전교조대전지부는 지난 1월 성명을 발표해 늘봄정책을 반대했습니다. (참고: 대전지부 성명: 늘봄학교, 아이들의 봄은 어디에?)


그 이유는 첫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12시간 이상 학교에 머무는 것에 대한 교육적 우려, 둘째 수요 부족으로 인한 실효성 부재, 셋째 가정 돌봄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는 정책이란 이유였습니다. 당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5%의 교사가 늘봄학교 정책을 반대했습니다. 교사들은 (대전시)교육청이 현장으로부터 어떤 의견 수렴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범운영에 응모한 사실에 강한 반발을 표출했습니다.


전교조대전지부는 지난 한 학기동안 늘봄학교 운영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현장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집해왔습니다. 우려했던 모든 사안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늘봄학교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입니다. 현재 대전에서 늘봄학교는 20개교에서 시범운영 중입니다.


늘봄정책의 핵심인 저녁 8시까지의 돌봄 참여율은 (6월 8일 기준) 0.07%에 불과합니다. 6,343명의 대상 학생 중 5명이 저녁 일시 돌봄에 참가한 것입니다. 아침 돌봄에 참여한 학생은 134명(2.11%), ‘미래형 맞춤형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은 578명(9.11%)입니다. 이는 기존의 돌봄과 방과 후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인원입니다.


대전시교육청은 늘봄학교 예산이 남자 시범 운영 학교별로 천만원 이상의 금액을 갑자기 지급했습니다. 학교에 들이닥친 예산이란 곧 업무폭탄과도 같습니다. 남아도는 예산을 어쩌지 못해 시범운영 학교들은 교직원 문화연수를 운영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도마 만들기 공작연수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예산이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단골 멘트입니다. 대도시 과밀과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니 교사정원을 늘리라고 말하면, 예산이 없다! 각종 교육활동 침해와 안전 문제가 심각해서, 안전 인력과 공간 확보하라고 하면, 예산이 없다! 고 합니다.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예산 폭탄 투하해서 뜬금없이 문화연수하고, 도마 만들기 특강하게 하는 것이 과연 최소한의 경제 논리에라도 부합합니까?


늘봄학교의 ‘미래형 맞춤형 방과 후 프로그램’은 실상은 만화 그리기, 난타, 전래놀이와 연극 수업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화와 연극이라 문제라는 것이 아닙니다. 


‘맞춤형’이니 ‘미래형’ 이니 이름만 거창할 뿐, 일상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의 포장지만 바꾸고 자화자찬하며 실적 잔치만 벌이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문제입니다!


늘봄학교 정책은 어른들이 장시간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더 오래 학교에 머물게하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오래 머물게 하면 양육자들이 안심하며 좋아하겠지’라는 포퓰리즘 정책을 개발해 안그래도 힘든 교육현장을 더욱 옥죄고, 사회의 인식까지 퇴행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 노동시간 단축! 


우리는 이미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왔습니다. 정부는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일 시킬 꼼수만 찾지 말고 노동시간 단축하고, 양육자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학부모의 악성 민원, 학생의 문제 행동만 교권 침해가 아닙니다. 교사들의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교육당국의 치적놀음에 동원하는 이 모든 전시성 정책들도 교사들의 교육권 침해입니다.


정치인들의 표 놀음에 시민들의 세금과 행정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의 정치 놀음에 공교육의 목표를 훼손하고, 교육권을 침해하고, 노동시간 단축이란 시대적 합의를 거스르지 마십시오.


아이들에게는 학습권과 쉴 권리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친 뒤에는 가정과 마을에서 충분히 쉬고, 배우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책무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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