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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먼 하늘만

2025. 06. 30. 일기

by 김현희

‘그래, 이번 주는 힘차고 다정하게 시작해 보자’


주말을 뒤로 한 월요일 아침 다짐과 각오 속에 출근했다. 지난 주는 꽤 힘들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나 역시 빡센 선생이겠지.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1교시 도덕 시간에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간단한 놀이도 하고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리코더 좋아하는 아이들과 노래도 부르자. 그렇게 이번 한 주를 부드럽게 시작하고 싶었다.


한동안 멈췄던 아침 산책이 다시 시작된다 하니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평화는 30분도 채 가지 못했다. 자주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학급 규칙으로 욕설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데도 ‘마더뻐커’ 어쩌고 하는 말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걸 신고한 아이는 또 다른 문제로 보복 신고를 당했고, 음수대에선 초현실적인 새치기 사건이 벌어졌다(고학년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새치기를 한다고? 아니, 목격자가 이렇게 많은데도 우긴다고?). 점심시간에 복도를 지나던 중, 우리 반 한 아이가 언어 문제로 다른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있었다. 내가 훈육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건 아닌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내 기준이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점심시간 내내 아이들은 서로를 이르느라 분주했다. 오후가 되자 아침의 마음가짐과 각오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점심 시간 마감 종이 울리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고,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먼 하늘만 바라봤다.


”여러분 우리는 왜 같은 교실에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같은 반 친구’란 어떤 존재예요?“



아이들이 교담 수업에 간 뒤, 글쓰기 점검을 하는데 익숙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미안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재미없고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읽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내가 글쓰기 지도를 엉망으로 하고 있는건가’ 싶어, 온라인 서점에서 글쓰기 지도책을 찾아보다가 문득 ‘지금 우리 반의 진짜 급한 문제가 글쓰기인가?’ 싶어 멍해졌다. 하나하나 바라보면 나름의 사랑스러움을 갖춘 아이들이다. 악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의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인 오늘부터 탄식이 절로 터졌다. ‘와, 나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 논란으로 온라인이 시끄럽다. 살아가면서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의 무게를 점점 실감하고, 기우일지 모르지만 이 정부 교육부가 대중의 희망찬 기대를 등에 업고 시작하진 못할것 같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현장이 아노미 상태로 가고 있는 와중에,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소리, 솔직히 한가한 저 세상 타령으로 들린다. 정말 쉽지 않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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