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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6월 30일, 7월 2일, 7월 5일

그냥 마구 써 댄 일기

by 김현희


6월 30일, 월요일


‘그래, 이번 주는 힘차고 다정하게 시작해 보자’


주말을 뒤로 한 월요일 아침 다짐과 각오 속에 출근했다. 지난 주는 꽤 힘들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나 역시 빡센 선생이겠지.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1교시 도덕 시간에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간단한 놀이도 하고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리코더 좋아하는 아이들과 노래도 부르자. 그렇게 이번 한 주를 부드럽게 시작하고 싶었다.


한동안 멈췄던 아침 산책이 다시 시작된다 하니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평화는 30분도 채 가지 못했다. 자주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학급 규칙으로 욕설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데도 ‘마더뻐커’ 어쩌고 하는 말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걸 신고한 아이는 또 다른 문제로 보복 신고를 당했고, 음수대에선 초현실적인 새치기 사건이 벌어졌다(고학년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새치기를 한다고? 아니, 목격자가 이렇게 많은데도 우긴다고?). 점심시간에 복도를 지나던 중, 우리 반 한 아이가 언어 문제로 다른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있었다. 내가 훈육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건 아닌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내 기준이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점심시간 내내 아이들은 서로를 이르느라 분주했다. 오후가 되자 아침의 마음가짐과 각오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점심 시간 마감 종이 울리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고,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먼 하늘만 바라봤다.


”여러분 우리는 왜 같은 교실에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같은 반 친구’란 어떤 존재예요?“

아이들이 교담 수업에 간 뒤, 글쓰기 점검을 하는데 익숙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미안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재미없고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읽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내가 글쓰기 지도를 엉망으로 하고 있는건가’ 싶어, 온라인 서점에서 글쓰기 지도책을 찾아보다가 문득 ‘지금 우리 반의 진짜 급한 문제가 글쓰기인가?’ 싶어 멍해졌다. 하나하나 바라보면 나름의 사랑스러움을 갖춘 아이들이다. 악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의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인 오늘부터 탄식이 절로 터졌다. ‘와, 나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 논란으로 온라인이 시끄럽다. 살아가면서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의 무게를 점점 실감하고, 기우일지 모르지만 이 정부 교육부가 대중의 희망찬 기대를 등에 업고 시작하진 못할것 같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현장이 아노미 상태로 가고 있는 와중에,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소리, 솔직히 한가한 저 세상 타령으로 들린다. 정말 쉽지 않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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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수요일


아침 활동 시간. 수업 준비를 하는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들이 조용히 과제를 하고 심지어 귓속말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가! 3월부터 혀가 닳도록 이야기했었다. 아침 독서 시간의 교실은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이니 각자 할 일을 하고, 꼭 필요한 말은 속삭이듯 작게 말해야 한다고. 아무리 지도해도 금세 까먹는 아이들이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여러분, 왜 이래요? 작은 소리로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구나. 드디어 선생님의 요청에 응하기로 한 건가 으하하하하!”


내가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외치자 아이들은 도리어 ‘왜 저러지?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얼굴로 멀뚱멀뚱 날 바라봤다. 누가 보면 언제나 조용했는 줄 알겠다;;


얼마 전 이 모 선생과 대화를 나누며 가르치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다고 한탄을 했었다. 이선생님은 말했다. “그래서 콩나물 키우는 것 같다고 하잖아요. 물 줄 때 보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어느샌가 자라 있다고.”


고학년 학생들이 아침 활동 20분을 조용히 해냈다고 이렇게 감격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ㅎㅎ그래도 기쁘다. 메모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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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토요일 아침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한참 떠들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물었다. ”너 나중에 이 아이들이 더 생각날 것 같아? 아니면 꼴도 보기 싫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것 같아?“ 사실 나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는 질문이다.


’더 많이 생각날 거야‘라고 대답했다. 표현하진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담임 감각을 급히 깨워야 했다. 나의 일하는 방식이 본래 계획을 다 짜고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큰 흐름만큼은 일관되게 잡고 가는 편이다. 올해는 복직하며 학교 옮기고 오랜만에 담임까지 하는 덕에 초반부 버퍼링이 심했다. 1학기 시행착오를 반영해 2학기 플랜을 그려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글에 선정적인 내용은 되도록 쓰지 않았지만 사실, 아이들 중 일부는 극도로 예의가 없다. 어제만 해도 특정 말투에서 보이는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분노 어린 일장연설을 쏟았다.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와 이 행동은 정말 너무 싸가지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도 나 같은 유형의 교사를 처음 만나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중이라는 게 느껴진다. 아닌 척 하지만,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도 감지된다. 평소 쿨한 척이 몸에 밴, 내 입장에선 예의 없다고 느껴지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일기장을 검사한 후 돌려주면 언제나 ’안보는 척‘ 하면서, 다리를 떨며, 슬쩍 일기장을 열어 내 코멘트를 확인한다. 가끔 너무 바빠 도장만 찍어 돌려줄 때가 있는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번은 일기장에 내가 별 뜻 없이 ”~에서 놀았구나. 몇 시까지 놀았어?“라고 물었다. 나와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아이가 쉬는 시간에 쭈뼛거리며 나오더니 작은 소리로 ”9시까지요.“라고 하더니 후다닥 자리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줄 사랑이 많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거대한 바위 더미가 쌓여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매일 육중한 바위를 하나씩 들어 옮기려 노력하는 와중에 바위틈 사이로 눈을 마주치고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 거다.


분명 달라지고는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에어컨 틀어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나는 그런 꼴은 못 본다. ”교실에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일단 혹시 나만 덥지 않은지 친구들을 둘러보고 확인한 후 선생님에게 정중하게 요청하세요.“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 가장 거칠었던 아이가 엊그제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우리 반 애들이 더운 것 같아요. 에어컨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든 내 얼굴에서 빛이 났을 거고 아이들도 그 빛을 봤을 거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하나 건드려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거다.


아이들과 나는 개인적 성향이나 배경도 상당히 다르다. 한 번은 롤링페이퍼를 돌렸는데 절반이 아무 의미 없는 말 혹은 의성어와 의태어였다. 예를 들어 ’어 형이야‘, ’에바야‘, ’겔겔‘, ’왈왈‘ 같은 것들. 교사마다 특징이 다를 텐데 나는 유독 언어에 민감하고 공공성, 의사소통, 정치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자주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혼란스럽다. 내가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집단적, 개인적 문화 충격을 아이들 입장에서도 느끼고 있다는 신호가 자주 잡히곤 한다. 일기를 도저히 읽을 수 없어 받아쓰기를 해봤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책을 읽어줄 땐 곧잘 듣고 좋아하기 때문에 온책읽기와 연결해 앞으로 받아쓰기를 주기적으로 해나가기로 했다. 우리의 교집합을 찾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아침마다 리코더도 분다. 그렇게 돌파구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중이다.


올해 만난 아이들이 유난한지, 이것이 징후의 시작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찌 됐든 유난했던 한 해로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하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유난했던 사람으로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아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기억에 남는 선생이 되고 싶은 바람은 없다. 나를 기억하든 말든 상관없다. 아이들 삶의 어떤 지점에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작은 바람과 햇빛처럼 스며들었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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