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30.
2023년 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가사도 모른 채 대전지부장이 됐다. 부족한 활동 이력 탓에 다양한 상황에서 주변인들의 동공을 흔들었다. 종종 조직 실태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심장 한편에 탈퇴서를 품고 지냈다. 하지만 그 2년간 나는 집단과 나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고 뭐고,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리더에게 어느 정도의 헌신은 기본값이란 것도 몸으로 배웠다.
임기 2년 차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장례식 다음 날이 교육청 앞 집회였다. 어떤 조합원들은 집회에 오지 말라 하셨지만 동고동락하던 지부 전임들은 말이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든 지부장은 올 거라고,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고, 후에 말씀하셨다. 그날 집회 후 사람들과 칼국수를 먹는데 갑자기 울음이 쏟아졌다. 금방 다시 허허 웃고 지부 창립기념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칼국수는 걸쭉하고, 김치는 달고, 온몸은 땀에 절었고, 모두에게 감사한데 눈물은 짠 그런 날들이었다.
나름의 헌신을 쏟았지만, 나는 그때조차 전교조의 이름이나 깃발 자체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교육운동을 위해 전교조가 필요하다고 믿었고 조직이 잘 되길 바라며 일했다. 하지만 만약 이 조직의 소멸이 전체 교육계와 사회에 더 바람직하다면 없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체 조직 그 자체엔 애착이 없는 편이다. 심지어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게 혈연관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함께 한 시간, 신뢰, 사랑이다(십 대 때 영화 ‘부기나이트’를 본 이후로 쭉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와 가족이 되진 않는다. 어느 조직 소속인지가 아니라, 핏줄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품은 가치, 보이는 태도, 협업 가능성 여부가 중요하다.
전교조에 대한 소속감도 이 정도인 사람이 ‘정파’를 중요하게 여길 리 없다. 나는 정파에 소속된 적도 없고, 기존 정파의 이해나 승리에도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지려 해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파에 상당히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정파의 존재 자체를 백안시하진 않는다. 공적인 의지든 친소관계이든 사람이 모여 뜻을 나누고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운동 정파들 특유의 비밀스러운 활동 방식에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정당은 정책과 회계와 당지도부와 토론 등이 공유되고 공개적으로 당원을 모집한다. 반면 대중은 운동권 정파의 존재와 방향을 거의 알지 못한다. 조직 전체에 영향을 주면서도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은 민주적이지 않다.
또 한편으로 정파의 순기능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닫기도 했다. 일단 활동가를 양성하고 조직한다. 굵직한 활동가들 중 지적이고 품성 좋고 조직 운영의 잔뼈가 굵어 일 잘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정파 안에서 자란 것 같다. 정파 활동가들 중에도 말이 잘 통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나는 활동 이력이 일천해 활동가로서의 소양을 속성으로 익혀야 했던지라, 조직이 키워서 자란 사람들 특유의 안정적인 태도와 소양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정파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필요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까울 거다. 다만 정파가 길러낸 활동가들 중 일부는 조직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전에 한 활동가가 내게 말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당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이미 정파의 거두처럼 생각한다'.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내가 머리가 큰 편이라 거두인 건 맞다. 하지만 운동권 정파에 소속된 적 없고, 기존 형태의 정파를 만들어 노동조합을 '뒤에서' 움직일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할 필요성은 느낀다. 단순한 소속감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에 바람직한 기여를 하고 싶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바람을 어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 조직 연명 그 자체보다 우리가 품은 가치와 신뢰와 방향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투명한 리더십에 기반한 공적인 구심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 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와 지향을 한 발짝씩 견인하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같은 운동은 없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사람들과 구심의 재설계 작업을 실행해 본다면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