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애도

2026. 1. 15.

by 김현희

아빠는 임종 전 마지막 의식이 머물 때, 내게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본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부모의 역할을 잘 몰랐고, 아버지란 무섭고 엄격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고, 손주를 보고 나서야 자식들에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음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아빠는 엄격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선을 넘진 않았다. 10대 이후로 내가 간헐적으로 아빠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랄 수 있었다.


자상한 면모도 많았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능청스러운 연기를 해냈고, 어릴 때 엄마에게 주말 낮잠 시간을 줘야 한다며 삼 남매를 데리고 산이나 운동장에 나가 서툴게나마 놀아주곤 했다. 승진 이후 일에만 몰두했던 모습이 청소년기엔 서운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누워계신 아빠한테 그런 해묵은 감정을 털어놓진 않았다.


정확한 사실인지는 몰라도, 간호사와 장의사 말에 따르면 인간은 숨이 멈춰도 청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조언대로 꼭 해야 할 인사를 충분히, 잘했다. '아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경황없는 와중에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빠가 마지막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똑바로 짚어가며 다했다. 다했는데.


돌아가신 지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도, 얼굴이 넓적하고 풍채 좋은 장년 남성이 검은 재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눈물이 터진다. 엊그제도 식당에서 밥을 먹다 곤란할 정도로 울어버렸다. 다른 손님들은 '아니 저 사람은 밥 먹다가 왜 혼자 울고 난리?'라고 생각했을 거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도 아니다. 코로나 시기에 심리상담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상담사 말로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누구보다 상담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민함의 범주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다. 찢어지게 마음이 아프거나 그리움에 사무치는 상태도 아니다.


모르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도의 기간은 장례 절차나 객관적인 시간 흐름과 상관없이 각자의 속도대로 흐르고, 예상치 못한 못한 장소에서 난데없는 소란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나 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