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Dec 20. 2023

저 분은 자기가 설교하는 대로 살까?

아무도 못 믿어

결혼 후 한 3년쯤 되니 우리 부부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왔고 남편이 하는 모든 게 다 꼴뵈기가 싫어졌다.



아이가 밤새 아무리 칭얼대도 단 한 번을 일어나지 않다가 새벽예배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나가는 모습_ 선택적 잠귀 어두움에 관한 깊은 빡침.


성도들 집에 별별 애경사는 다 챙기러 쫓아다니면서

자기 친구 친척 처가 일에는 불참하는 모습_ 네 코가 석자다 이 녀석아 하는 생각이 듦.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그러면서 집에서는 설거지 한 번을 안 해주고 맨날 자빠져있는 모습_ 뚫린 입이라고 말은 참 잘하제?


지금은 퇴근 후 지쳐 잠든 남편의 모습이 몹시 안쓰럽고.. 쉬게 해 주고 싶은 긍휼함이 있지만

그때는 밖에선 할 거 다 하고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 웃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지 잠만 자는 인간으로밖에 안 보였다.




사모들이 은혜받는 설교가 진짜 설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매 예배 빠지지 않고 나오다 보니 그만큼 들은 것도 많고, 목사랑 같이 살면서 이 꼴 저 꼴 다 봐서 마음이 팍팍해져서 웬만한 설교로는 그녀들의 귀에 들어가 마음을 울리기가 어렵다는 뜻 이겠다.


나도 목사의 아내로 몇 년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설교가 너무 은혜로워서 넋 놓고 아멘 하며 듣다가도, '저분은 자기가 설교하고 가르치신 대로 살까? 집에서는 어떤 모습이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그만 싹 식어버렸다.

그게 맘속에서 매 주 일어나고, 부흥회 때도, 

다른 교회 유튜브 설교를 봐도 반복됐다.


결국 내 영혼만 피폐해졌다.




내 상태는 어쩌면 교회 안에서는 회복이 안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나눌 수도 없고, 나는 구역도 여전도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였고, 교회 밖에서는 외지인일 뿐이어서,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상담을 받으러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상담선생님의 삶과 말이 일치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너무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물론 그걸 내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확실한? 분께 마음을 내려놓고 상담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상담선생님이 집에 가서 친구나 가족에게 "오늘 목사 사모라는 여자가 왔는데 말야~ 글쎄 자기 문제하나 해결도 못하면서 무슨 사역자라고~ 웃기지 않아" 하면서 나를 안줏거리 삼으시면 어떡하나 겁도 났다.


아무도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정말 괴롭다.





그런 시간들을 수 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 말 한 대로 다 지켜내면 이미 그 자체로 신이지.

목사님은 다만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본인이 맡은 역할이 강단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전하시는 것이다. 

목사님도 부족함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는 당연히 알았지만, 막상 결혼생활 속에서 목사라는 직책의 남자와 부대끼고 살며 그 민낯을 여실히 봐버리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사이에서 갈 바를 모르고 표류해 버린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삶이 어떤 건지 지만 실천이 잘 돼서 괴로운 회중 가운데 하나인 나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이 실컷 말해놓고 그대로 백 프로 못 지키면서 사는 목사님,

누가 더 괴로울까?


생각에 거기에 다다르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

한낱 불쌍한 영혼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모두

#주가필요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즐겁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하트(라이킷) 버튼을 꾸욱 눌러주세요! 브런치는 조회수나 좋아요로 수익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라서, 하트라도 많이 눌러주시면 작가가 다음 글을 창작하는 데에 기부니 조크등요♡


이전 05화 너는 내가 대접받고 다니는 걸로 보이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